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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원면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 왜 '남편은, 적어도 남편만은 그렇게 결사반대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그렇게 울부짖었느냐.
다 이유가 있지.
그는 11년 전 내게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이니까, 내 마음을 이해해 주리라고, 적어도 그 사람만은 내 마음을 알 거라고 단단히 착각을 했던 게지.
매사 엉뚱한 분야에서만 얼리어답터인 남편.
공무원 의원면직계의 얼리어답터.
결혼하고 신혼여행 갔다 오자마자 숨길 수 없는 얼리어답터의 본성을 드러냈다.
의원면직도 일찍 해야 제 맛이란 말인가?
그것도 신혼 초에?
발령받은 지 이제 겨우 1년 조금 넘었는데,
서두를 게 없어서 결혼하자마자 신혼여행 갔다 오자마자 바로 의원면직을 선언한단 말이오?
정말이다. 나는 정말 남편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다.
내가 공무원 퇴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래, 그 마음 나도 잘 알아.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하고 신중히 결정했겠어? 자기가 제일 소중하지. 그깟 공무원 뭐 대단한 거라고 걱정 마. 내가 있잖아. 돈은 많이 못 벌어도 그래도 우리가 알뜰살뜰 살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자긴 아무 걱정 말고 나만 믿어."
이런 답변까지는 기대도 안 했다.
저런 대사는 영화에서나, 아마도 아직 철 모르는 어린 가슴을 팔딱이게 하는 소설 속에서나 들을 법한 남의 남자들이 하는 대사니까.
30년을 이 땅에서 살아왔는데 그런 눈치 하나 없을까 내가?
<사건 개요 >
2009년 5월 23일 오전, 지방직 일반행정 응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한 교실에서 남자 친구와 시험을 치렀었음) 아니, 이런 악연이 있나.
2009년 5월 23일 오후, '구꿈사' 공무원 카페에서 낯선 (몹쓸) 사람으로부터 쪽지 배달
내용인즉, '당신 때문에 내가 떨어졌다.'그러나 '본인은 국가직 시험은 잘 봐서 붙을 것이다'라는 자랑질로 교묘하게 접근 시작
2009년 6월 어느 날, 쪽지남이 자꾸 만나자며 끈질게 요구, 그가 연하라는 사실에 안도(철없는 연하는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으므로) 하며 만남 시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새 나의 남자 친구 행세 시작, 이것도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사귀고 있었음
2009년 늦가을 국가직에 합격한 남자 친구가 근무 희망지역을 고민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내가 있는 곳으로!'낙찰해 줌.(아마도 지방직 시험 종료 종이 울릴 때 내 정신을 종소리와 함께 날려버리고 집에 온 것이 거의 확실함.) 왜 그랬어 왜? 얼마나 정신이 나갔길래 유구한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는 내 고향 이곳으로 끌어들인 거야.
2010년 양가에서 서로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게다가 공무원이라는 말에 혹해(어른들은 참 공무원 좋아하신다). 얼른 그 무언가를 해치워 버리고 싶어(남자 친구 집>>>>>>>>>> 우리 집) 함.
그러나 같은 해 얼마 뒤 세 살 적고, 세 살 많다는 이유가 뜻밖의 복병으로 나타나 잠시 양가 어른들의 계획에 차질을 빚고 첫 번째 위기 봉착.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합시다. 엄격히 두 살 차이잖아. 그놈의 음력 타령, 빠른 83 타령 좀 그만하시오.
2010년 남자 친구의 조부모님 제삿날 남자 친구 집에 처음 갔을 때 얼떨결에 예배 보는 동네 사람들 틈에서 축하 인사받으며 안타깝게도 곧 혼인신고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확실한 불안감을 느낌.
2010년 11월, 나를 만난 남자 친구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결혼을 서두르심.
'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시다'면서.
어라? '나 때문에 떨어졌다' 수법이 비슷한걸?
2010년 11월 말 양가의 극적인 상견례 자리 마련.
그날 그 자리에서 아버님은 '올해가 가기 전에 결혼시키자'라며 너~~~ 무 앞서가심.
아! 남자친구 식구들은 뭐든 다들 얼리어답터인가.
그래, 내가 그만큼 맘에 드셨단 의미로 받아들이자.
역시 인생 경험이 풍부하신 어른이라 사람 보시는 눈 하나는 정확하시구나.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처음에 나보고 나이 많다고 남자 친구 집에서 꺼렸다는 얘길 들은 것도 있고 해서, 또 실은 우리 집도 남자 친구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그 이유로 아주 흡족해하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리셨는지,
아빠가 '그렇게 서두를 게 뭐가 있느냐, 결혼은 신중히 결정해야지, 뭐가 그리 급하냐. 천천히 해도 된다'하시며 잠깐 튕기셔서 두 번째 위기 봉착
2010년도 언젠지도 모르지만 '궁합을 보니 그렇게 좋더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화근이 되어 결혼에 불씨를 댕김.
확인되지도 않고 결코 동의할 수 없으며 그럴 리가 없는 그 말에 남자 친구만 혼자 신나 함.
2010년 12월 나보고 '자기 나이도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는 게 어떻냐'라는 남자 친구,
'아빠가 연세도 많으신데'라며 예의 그 연민에의 호소 시작. 게다가 '난 아직 젊으니까 괜찮지만 그래도 자기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라며 나를 위해주는 척하는 파렴치한 언행을 종종 일삼음.
도대체 남자 친구는 왜 굳이 안 해도 될 소릴 자꾸 하고 또 하는가.
공무원에 합격한 사람과 사귀는 상대는 최대한 빨리 결혼을 서둘러하고 싶어 하는 현상을 내 눈으로 많이 목격했다.
2010년 12월 중순경 저런 남자 친구는 다른 여자랑 결혼하면 인류 평화가 깨어지고 개인적으로는 내가 커다란 중범죄를 방관하게 되는 셈이므로, 게다가 죄 없고 순진한 남의 집 귀한 딸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은 대한민국 9급 지방직 공무원으로서 차마 할 짓이 아니므로 '측은지심'을 한 껏 발휘해 그냥 내가 십자가를 짊어지기로 결정,
스스로 번뇌 덩어리를 이고 지고 고난의 가시밭길 걷기를 결정함과 동시에 결혼 날짜를 잡고 결혼과 결혼식 준비 시작.
2011년 1월 초 남자 친구에게 내 사무실 사람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나와 남자 친구의 혼인신고 사실 통보.
2011년 1월 초 나랑 남자 친구가 살고, 근무하는 지역에서 신부 측 하객 미리 피로연 잔치 벌임.
2011년 1월 8일 그 문제의 토요일에 결혼식이란 걸 치러버림, 어쩌다 보니.
그때 내가 왜 그랬던고?
2011년 1월 9일 일본으로 신혼여행 출발
그리고 일주일 후,
신혼여행을 마치고 양가 집안 어른들께 인사 이미 다 마치고 home, sweet home에 돌아온 지 일주일 정도 됐으려나.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도 끝나고 처음으로 출근해서 2 주 전에 했던 대로, 남들이 어떻게 하나 그동안 봐 온 게 있어서 또 벤치마킹을 했다.
결혼식에 와 주시고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항상
그 관심과 은혜
기억하겠습니다.
살면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고
많은 고비가 찾아와도
결혼할 때
처음
두 사람의 마음가짐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부부가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 마음 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1년 1월 신혼여행 마치고 돌아와
제정신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채
전 직원에게 감사 메일을 쓴 어느 신부의 글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때 정신도 챙겨서 돌아왔어야지. 내가 저렇게 거짓부렁을 잘하는 사람이었나. 숨은 재능을 발견한 순간이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글이다.
내 메일을 보고 산업계 주사님께서 깜짝 놀라셨단다.
"아니 왜 그러셔요?"
"임자 씨가 한 그 말, 옛날에 우리 집사람이 나랑 결혼할 때 했던 말이랑 똑같아서. 신기하게."
괜찮다. 저런 말 아무렇게나 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막 마치고 돌아온 상태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렇게 말할 수 있는 법. 충분히 용서가 되리라. 자비는 그럴 때 베푸라고 있는 것일 테니까.
그 누구라도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신랑 신부는 대개가 아마도 제정신은 아직 차리지 못했을 것이므로.
동네방네 굳이 안 해도 될 소리, 지키지, 또 지켜질 것도 같지 않은 저 다짐을 열심을 자판 두드리며 작성해서 이미 전 직원에게 보내버렸는데, 지금 뭐라고라? 사표를 낸다고라? 의원면직? 그 공무원씩이나 되는 것을 그만두겠다고라?
'의원면직을 하겠다고, 사직서를 내겠다고, 무려 공무원을 그만두시겠다고? 남편이?'
내가 그렇게 일렀건만.
나중에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미리미리 일은 저지르라고.
다 저지르고 난 다음에 결혼을 다시 신중히 생각해 보자고, 내가 말했잖아.
내가 말할 때 뭐 대체 뭐 들었어?
혼인신고 끝난 다음엔 절차가 복잡해질 예정이니까 신고서 작성하기 전에, 수리되기 전에 맘껏 다 말하고 저지르라고 분명히 말했잖아.
민원실 와서 이혼 신고서 제출하면서까지 티격태격하는 그 흔한 부부들처럼 나도 그러긴 싫다고.
사고는 예방이 최선이야.
"결혼한 지 이제 일주일 됐어(=그만 둘 거면 혼인신고하기 전에 솔직히 말했어야지, 그럴 계획이 있다고. 결혼 전에 그만뒀어야지.)"
내가 말했다.
"알아. 근데 나 도저히 못 다니겠어. 나랑 안 맞아. 진짜 적성에 안 맞아서 못하겠어."
"나는 뭐 적성에 맞아서 일하고 있는 줄 알아? 나만 그런 거 아니야. 남들도 다 그래. 누가 이 일 좋아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공무원이 아니라도 그래. 지금 직장 다니는 사람들한테 다 물어봐 누가 얼마나 좋아서 다니겠냐고. 아니꼽고 치사하고 그래도 다니는 거야. 안 맞는다고 다 일 그만두면 세상에 일할 사람 하나도 없어!"
이제야 반성한다.
뒤늦은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내가 저렇게 말했던 거. 마음 깊이 회개하고 회개한다.
나의 업보로다.
가만히나 있을걸.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린데?
올 초 내가 의원면직하겠다고 했을 때 남편이 나에게 한 말. 그대로다.
살아보니 '남들도 다 그렇다'라는 건 사실이 아니다.
'남들도 다 똑같다'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더라.
내가 그런다고 해서 남들도 다 그런 건 절대로 아니더라.
'남들도 다 그러고 산다'는 말은 '희대의 사기'다.
나는 나고, 남은 남이고, 다들 나름의 사정은 있더라.
남의 일에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젠 가만히나 있자.
굿이나 보고 떡이나 잡술 일이다.
나는 처음에 남편이 그냥 충동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줄 알았다.
"왜 우체국에서 무슨 일 있었어? 말해봐."
"아니 별일은 없었어. 그냥 나랑은 안 맞아."
"아니 일이 자기한테 맞아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니까. 나 봐, 나도 처음에 힘들었잖아. 그래도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잖아. 그리고 지금 여기서 그만둬버리면 어떻게 해? 결혼까지 한 사람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야? 진짜 이기적이다. 어떻게 본인 생각만 해?"
어라? 어디서 들었더라?
낯설지가 않은걸.
저 몹쓸 말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다.
내가 일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남편이 했던 말 그대로다.
역시 '부부는 일심동언'이다.
이 또한 반성한다. 그렇게 마구 남편에게 말했던 것을.
나는 다짐한다.
가슴에 두 손을 공손히 얹고 앞으론 함부로 아무 말이나 지껄이지 않겠다고.
더구나 적어도 남의 일에 관해서는.
어떻게든 남편 마음을 돌려 보려고 했다.
"그러면 병가라도 내든지 휴직을 해보든지. 어때?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자. 내가 보기엔 너무 성급한 것 같아. 지금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 1년밖에 안 됐잖아. 몇 년이나 다니고 그럼 소리 하면 내가 말도 안 해. 내 생각엔 지금 자기가 힘들어서 순간 못 참고 그러는 것 같아."
"아니야, 나도 생각 많이 해 봤어. 도저히 안 되겠어. 나 진짜 우체국이랑은 안 맞아. 자기도 내 성격 알잖아."
"나도 면사무소랑은 안 맞아. 나라고 잘 맞아서 좋아서 다니는 줄 알아? 아니라니까? 몇 번을 말해!"
"자기가 나 좀 이해해 줄 수 없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날 이해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는 거야?"
"무조건 안된다는 게 아니라 그 이유가 납득이 안돼. 단지 적성만 가지고 공무원 하네 못하네 그러는 거 좀 그렇지 않아?"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는 걸 어떡해?"
"아니야, 시간을 갖고 좀 생각해 보자. 이건 아니지. 너무 일러. 이제 결혼식 올린 지 일주일밖에 안 됐어. 이럴 순 없어."
남편이 안 되겠다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는데 나도 참.
내 말만 하고 내 생각만 고집했었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니 이제 알겠다.
어리석도다, 꼭 겪어보고서야 그걸 깨닫다니.
그래서 중생이로세, 한낱 어리석은.
올해 남편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나는 당시 남편의 말을 듣고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을 거다.
지금이야 '한낱 7급 공무원'이라고 마음 편히 얘기하지만 그 당시엔 나도 왜 그랬는지, 아마도 세상을 덜 알아서? 내가 그땐 모르는 게 더 많아서?
왜 그땐 그렇게 무작정 반대만 하고 나섰는지.
남편, 처음에 그때 그 마음 이해 못 해준 거 정말 미안해. 그땐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어.
남편보다는 그 공무원이란 허울이 더 중요했었나 봐. 그깟 거 뭐라고.
그거 그 껍데기라도 뒤집어쓰고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어, 내 착각이었어.
지금은 굳이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세상엔 할 일도 많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 날품팔이를 해서라도 살아가는 게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데 그 당시엔 어쩜 그렇게도 내가 꽉 막혀있었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공무원 안 하고 있어도 아직까지 안 죽고 잘 살아있기만 한데.
하늘도 안 무너졌고 밥만 잘 먹고 다니더라.
아마도 둘 다 힘들게 공시생 시절 거치고 어렵게 공무원 합격하고 그 살아온 세월이 아까워서(그게 뭐 아까울 일이라고) 그걸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 생채기로 피가 나는지도 모르고 두 손을 꽉 쥐고만 있었을까.
못난 사람 같으니라고, 나도 참 못났었구나 그때는.
꽉 쥐고 있는 두 손에는 다른 그 무엇도 더 담을 수 없는 일이거늘.
(202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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