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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 않(은) 남매

괜찮아.수능도, 대학도 필수는 아니야

by 그래도 나는 202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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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23. 세상에 똑같은 존재는 없으니까


< 우리랑은 별로 상관없네 >

"나중에 우리 애들은 학교 보내지 말고 그냥 홈 스쿨링 할까?"

딸이 태어나고 내가 한 번 던져 본 말이었다.

"그것도 괜찮지."

남편이 덥석 물었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엄연한 직장인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무지막지한 말을 한 건지 지금 생각해도 느닷없다.

미친 듯이 직장생활과 살림과 육아를 하면서 제정신이 아니었을 텐데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했던가?

 

"엄마, 내 친구는 집에 8시 넘어서 간대."

작년에, 그러니까 아들이 아홉 살 인생일 때, 초등학교 2학년일 때 내게 했던 말이다.

"빨리 가네. 내 친구 오빠는 학원을 열 개도 넘게 다닌대. 5학년인데 밤 10시 넘어서 집에 온대."

당시 열한 살, 그러니까 4학년이던 딸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렇게 학원 다니는 애들도 있구나.(=하지만 우리랑은 전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구나.)"

세상에는,

믿기 힘들지만,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설마설마했는데,

초등학생이 학원을 10개도 넘게 다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태어나서 보습학원 같은 건 한 순간도 다녀 본 적이 없는 나는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 압박감, 고단함,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물론 당사자인 아이가 원해서 그렇게 많이 다닐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섣불리 짧은 내 생각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일은 못된다.

나의 아이들은 현재 합기도 학원만 다니고 있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마당에 매일 아이들과 바깥 활동을 할 수 없어서다.

우리 부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아이들도 원하는 부분'에 시간과 돈을 들인다.

작년에 처음 시작해서 이제 일 년이 되어 간다.

당연히 '아이들이 원해서' 시작했다.

"혹시 학원 다니고 싶어? 원하면 말해. 어떤 식으로 어떻게 다닐 건지 계획을 얘기해 줘. 엄마 아빠가 들어보고 보낼 만하면 보내 줄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해왔다.

"엄마. 나도 친구가 다니는 학원 다니고 싶어."

오래전에 어린이집에 다닐 때 딸이 말했다.

"갑자기 무슨 학원? 어린이가 놀아야지 학원은 무슨 학원이야?"

생각지도 못한 학원 타령에 나는 놀랐다.

"친구 OO도 다닌단 말이야. 같이 가서 놀 거야."

어이없게도 딸의 목적은 '친교'에 있었다.

7살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동기'에 대해서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합격아, 학원은 친구랑 놀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야. 교육비를 내고 뭔가를 배우러 가는 곳이지. 친구랑 놀기에는 키즈 카페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그리고 친구랑 노는 것은 어린이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 학원은 단순히 친구와 놀기 위해서 가는 곳이 아니야. 알겠지? 네가 배우고 싶어서 가겠다면 보내줄 수 있지만 거기까지 가서 친구랑 놀려고 한다면 엄마는 절대 안 보내 줄 거야. 그건 아빠도 엄마랑 생각이 같아. 학원이 있는 이유와 거기 다니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잘 생각해 봐. 돈도 당연히 지불하고 네 시간도 거기에 쓰는 거야. 신중히 생각해야 돼. 학원까지 가서 친구랑 놀만 한 가치가 있는지 잘 생각해 봐라. 네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이유를 말해 줘. 그럼 엄마 아빠도 다시 생각해 볼게. "

"아, 그래? 알았어. 그럼 안 갈래."

순순히 딸은 받아들였다.

 

매일 아이들은 일단 EBS로 학습할 양을 채운다.

놀기도 열심히 놀아야 하지만 최소한 매일 해야 할 공부 양이 있긴 하다. 뭔가 모순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를 '대한민국에서 사는 초등학생의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일컫는다.

경험상 공부란 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 해야지 억지로는 절대 할 수 없다는 게(설사 마지못해 강제로 하더라도 자신이 좋아서 하는 공부에 비할 바가 아니라 생각한다.) 나의 믿음이다. 학원에 의지하기보다 아이들 스스로 주체적으로 공부하게 하고 싶어 내가 육아 휴직을 시작하고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면서부터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길들여 왔다.

매일 집에서 하는 학습 시간을 다 합쳐 봐야 30분에서 1시간 사이다. 그러니까 나의 아이들은 하교 후 집에 오면 1시간 정도 따로 할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잠들기 전까지 무제한 자유다.

물론 실컷 놀다가 거의 막판에 할 일을 한다는 게 폐단이라면 폐단이지만 어쨌든 할 일은 하고 있으니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과목 보충을 위해 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고, 우리가 억지로 학원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일단은 때를 기다린다. 나중에라도 아이들이 원하면 의견을 들어 보고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면 기꺼이 보내 줄 의향이 있다. 무조건 학원을 안 보내겠다는 게 아니다.

 

최근 수능 관련 뉴스를 보고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 집이랑은 별로 상관없는 일이네?

몇 번 밝혔지만 우린 아이들이 반드시 수능을 치르고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중요한 건 대학을 가느냐 안 가느냐가 아니다.

대학 가는 사람도 있고 안 가는 사람도 있는 거지 뭘.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 그런 점에 대해 아이들이 진지하게 지금부터 고민해 봤으면 한다.

물론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아이들 사교육비에 모든 걸 쏟아 넣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거니와 노후 대책도 필요했으므로.
우리나라 (일부)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전부를 다 걸 만큼 맹목적이라 정작 자신들의 노후 대책도 부실하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절대 그렇게는 살지 않겠다고 합의 본 지 오래다.

당장 내 코가 석자다.

나이 들어 아이들에게 부담을 넘어 '짐이 되지 않으려면' 대책이 필요했다.

나의 부모님이 내게 그러셨던 것처럼 대학을 가겠다면, 배우겠다는 자식은 거기까지 (어디까지나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지원해 주겠지만 그다음부터는 각자 알아서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 기사를 보니 최근 입시 정책과 관련해 학원가가 술렁이고 학부모들이며 아이들이 불안해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와중에, 흔들림 없이 편안한 어느 침대처럼 우린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하루에 열두 번 입시 관련 소식이 이랬다 저랬다 바뀐다 해도 크게 타격받을 일도 없다.

우리가 언제는 이렇게 안 살았나 뭐?

그러면서도 항상 마음의 준비는 한다.

갑자기 학구열에 불타 아이들이 '공부를 해버리겠다.'고 선언이라도 하는 날에는?

이를 어쩐다?

플랜 B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