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이거 황칠 진액 맛있다. 하나 더 먹어도 돼?"
"아니, 하나만 먹자. 뭐든지 지나치면 안 좋을 수 있어."
그날도 하교하고 오자자마 아들이 급히 찾는 것이 있었다.
"엄마, 황칠액 있지? 그거 하나 먹어도 되지?"
"응. 있긴 있는데. 또 먹게?"
"어제 하나 먹었으니까 오늘도 하나 먹어야지."
"그래? 근데 진짜 어린이가 먹어도 되나 모르겠네."
라고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아드님이 한 마디 하셨다.
"어? 벌써 다 먹어 버렸네? 이거 너무 조금 들어있다."
그 어린이의 몸 생각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서부터 양파즙, 배즙, 양배추즙, 포도즙, 호박즙, 무화과즙, 사과즙, 즙이랑 즙은 골고루 섭렵하셨다.
아기 때, 그러니까 두세 살 적에 친정에서 양파즙을 처음 먹인 적이 있었다.
"이거 양파 주스인데 먹어 볼래?"
내가 먼저 맛나게 시음을 하고 아들에게 권했었다.
"이거 몸에 좋은 거야. 우리 아들도 한 번 잡솨 봐. 맛있어."
아닌 게 아니라 달큼한 양파 맛이 나고 은근히 입맛을 돌게 하기도 해서, 주위 사람들이 맛있는 거라고 바람 좀 넣고 아들 앞에서 꿀꺽 꿀걸 세상 맛나다며 후루룩 마시면 멋모르고 덩달아 마시기 딱 좋은 나이였다.
물론 처음에는 난생 맛보는 희한한 느낌에 진저리를 한번 치기는 했으나 옆에서 외할아버지도 드시고 엄마도 잘 마시고 강력히 권하기까지 하는 데에야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드님은 각종 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것도 이왕이면 '몸에 좋다'는 그런 종류로.
최근 황칠액 선물 세트가 집에 들어왔다.
"이거 좋은 거 아냐? 몸에 좋다는 것 같던데?"
내 말에 남편보다 더 매의 눈으로 그 제품을 스캔하며 뒷면의 성분을 꼼꼼히 따지며 주의 깊게 살펴보는 열 살짜리 어린이가 한 명 있었다.
"아버님 갖다 드려."
사위가 또 크게 선심을 쓰려는 찰나였다.
"엄마, 나 이거 먹어도 되지?"
아들이 한 봉지를 집어 내 앞에 내밀었다.
"글쎄, 어린이가 이런 거 먹어도 되나?"
황칠액을 들어는 봤지만 먹어 본 기억이 없어서, 만에 하나 혹시 체질에 안 맞거나 한다면 안되니까, 게다가 그 시음자가 어린이가 될 터였으므로 나는 먼저 그 안전성(?)을 따져 봐야만 했다.
"한번 알아봐야겠다. 다 좋다는 말만 있네. 진짜 애들이 먹어도 되는 건가?"
난 정말 확신이 없었다.
"에이 엄마, 좋은 거라며. 그럼 나도 먹어야지. 이런 걸 어린이가 먹어줘야 건강하게 자라지!"
아들이 난생처음 어떤 시음 기회를 놓칠까 봐 내게 쐐기를 박았다.
"그래, 네 말이 맞긴 맞다만 어린이도 먹어도 되는지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러지."
"괜찮아 엄마. 먹어도 돼. 몸에 좋은 거니까 어린이도 먹어도 되는 거지."
그런 것 같긴 한데, 나도 잘 모르겠다니까 그러시네.
"우리 아들은 뭘 또 그런 걸 먹고 싶어 할까? 그냥 외할아버지 갖다 드려."
라고 남편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아들이 선포했다.
"어? 벌써 이거 뜯어버렸는데? 뜯었으니까 먹어야지. 이대로 놔두고 안 먹으면 상하잖아. 엄마가 음식 버리면 안 된다며?"
마지막 한 모금까지 탈탈 입에 털어 넣고 아들은 상쾌한 기분으로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이거 먹어서 그런지 더 힘이 나는 것 같아, 엄마."
라고 겨우 두 번 먹은 그 황칠액의 효능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면서 말이다.
나머지라도 아빠 갖다 드려야 하나?
아빠와 아들 사이에서 나는 또 한 번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사이좋게 반씩 나눠 주면 될까나?
유전자의 힘이다.
몸에 좋다면 일단 그것이 무엇이 됐든 흡입하고야 마는 성미,
남편의 그것을 ctrl+c 해서 ctrl+v 했다.
아, 세 살 때 먹던 즙 버릇 10살까지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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