'의원면직할 결심'을 하고, 남편과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의견 일치를 본 후 최종 결정을 내리자 남편은
"어머님, 아버님께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다.
"할 거야."
"얼른 해야지. 걱정하시는데."
"뭘 걱정해?"
"아니, 공무원 그만뒀다고 하면 걱정하실 거 아냐?"
공무원이 얼마나 대단한 직업이라고 걱정을 하실까.
그때 제일 걱정하고 있는 사람, 가장 근심스러운 사람, 앞날이 까마득해 보이는 사람은 당사자인 내가 아니라, 남편 같았다.
"내 부모님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얼른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뭘 그렇게 서둘러? 나중에 차분히 내가 얘기하러 갈 텐데."
"같이 가서 얼른 말씀드려 보자."
"뭐 하러 같이 가? 평소엔 우리 집에 가지도 않던 사람이?"
남편이 시가에 명분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굳이 같이 가자고 그러면 내 입장에서도 썩 유쾌하진 않을 것이므로 나도 남편에게 우리 집에 갈 때마다 같이 가자고 한다거나 같이 가야 한다거나 하는 그런 의무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주지 않는다.
가고 싶은 사람은 가고 안 내키는 사람은 안 가는 거다, 이젠.
처음 결혼하고 나서는 우리 집에 가는 일로 티격태격 많이도 다투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결혼 직후 남편이 천하 무직 공시생으로 신분이 전락(?) 하는 바람에 남편 입장에서는 좀 껄끄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사위한테 뭐라도 먹이고 싶어서 종종 초대했지만 사위는 너무 부담스럽다며 경계했었다.
이제는 본인들이 먼저 각자 본인 부모님께 잘하고 나서 상대방 보고 한 마디를 하더라도 하자고 했다.
어디까지나 내가 내 일이나 잘하고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상대방 보고 뭐라 할 것도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지 말고, 잘한다 못한다 따질 것도 없고, 나를 먼저 돌아보자.
다 사람 나름이고 성격도 다르고 그런 거 아니겠나.
사교적이어서 남의 부모님한테도 살갑게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고, 어차피 남의 부모라 어려워서 그런 면도 있을 거고 그렇지 않을까.
부부는 절대 일심동체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로 따로다.
일심동체로 살기를 바라는 것뿐.
저런 말이라도 있지 않다면 쉽게 흩어져 버릴 먼지 같은 사이인지도 모르겠다.
의식적으로나마 붙잡아 두어야 할 의무가 있는 가늘디 가는 끈 같은 것.
아슬아슬해서 언제 끊길지 몰라 마음 조마조마한 것.
남편의 마음은 그런 거였겠지.
우리 부모님이라면 내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당시 남편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나의 의원면직만은 막고 싶어 했으니까.
그 마음을 조금은 알겠다가도 또 어느 순간은 도저히 모르겠다가 그랬다.
"우리 부모님 만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그런 게 아니라 어차피 아실 건데 남의 입에서 듣는 것보다 딸한테 직접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비겁한 변명이다.
구차하다.
누구한테서 그 사실을 듣든지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말이다.
"내 일이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언제부터 우리 부모님을 그렇게 생각했어? 좀 지나서 내가 차분히 말씀드릴 거야. 왜 그렇게 서둘러?"
"이런 일은 빨리 알려야 좋지 않아?"
"빨리 알리든 늦게 알리든 변하는 사실은 없고, 지금은 부모님께 알리느냐 마느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좀 늦게 알면 어때?"
"어차피 아실 텐데."
"그러니까 어차피 아실 거 지금 당장 가서 말한다고 뭐 있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을 해 보았다.
남편이 내 입장이었다면, 내가 남편 입장이었다면 저 상황에서 내가
"얼른 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려야지!"
했다면, 그랬다면 남편은 당장 순순히 차 시동을 걸었으려나?
아닐 거다.
그렇게 판단되니까 남편의 속마음이 뻔히 보이는 거다.
정말 부부는 어떤 걸까?
전생에 억만 겁의 인연이 닿아 맺어진 사이라고?
평소에도 생각이 많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난 정말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죽하면 남의 편이라고 하겠는가.
내 편인 줄 알고 한 결혼인데, 결정적인 순간에 남의 편에 서는 사람, 내 모든 걸 온전히 그대로 다 받아줄 줄 알았는데, 그중에서 몇 가지는 골라서 빼내는 사람, 정작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만 두 손에 꽉 움켜쥐는 사람.
남편이든 아내든 누구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둘이 한 결혼이니까.
언젠가 법륜 스님의 강의를 보는데 결혼은 '서로 덕을 보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날카로운 지적이시다.
그 덕 보려는 마음 때문에 시작한 결혼 생활이 더 이상 덕 볼 것이 없는 것 같은 기분에 불편해지고 껄끄러워져 버리는 것이다.
그런 사이인 것을, 나는 무슨 덕을 보자고 이 결혼을 했던고?
결국엔 나도 이기적이었으면서 말이다.
어쨌거나 자꾸 우리 부모님을 뵈러 가자며 자극하는 남편이 그때는 도통 이해 가지 않았다.
무슨 마음으로 그러는지는 잘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행동하는 것이 이상했다.
이해하고 말 것도 없이, 왜 안절부절못하며 나서는지 모르겠다.
"혹시 우리 집에 전화했어 설마? 벌써?"
"아니, 무슨 소리야. 안 했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뜻한다 했다.
지나치게 부정한다.
"근데 왜 자꾸 가자고 그래?"
"빨리 알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건 본인 생각이고. 내가 정리 좀 되면 그때 말씀드릴 거야."
"그래도 빨리 얘기해 버리는 게 낫지 않아?"
더 낫고 안 낫고는 없다 당시 그 시점에서.
평일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었나?
내 몸이 좋지 않았으므로 남편이 운전을 해서 군청 인사담당자를 만났고, 내친김에 친정에 들렀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뭔가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분명 전과는 다들 눈치가 다르다.
그때 나도 바로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지쳐있던 몸이라 얼른 분위기 파악을 못 했던 듯싶다.
눈이 많이 내리고 코끝에 싸한 바람에 마음까지 시린 겨울날이었다.
마침 부모님은 모두 집에 계셨다.
평소 방문이 잦지도 않던 사위까지 대동하고 딸이 나타나자 당황해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그것도 엄연한 근무 시간에 말이다.
점심시간도 아니고 그때가 11시 정도였다.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던 그 닳고 닳은 진부한 말, 난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쓸데없는 이런저런 얘기들만 늘어놓았다.
남편에게는 술술 잘도 하던 말들이, 부모님 앞에 가니 오간데 없다.
남편보다는 나의 부모님이, 항상 고맙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이 내겐 더 애틋해서였을 것이다.
이미 나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자식인데도 뭘 그리 부모님 그늘 아래 서려는 걸까.
흘리듯이 말을 시작했다.
"엄마, 나 일 그만뒀어."
"무슨 일을 그만둬?"
"공무원 퇴직한다고."
"이제 복직해 놓고 왜 갑자기 그만둬?"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남편은 나를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내가 몸이 좀 안 좋다고 하면 부모님은 굉장히 걱정하실 게 뻔했다.
나도 자식이 있는데 그 마음 모를까.
자식이 아픈 것만큼 부모가 마음 아픈 일도 없는데.
일을 그만둬서 걱정이 아니라, 자식이 안 좋다니까.
자식이 아픈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테니까.
아픈 자식이 더 아픈 게 부모다.
부모님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부모님이 아플 때보다 내 자식이 아플 때 흘리는 눈물로 가슴을 더 아프게 베는 못난 자식이라서.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차차 하기로 하고 용건만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어찌 된 일인지 남편은 내 옆에서 한 마디도 안 거들었다.
다짜고짜 얼른 우리 집에 가자고 보채던 사람답지 않게.
우리 부모님 앞에서 한바탕 하소연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다.)
물론 당시에 아빠도 그 말씀부터 하셨다.
병가, 질병휴직 등등 있는 제도들을 최대한 이용해라.
아빠가 나에 대한 애정이 아주 깊고 남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내 친구들도 다 부러워하는 나의 아빠다.
3남 1녀 중 하나뿐인 딸에게 남동생 말로는 내게 언제나 오냐오냐했다던.
대학교 다닐 때까지도 내 머리를 종종 빗겨 주시고, 어디 같이 외출이라도 할 때는 손을 잡고 걸어주시던 아빠.
아직까지도 내 친한 친구들은 꿰차고 그녀들이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다 알고 계시는 분.
대학교에 입학하고 한참이 지나도 남자 친구를 사귀지 않자, '남자 친구 한 번 집에 데려와 봐라' 하시더니 정작 소개해 준 남자 친구에게는 데면데면하게 대하셨던 우리 아빠.
그렇다고 해서, 딸이 공무원 신분을 벗어난다고 해서 그 정도로 딸에게 실망하거나 하실 그런 분은 아니란 것도 잘 안다.
난 아빠에게 그저 딸이 되어주면 되는 거니까.
"애들이 둘이나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엄마는 듣자마자 걱정이 한가득이시다.
물론 예상했던 바였다.
"제가 열심히 벌어서 잘 살겠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말했었던가?
그런 비슷한 말을 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뻔한 공무원 월급에 열심히 하고 말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냥 무사히만 직장 생활해 주면 다행이지.
나의 기쁨, 나의 고통.
기쁨과 고통은 쌍둥이였구나.
기쁨은 봄비처럼 내리고, 고통은 겨울비처럼 내린다.
남편이 국가직 의원면직한 사실을 숨기고 집에다가는 '휴직했다'라고 거짓말 한 그날부터 밤잠을 편히 못 주무셨다는 시어머니처럼, 우리 부모님도 내가 다녀간 그날 밤부터 밤새 그렇게 잠 못 들고 뒤척이셨으려나.
하지만 이런 사정 저런 사정 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우선은 내가 나를 구해야 했으므로 나만 생각해야 했다.
남편도 아니다, 친구도 아니고, 부모님은 더더욱 아니다.
정작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며칠 후에 나는 혼자 다시 친정에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이 같이 친정에 가기 전에 우리 집에 미리 전화를 했었다고 한다.
이러저러하니 딸 좀 설득해달라고, 아마도 그렇게 부탁했을 테지?
그날 옆에서 잠자코만 있었던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
그렇게 나서지 말고 가만히 좀 있으라고 내가 말했건만.
왜 이 사위는 이런 불편한 내용만을 가지고 처가에 전화를 하고 방문을 한단 말인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제발 나서지 말라고 한 일을, 내 일인데, 나한테 한마디 귀띔도 않고 마음대로 처리해 버리는 건가.
다시 한번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남편이 되고, 남편이 내가 된다.
남편이 알아서 할 테니 나서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하는데 굳이 내가 시가에 전화를 걸어 이러쿵저러쿵 얘기해 버린다면, 그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됐다면 어땠을까.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니까 더 화가 났다.
아마도 펄쩍 뛰고 나에게 화를 냈을 테지?
내 생각엔 그렇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방 일에 나서야 할 때가 있고 잠자코 있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제발 알았으면 한다.
그렇다고 나라고 언제나 저렇게 이성적으로만 판단하고 행동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내 판단이 옳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당사자가 오랜 기간 충분히 고민한 끝에 큰 결단을 내린 일은, 상대방에게 자제해 줬으면 하는 그런 일은, 그러길 원하는 대로 두었으면 한다.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말로 할 때는 서로 감정이 격해지기 쉽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은 혹시라도 언젠가 남편이 당시의 이런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다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욕심을 줄이고 살아야 내가 더 숨을 쉬기가 편안해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점점 깨달아가고 있으니까.
다시 부모님을 뵈었을 때는 전보다 두 분이 괜찮아 보였다.
뭐가 어떻게 괜찮아 보였는지는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아마 처음엔 괜찮은 척하셨을지도 모르지.
남편이 어느 정도는 미리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말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화가 났다, 진심으로.
부모님 근심을 늘려드린 셈이 되어 버렸다.
"걱정하지 마, 엄마. 그렇게 상태 안 좋으면 이렇게 와서 밭에서 시금치 캐지도 못해."
그때가 설을 앞두고 있어서 부모님은 매일 시금치 밭에서 시금치 작업을 하시느라 늘 바빴다.
그래서 차분히 얘기도 할 겸, 일도 도와드릴 겸 해서 뗀 걸음이었다.
적막만 흐르는 그 방안에서는 숨소리조차 가슴이 턱 막혀 못할 소리들을 그 밭에서는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애들은 계속 커가는데, 가르치려면 혼자 벌어서는 힘들 텐데."
엄마는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셨다.
미련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장모가 사위 닮는 법도 있다던가?
누구, 많이 아쉬워하던 사람이 한 명 생각났다.
"나라도 옆에 있어서 애들 뒷바라지 잘하면 그게 돈 버는 거라고 O 서방이 그럽디다. 걱정하지 마 엄마."
"그렇기는 하제."
"나중에는 대학교도 다 무상 교육할지 누가 아냐."
아빠도 거드신다.
"대학교를 꼭 가야 되는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걱정할 거 없어 아빠. 애들이 공부해서 가고 싶다고 하면 가는 거지 무조건 가라고는 안 할 거니까."
우리 부모님은 부부 공무원이 아니셨어도, 농사만 짓고도 우리 네 남매 잘 키워 주셨다.
그런 부모님이 항상 존경스럽고 고맙다.
내 아이들도 나를 존경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누구에게라도 떳떳한 엄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는 보람 있는 일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다양하다.
꼭 한 사람에게만 맞는 틀이라는 것도 없다.
공무원 재직 시절 내가 정말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해서."
버겁고, 치사하고, 못마땅할 때 종종 하던 말이다.
그 고향의 부모님이 지금 나 때문에 속이 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부모님을 생각해야 할 때는 생각하면 되고, 지금은 나만 생각해야 할 때이다.
남편도 내 아이들도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우선은 내가 있어야겠더라.
의원면직의 부작용 중 하나,
당사자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시름이 깊어진다는 것.
그러나 그 또한 결국은 남의 일이라는 것.
의외로 부모님은 담담하셨다.
내가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아시는 분들이다.
그리고 이미 지나버린 일이잖아.
겨울날 짧은 해가 높이 솟은 산 뒤로 쉬이 넘어갈 때 엄마는 마침내 평소의 나의 엄마로 돌아오셨다.
"애들은 좋아하겠다. 엄마 집에 있으니까."
"좋아하지 그럼."
"갈 때 시금치나 많이 캐 가서 우리 애들 무쳐줘라."
"알았어, 이 시금치 진짜 맛있더라."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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