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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 않(은) 남매

6.25랑 세일이랑 무슨 상관인데?

by 그래도 나는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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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근데 오늘 왜 세일을 안 해?"

평소에도 느닷없긴 하지만 정말 느닷없고 뜬금없고 황당하고 생뚱맞게 아드님이 말씀하셨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정말 나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 아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아?"

그러니까, 뭔가 교육이 필요해 보였다.

 

"오늘이 육이오네."

며칠 전부터 'Easy English'에서 육이오 관련 표현들을 소개해 주고 있었다. 마침 생각이 나서 불쑥 내가 한마디 했다.

"그럼 오는 무슨 세일 안 해?"

분명히 내 말을 새겨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아들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근데 왜 오늘은 쉬는 날이 아니야?"

딸도 가세했다.

이 철없는 것들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얘들아, 오늘은 신나서 노는 그런 날이 아니야. 무슨 날인지는 알아? 한국 전쟁이 어났던 날이야."

"근데 왜 현충일은 쉬는데 오늘은 안 쉬어? 쉬면 좋을 텐데."

딸은 오늘 같은 날 '쉬는지 안 쉬는지'가 제일 중요해 보였다.

"오늘은 한국 전쟁이 일어난 날이고,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분들을 기리는 날이니까 법정 공휴일로 정한 거 아닐까? 모든 날들을 다 법으로 공휴일로 정할 수는 없잖아. 일정한 기준이 있겠지."

어릴 적에 배운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해 주었다.

적어도 단지 쉬는 날이 아니라고 아쉬워할 것도 없고, 얼토당토않게 '세일'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날이 바로 6월 25일이 아닌가 싶었다.

학교에서 배웠을 텐데 아들 입에서 갑자기 세일 얘기가 왜 나왔을까?

설마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과 혼동하고 있는 걸까?

간단하게 몇 마디로 설명을 해 줬다.

"엄마 어렸을 때 반공 글짓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요즘 너흰 그런 거 안 하지?"

로 시작해 현재도 어떤 두 나라가 전쟁 중이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직도 그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참담한 비극이었다는 것을, 전쟁의 참혹함을.

아무리 어리다지만 10 살이면 알 때도 됐다.

알아야 한다, 고 나는 생각했다.

"너희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어, 오늘이 무슨 날인지?"

"배웠지."

분명 배웠다고는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별 감흥도, 체감하는 것도 없는 듯 보였다.

"우리 같이 한번 알아볼까 오늘이 어떤 날인지? 지금 러시아랑 우크라이나도 전쟁 중인 거 알지? 벌써 1년도 넘었잖아. 한국전쟁도 사실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 상태야. 전쟁을 쉬는 중이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우리나라잖아. 독일은 진작에 통일 됐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아직도 안 끝났어? 에이, 엄마 *튜브 보면 다 나와있겠지. 괜찮아."

딸은 시큰둥했다.

나는 전쟁을 겪고 자란 세대는 아니지만 어릴 적에 하도 교육받은 게 많아서 그런지 보통 날로 안 여겨진다. 반공 글짓기, 반공 포스터 신물 나도록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뭔가가 약해지는 것 같기는 하다.

지금도 세계 저편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 그 생각을 하면 몸서리 쳐진다.

누가 그랬던가, 전쟁은 나이 든 이들이 일으키고 희생은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이 다 당한다고...

아무리 교과서에서 잠깐 봤기로소니 전혀 남의 일 보듯 하는 아이들이 조금 안타까웠다.

내가 대단한 애국자는 못되더라도 어떤 날들이 되면 숙연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날 하루만이라도 그 의미만큼은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하지 않을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게, 알려 줄 수 있는 게 비단 영문법과 수학 공식뿐일까.

세상을 먼저 산 사람들로서 진정 전해 주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가 없는 자식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우리보다 먼저 태어나고 가신 분들, 그분들이 없었더라면 우린 결코 이렇게 목숨을 받지 못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