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뭘 가져왔는지 봐봐요, 엄마랑 누나 주려고 간식을 챙겨 왔어."
또 가게 차리게 생겼구나.
"엄마, 엄마 머리 자르니까 스무 살 같아!"
서,설마 그럴리가!(앞으로 사회생활 잘 하시겠어! 장래가 촉망되는군.)(또 설마 백 스무 살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엄마는 왜 이렇게 요리를 잘해?"
아직 다른 집 음식 많이 못 먹어 봤지?
"엄마,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아니, 솔직히 얼마나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
"음~ 엄마한테선 좋은 냄새가 나. 킁킁."
과장도 심하구나, 너 비염 있잖아.참고로 비염이 있는 사람은 냄새를 잘 못 맡는다는 비보를 너에게 살짝, 반드시, 알려주고 싶구나.
세상에는
놀랍게도,
믿기 힘들기만,
여태 현실세계에서 본 적도 없고 주위에서 소문으로도 들은 적 없는, 엄마를 향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아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것도 바로 우리 집에 말이다.
"우리 아들이 또 친구들이랑 신나게 노느라 집에 늦게 오셨나?"
하교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은 날이 있었다.
아들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슈크림을 좋아한다고 했지? 자, 조심히 열어요. 내가 입구를 잘 막고 들고 왔어. 김이 뜨거우니까 잘못하면 손 데일 수 있으니까 내가 해 줄게."
집에 CCTV라도 설치했더라면 그 장면을 고스란히 저장해서 그 아들의 아버지란 사람에게 당장 전송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태교를 했길래 저런 아들이 태어났을꼬?
어쩜 누가 집에서 가르쳐준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저렇게 예쁜 말과 행동을 밥 먹듯이 하는 거람?
"엄마가 점심을 늦게 먹어서 아직 배도 안고픈데 이따가 먹어도 되겠지?"
라고는, 내 아들 코가 쑥 빠지게 하는 말 같은 건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물론.
그날따라 나는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아들이 온 시각이 막 양치도 마친 후라서 붕어빵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위가 대(大)하다.
"우리 아들이 엄마를 생각해서 붕어빵을 다 사 왔어? 세상에! 정말 슈크림이네. 엄마가 좋아하는 맛인데."
호들갑을 한껏 떨며 그다지 구미 당기지 않은 그 붕어빵을 최대한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놀라웠다.
맛있어서라기보다 너무 달아서.
"어쩜! 우리 아들이 사줘서 그런지 정말 달콤하고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붕어빵은 처음이야. 역시 우리 아들이 맛있는 걸로 잘 사 왔네! 고마워."
마치 텔레마케터(나는 왕년에 그런 일도 해봤다.)가 미리 인쇄된 멘트를 기계적으로 감정 없이 읽듯 술술 말했다.
달콤한 간식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최근에는 나도 나이를 먹은 건지 그렇게 잘 먹던 아이스크림도 질려 가고 있었고 이젠 단 음식이 그다지 당기지 않기 시작했다. 슈크림 붕어빵은 달아도 너무 달았다. 하지만 내 아들이 나에게 선사하는 그 달콤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디 내놔도 그 달콤함이 뒤지지 않을 어린이, 자랑스러운 새 나라의 사랑꾼, 내가 낳았지만 끔찍이도 사랑스럽다.
"엄마, 무슨 말이야? 내가 작년에도 슈크림 붕어빵 사 줬잖아? 기억 안 나? 하여튼 엄만 나이가 들어서 기억도 못하고. 큰일이야 큰일! 건망증에 좋은 음식 좀 먹어야겠어."
아니, 얘가 잘 나가다 왜 이러실까?
"참, 엄마 그거 두 개 다 먹으면 안 돼. 하나는 아빠 거야. 아빠는 팥을 좋아하잖아. 남겨 놔야 돼. 알겠지?"
그 와중에 제 아빠 몫까지 내가 가로챌까 봐 신신당부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뭐야, 두 개 다 엄마 거 아니었어? 그냥 다 먹어버리자. 어차피 아빤 네가 이거 사 온 줄도 모를 텐데. 너만 아무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르잖아. 응?"
"엄마는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도 먹어야지. 엄마만 먹으면 그만이야? 공평하게 하나씩 먹어야지 왜 엄마만 두 개나 먹으려고 그래?"
"아빠한테는 붕어빵 얘기 안 하면 절대 모를 거 아냐?"
"안돼! 하나는 아빠 줘야 돼."
이렇게 말하면서 붕어빵 봉투를 야무지게 봉하는 어린이가 한 명 있었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근데 저녁까지 있으면 이게 다 식어버릴 텐데, 어떡하지?"
내가 가르쳐 주랴?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러니까 따뜻할 때 엄마가 다 먹어버리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엄마, 엄마는 콩 한쪽도 나눠먹으라는 말도 못 들어봤어? 엄마는 두 개 먹고 아빠는 하나도 못 먹으면 불공평하지!"
콩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걸 또 나눠 먹어?
붕어빵도 두 입이면 끝이겠구만 적당한 선에서 합의 보자, 우리. 응?
아들은 5살 때부터인가 '공평'이라는 단어의 뜻을 내게서 배우고 난 후 걸핏하면 공평을 외쳐댔다.
가끔은 얼토당토않은 상황에서까지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바람에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게다가,
"엄마는 42년을 살았는데 그것도 몰라? 아니지. 사실은 44년이지? 만으로 안 하면 말이야, 원래는 44년인데 만 나이 덕분에 42년인 거였잖아. 아무튼!"
이라는 말로 그날도 또 엄마의 나이 타령을 하는 일도 잊지 않으셨다, 물론.
아들바보,
그냥 바보,
둘 다 만들어 주지 않은 진정한 효자.
하마터면 어떤 바보가 될 뻔했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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