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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 않(은) 남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우리는

by 그래도 나는 202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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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언제 개학이지?"
"엄마. 진짜!"
"왜? 너희는 방학이라 좋겠지만 엄마 생각도 좀 해줘야지. 이제 하루에 점심까지 다 차려줘야 하니까 정말 더 바빠질 거야. 너희도 빨리 학교 가고 싶지 않아? 학교 급식 정말 맛있잖아? 너희가 잘 몰라서 그런가 본데 매일 집에서 밥 해 주고 간식 챙겨 주고 너희 공부하는 것도 봐주고 그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야, 솔직히."
"엄마,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뭘?"
"난 엄마가 만든 김치가 정말 맛있다고 그 말하려고 한 건데."
"아, 그런 거였어? 엄마가 또 넘겨짚었네. 미안."
 
그때 딸은 방학을 한 날이라 급식을 먹고 오지 않았고 내가 차려준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방학식 하고 집에 온 지 한 시간도 안돼 나는 그만 심란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양심도 없이 벌써 '개학'씩이나 들먹였던 거다. 그러면서 갑자기 딸이 발끈(한다고 나만 착각하고)하길래 내친김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것뿐이다. 그런데 넘겨짚어도 한참을 넘겨짚었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선수 친다'라고 한다지 아마?
확신하건대, 딸은 내 말 같은 건 듣고 있지도 않았고 지난주에 내가 새로 담근 배추김치에 푹 빠져 '밥만 잘 먹더라.'


바야흐로 어린이가 있는 집은 '여름방학'이라는 공통분모로 대동단결하는 시기다.
이제 더 이상 나는 호환, 마마, 호랑이, 불법 비디오테이프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지루한 장마도 연일 지속되는 폭염도 전혀 두렵지 않다.
다만 내가 두려운 것은 초등생 남매와 하루 종일 방학기간 동안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아들만 태권도 학원 하나 다니고 딸은 그마저도 다니지 않는다), 그밖에 무엇이 더 있으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 고난의 가시밭길을 이길 수 없다.
단번에 지고 만다.
그나마 겨울방학보다는 더 짧은 편이라는 것에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만 하겠지.
시간은 언제나 공평하게 흘러가니까 정신 차리고 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등교하게 되겠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어떻게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나 나오느니 한숨이요, 늘어나는 것은 급조된 식단표로다.(물론 그 식단표대로 실행할 의지는 박약한 상태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난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지금의 저 어린이들처럼 방학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때가 내게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엄마는 방학마다 우리 4남매를 어떻게 다 감당하셨을까?
하긴 지금과 다르게 그때의 우리는 집에 있지 않았던 기억이 더 많다. 자꾸 친척집 투어를 다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게 4남매의 방학을 대하는 엄마만의 영업비밀이었던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지만 '여름 손님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던 돌아가신 할머니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1남 1녀를 둔 손녀는 선뜻 오빠네나 남동생네로 남매를 보낼 수도 없다. 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나중에 사무치게 그리워질 거라는 뻔한 간증도 지금 당장 내 코가 석자인 마당에 귀에 들어 올리 없다.
내게는 (여름 방학) 고난 주간이 거의 한 달가량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제 25일만 버티면 돼.

곧 주말이니까(주말은 거저먹고 들어가는 거니까) 반올림해서 (도대체 뭘 어떻게 반올림한다는 건지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을 지경이지만) 앞으로 20일 남짓, 이렇게 남은 방학 일수를 최대한 줄여 본다.
그러고 보니 내일모레 개학이겠구나.
(이렇게라도 아무 말 대잔치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는...)
 
* 전국의 '학생을 둔 보호자'에게 연민에의 호소를 갈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