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친정집에 심은 것은 사과나무 두 그루 말고도 로즈마리 한 그루가 또 있었다.
모두 딸의 탄생을 기념하는 의미였다.
사과나무는 심은 지 4,5년이 지나자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로즈마리는 더 한참 뒤에 꽃을 피웠다.
사과나무는 처음 심은 자리 그대로였지만 , 로즈마리는 2014년에 태어난 아들이 돌을 맞은 후 2015년에 꺾꽂이를 다른 곳에 했다.
"누나는 탄생 기념수로 사과나무를 두 그루씩이나 심어놓고 내 나무는 어디 있어?"
라고 아들이 꼬치꼬치 캐물을 때를 대비해서였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터였다.
"합격이 너 낳은 기념으로 심은 거야."
라고 딸에게 말하고 뒤돌아 서서
"우리 아들 낳고 기념으로 엄마가 심은 로즈마리지."
라며 융통성을 발휘하려고 했다.
다만 딸과 아들이 같이 있을 때는 그저 침묵해야 하리.
솔직히 아들의 나무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딸이 태어나던 해 처음 심은 로즈마리는 3년 정도 자라자 가지가 많이 생겨 제법 무성해졌다.
텃밭 가에 심은 후 중간에 한 번씩 꺾어 사방에 꺾꽂이를 했다.
당시 꺾꽂이를 한 로즈마리는 이내 요단강을 건너버렸고 원래의 로즈마리만 살아남았다.
친정에서 우리 집으로 가져와 키워 볼 요량으로 꺾꽂이해서 화분에 심은 것도 마찬가지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몇 번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한결같이 참담했다.
2015년에 새로 잡은 터전에 로즈마리 가지를 심은 그것만이 여전히 건재하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로즈마리가 꽃을 다 피웠다.
아마 키운 지 7년에서 8년 사이였을 것이다.
처음 그 꽃을 본 날의 그 황홀함과 느닷없음이라니.
예쁜 것도 예쁜 것이지만 무사히 자라 준 로즈마리에 나는 감격했다.
꽃까지 보고 나자 곧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장마철을 노리고 사방에 로즈마리 꺾꽂이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몇 번 실패를 하고 터득한 나름의 노하우다.
빈 땅만 있으면 로즈마리 줄기를 꽂았다.
어쩌다 한 두 그루 실패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뿌리를 내린 것이 더 많았다.
새로 꺾꽂이 한 그 로즈마리에서도 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열매도 열리는 거 아닌가(로즈마리 열매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도 없지만) 싶었다.
친정집에 놀러 온 지인들은 다들 그 로즈마리 꽃을 보고 감탄했다.
그리고 그들이 집에 돌아갈 때는 항상 한 움큼의 로즈마리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도 부지런히 꺾어 사방에 보시를 했다.
꺾어도 꺾어도 그 생명은 꺾이지 않고 더 무성하게 이어져왔다.
생선 구이를 할 때,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모기를 쫓을 때(로즈마리를 두면 모기가 안 온다는 얘기를 듣고 써 본 방법이다)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친정집에 놀러 온 내 교사 친구는 꺾어 간 로즈마리를 교실에 두고 키운다며 한 번씩 얼마나 자랐는지, 얼마나 잘 키우고 있는지 사진을 찍어 보내오기도 했다.
그런데,
잘 크고 있는데,
그게, 너무 잘 커서 또 문제다.
도로까지 그 가지가 뻗어나가서 가끔 밟히기도 한다.
가지치기를 좀 해줘야지 하면서도 선뜻 자를 수가 없다.
새해가 됐을 때 강철처럼 단단한 로즈마리 나무가 되어버린 지 오래인 그것을 올해는 반드시 처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미 여기저기에 꺾꽂이해 둔 게 많았으므로 길 위에서 밟히느니 차라리 베어버리자고.
베어내더라도 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꺾꽂이를 해서 새로운 땅에 뿌리내리게 하면 될 일이라고.
그런데 하필이면 그즈음에 꽃이 만개해 버린 것이다.
아직 봄이 오기도 전이었는데 꽃은 철을 모르고 활짝 피어났다.
그래서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꽃이 한창인데 차마 벨 수가 없었다.
장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장마가 되자 이런저런 일들로 그때를 놓치고 한여름이 닥치고 말았다.
한여름은 꺾꽂이를 하기 적당하지 않은 계절이다.
간간이 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래, 그 꽃이 다 지고 나면, 그때 정리해야지.
그렇게 또 미뤄졌다.
그런데 며칠 전 친정에 갔다가 그 보라색 꽃이 드물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게다가 제법 꽃망울이 많이 맺혔다.
베어 낼 만 하면 꽃이 피고, 또 꽃이 핀다.
고민되기 시작했다.
한 자리에서 10년 가까이 자란 로즈마리는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돼 버렸다.
사방팔방으로 가지가 뻗어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그것을 베어내려면 여간 단단한 게 아니어서 손으로 꺾을 수도 없고, 전기톱이라도 동원돼야 할 판이다.
세상에 만상에, 전기톱이라니.
그 로즈마리가 어떤 로즈마리인데...
고민된다.
자꾸 도로로 뻗어나가는 가지는 종종 자동차 바퀴에 깔리기 일쑤고, 무심히 걷는 사람들 발 밑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자르긴 해야겠는데 그 무시무시한 일을 내 손으로 하자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마 나는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들판에 100년을 내다보고 로즈마리를 심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마리야, 나 정말 심각하단 말이야.
너를 어쩌면 좋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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