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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면직-국가직 공무원 남편의 공무원 그만두기

국가직 공무원 의원면직 하고 한 남편의 거짓말

by 그래도 나는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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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본격적으로 새살림에 재미를 느껴볼 새도 없이, 남편이 국가직 의원면직을 했고 나는 살던 대로 살고, 다니던 데로 출근을 했다.

 

남편은 일단은 우리 집(그러니까 처가)엔  공무원을 그만두었다는 얘기 같은 건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게 했고, 아~~~~~무 말하지 않았고, 자신의 집(그러니까 시가)에는,

"휴직을 했다."

라고 간단히 전했다.

그때 무슨 말로 그렇게 전달했는지는 모르겠다.

언제쯤 그런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에 없다.

난 그런 것엔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시가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사실은 그 내막을 알고 보면 엄연한 공무원 퇴직이지만 그럴싸한 사유로 휴직을 했다고 한 것 같은데, 이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데다가(시골 어른들 기준으론 한 10년 정도 한 곳에서 일해야 꾸준하다 느낄 것이므로) 가뜩이나 며느리 들이고 새살림 내 준지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한동안 나를 추궁해서 자세한 내막을 알고자 여러 차례 시도했던 것도 같다.

나는 중간에서 빠졌다.

아들과 직접 대화하라고.

 

남의 일이야.

남의 일은 보기만 하는 거야.

끼어드는 거 아니야.

나는 사실대로 말하자고 얘기했으나 남편은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고집 피웠으니 내가 더 해줄 일은 없었다.

 

본인이 거짓말을 했으니까 그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게 마땅하다.

내가 거짓말한 것도  아닌데 중간에 낄 필요가 없다.

만약 내가 중간에서 끼게 되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의무'가 있는 앞날 창창한 새댁은 본인의 의지대로 모든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야 말았을 것이다.

 

왜 거짓말을 했나 몰라.

나는 그때도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왜 말을 못 해.

"사실은 휴직이 아니라 퇴직이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

라고.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리란 걸 예상했던 게지.

속은 있어서.

나한테 호기롭게 했던 만큼 했으면 시가 동네 어귀에 '축 의원면직' 이런 현수막 한 장 걸고도 남았겠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들이 휴직한 사실(엄밀히는 거짓말)을 알고 시어머니는 그날부터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셨다.

이상하다.

일을 그만둔 사람은 아들인데 왜 잠 못 이루는 사람은 어머니인가.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는데.

너무너무 걱정이 돼서, 아들도 걱정, 며느리도 걱정.

내가 보따리라도 싸서 나가버릴까 봐?

철없는 것들의 앞 일이 걱정이었을 테지.

 

어라?

난 잠 잘 잤는데.

어디까지나 당사자 문제인데.

나는 나고 너는 너고.

나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너는 공시생으로서 수험생활에 집중해야 하고.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닌가.

이제 보니 시어머니 너무 예민하시다.

 

근데 그게요, 사실은 말이죠. 휴직도 아니고 아예 그만두셨어요, 아드님이요.

 

남편은 숨길 수 있는 데까지 집에는 숨기고 말을 솔직하게 하지 않았다.

나에게도 단단히 일렀다.

자기 집에 가서 괜히 엉뚱한 소리 하지도 말라고.

그럼 우리 집에 가서는 해도 되고?

그럼 자기 집에 나를 데리고 가지를 말든지. 같이 가자고 하지를 말든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면 나도 감당 못한다.

 

수 틀리게 하면, 나도 다 불어 버리는 수가 있어!

 

나 같으면 그렇게 안 산다.

교행 시험 붙을 자신 있단 사람이 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신담?

나라면 그만뒀으면 그냥 그만뒀다고 최대한 빨리 말해버리고 내 할 일 할 거다.

내가 한 거짓말이 언제쯤에나 들통날까 전전긍긍하며 이 거짓말로 저 거짓말을 덮어두고, 이 말하고 저 말하고. 머리가 여간 잘 돌아가지 않고서야 둘러대기도 힘들겠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집에 적당히 잘 둘러대는 걸 보니까 안심이 되네, 합격하겠어.

 

솔직히 난 거짓말하는 시간도 아깝다.

머리가 매우 비상한 편이 못 되는 나는, 나를 아니까 아예 거짓말 같은 건 최대한 안 한다.

물론 가끔, 아주 가끔은 아름다운 거짓말도 살아가는 데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들어 주므로 거짓말을 아예 안 하고 산다고는 양심상 말 못 한다.

 

시가도 시가지만 우리 집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사실을 알게 되면, 아니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 집이 더 충격을 받을 것 같고, 단지 휴직을 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벌써 두 분 머리에 걱정 한 짐을 올려놓으실 게 분명하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도 나와 같이 생각하실지도.

결혼하기 전에나 그만 둘 일이지.

 

나는 3남 1녀 중 나름 귀하게 자랐다.

흔한 아들보다 하나뿐인 딸을 고명딸이라며 우리 아빠는 특히나 나를 예뻐해 주셨다.

종종 그런 얘기를 들었다.

나 태어나던 날, 그러니까 43년 전 이야기임을 꼭 염두에 두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더군다나 시골 산속이 배경이라는 것을 충분히 감안하시고요.

 

내가 태어나자 갓 태어난 내가 눈부셔할까 봐(물론 나의 출생 장소는 아궁이 불 지피는 부모님 방이다.) 아빠가 보자기로 그 노란 백열전구를 손으로 다 감싸서 덮어 주셨다는 거다.

아빠는 40년 전에 이미 수유등을 만드신 거다.

그날 눈보라가 몰아쳤다고 한다.

오랜만에 많은 눈이 내렸고.

오빠 둘을 낳고 세 번째는 딸이라 기뻤고, 또 딸을 낳을 줄 아시고 넷째를.

그런데 그만, 그만......

취소 취소.

남동생이 보기 전에.

 

세상 모든 부모님이 다 그러하겠지만 다들 자기 자식이 제일 잘나고 똑똑하다고 단단히 오해를 하시질 않는가.

 

사위만 공무원이냐, 내 딸도 공무원이다.

아들만 잘났냐, 딸도 잘났다.(자세히 보면 딸이 더 잘났을 지도.)

사위가 벌어오는 그 돈 내 딸도 번다.

대결이 시작되면 끝이 안 날 거다.

결혼식장에서도 친척들이 어찌나 본인들의 조카를 자랑하시는지.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 집 아들 초저녁에 공무원 그만뒀다.

양쪽 집에선 모르신다.

언제까지 남편은 그걸 숨길 심산인지.

남편은 그나마 충격이 덜 할 거란 기대에 휴직한 거라고 말했다고 했다.

나름 머리 쓴 거다.

난데없이 휴직을 한 것도 충격인데, 사실을 그게 거짓말이었고 퇴직을 해버렸다는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이중으로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진 않을까.

그냥 단순하게 한 번에 끝내자.

그렇게 머리 쓸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사실대로 밝히면 될 것을.

 

그렇잖아도 우체국 보험 팔 성격은 못 되는 소심한 사람이 사고는 크게 쳐 놓고 양심은 있어서 우리 부모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단다.

서로 얼굴 똑바로 쳐다봐야 좋을 건 없다 어차피.

우리 부모님이 눈치를 챈 것 같으시단다.

소문이 난 것 같단다, 본인이 그만둔 거.

자기를 보는 우리 부모님 눈빛이 전과 달라진 것 같단다.

자기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 것 같단다.

우리 집 가면 너무 불편하단다.

 

결론은 우리 집 가기 싫단다.

 

남의 집인데 당연히 불편하지.

나는 뭐 시가가 마냥 편해서 가는 줄 알았더냐.

 

결론은 남편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내 마음대로 단정 지어 버렸다.

"찔리는 게 있으니까 괜히 그렇게 느껴지는 거지. "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죄인은 자기 말이 맞는 것 같단다.

왜 죄인인고 하니 달리 죄인이 아니다.

단순히 일을 그만둬서가 아니라 거짓말을 해서 죄인이다.

요즘도 아이들에게,

"아빤 거짓말하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거 잘 알지?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거야!"

이러면서.

뭐가 안 맞는 것 같은데?

갱년기라 건망증이 심해져서 그런가?

 

'증거자료 2'로 채택한다.

 

언젠가 어디엔가 꼭 긴요하게 쓸모가 있을 것 같은 예감.

 

종종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나 남편은 내 행동이 더 자주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어차피 부부란 서로 상대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끼리 사는 거 아니겠는가.

그 당시에도 나는 그냥 사실대로 솔직히 말하고 마음이라도 편히 살지 왜 굳이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들킬까 봐 걱정하고 사냐고 뭐라고 하기도 했다.

 

시가에서는 이제 아들이 휴직을 해 버렸고 내가 집안의 가장이 돼서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이 은근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네가 고생이 많다."

로 시작해

"그래도 네 남편이니까."

로 마무리되는 같은 내용의 재방송.

시청자의 의지와 무관하고 시청자의 의견 같은 건 필요 없이 같은 내용으로 명절마다 같은 영화가 방영되는 것 같은 느낌.

 

아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무슨 말을 안 했을지 모르겠지만 시가에 갈 때면 항상 시어머니는 내가 아들을 나 몰라라 할까 봐 걱정이셨나 보다.

"너 고생 많이 하는 거 다 안다. 그래도."

암요, 내 마음고생 정말 말도 못 하지요.

어쨌거나 당신 아들 뒷바라지 좀 잘해달라는 대충 그런 얘기.

 

내가 잘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공시생은 공시생이 알아서 살아야 한다.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시험 보는 거다.

 

남편 인생 내가 대신 살아 줄 수도 없다.

나는 내 인생 살기에도 바쁘다.

 

당시를 생각하면 잊었다가도 다시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2022.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