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흔(하지) 않(은) 남매

방학 중인 남매, 이대로 괜찮은가

by 그래도 나는 2024. 8. 9.
반응형

 

방학 중인 우리 집 두 어린이들의 행태를 긴급 점검해야겠다고 생각한 지는 좀 됐다.
물론 나만 그 필요성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고, 정작 두 당사자들은 그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행태를, 또 괜히 나만 점검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뭔가 경각심을 줘야겠어.
그래, 어디 하는 대로 그냥 가만히 놔둬 보자.
보자 보자 했더니,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너무 더워서 집 앞 마실도 못 나가겠다고 '피서'같은 건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일 뿐이니 그저 조신하게 집에 있자고 방학 내내 두 어린이들과 우리 집 성인 남성에게 줄기차게 말해왔다.
다들 나가는 것보다는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더 강한 성향의 멤버들이라(아마 내 짐작이 맞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내 의견에 항의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름방학 했는데 어디 가까운 데라도 갔다 와야지."
라고 말로만 수 백번 피서를 떠난 성인 남성이 한 명 있긴 하다,  물론.
이 무더위에 직장 생활하시랴 지치고 귀찮을 텐데 우리 멤버 중 가장 공사다망하신 분께서 말이다.
아마도 
"그냥 집에 있는 게 쉬는 거야. 나가면 나만 고생해."
라는 뻔한 내 대답을 노리고 잊을 만하면 저런 말씀을 반복 재생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강하게 의심된다).
 
딸은 학원 구경은커녕 사교 활동도 전혀 하지 않으시고 매일 집에서 지내고, 아들은 그나마 주중에 태권도 학원 한 군데를 다니고 있다.
각자 기원전 3,000년경부터 해야 할 일들을 부여받아(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학생 신분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종의 의무사항일뿐이다) 주 6일 일정량의 학습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제발 늦잠 좀 자 달라고 빌고 빌어도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가뿐하게 만화책을 몇 권 섭렵해 주시고 오전 시간은 태평하게, 세상 가장 여유롭게 보내신다.
학교 다닐 때는 하교하고 와서 할 일을 하니까 오후 시간은 각자의 몫을 해내느라 많이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방학이라 오전 시간이 덤으로 생긴 셈이니 이왕이면 오전에 할 일을 마쳤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그들은 내 생각 같은 건 전혀 신경 써 주지 않는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오전에 머리가 맑을 때(물론 이것도 나만의 생각이다) 미리 해 놓고 오후를 여유롭게 보내면 좋을 것 같은데, 방학생활 계획표는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고 어찌나 융통성을 잘 발휘해 주시는지 그 계획표가 무색할 만큼 유동적으로 방학을 보내고 있다.
나는 옛날에 어땠더라?
방학하자마자 숙제를 끝냈던 것 같은데?
아니었나?
일기는 일주일 간격으로 비슷한 내용을 작성하며 '일기 돌려 막기'를 했던 것도 같다.
만들기 숙제는 개학을 코앞에 두고 나의 최대 장점인 벼락치기로 순전히 날림으로 완성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런 엄마의 과거를 알면 남매는 또 한마디 하시겠지?
"엄마, 사돈 남 말하시네. 엄마도 방학 때 신나게 놀았으면서 우리한테 강요하면 안 되지."
라는 이런 말을 하고도 남을 어린이들이다, 내 아이들은.
내게 불리한 건 최대한 알리지 말자.
하루 종일 남매가 어떻게 하는지 잔소리하고 싶어도 그냥 두고만 보자.
오전 내내 빈둥거리다가(나는 저 표현이야말로 남매의 행태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일단 아침밥이라고 차려주면 점심때가 다 되어갈 무렵에야 드신다. 그리고 푹 쉬어 준다.
휴식 시간은 점심을 지나고 오후 시간까지 이어진다.
둘이 까불고 놀다가 엎지르고 깨고 쏟는 등 엄마 입장에서는 한숨만 나올 만한 행동을 일삼는다. 살짝 내 눈치를 보는 듯하다가도 다시 까불고 '잘~ 논다'. 이렇게나 회복 탄력성이 좋은 아이들이라니!
일단 남매가 어떻게 하든지 두고 보기만 했으므로 속이 부글부글 끓으려고 하지만 그거 팔팔 끓여봤자 라면도 못 끓여 먹는데?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더 지켜보기로 한다.
오후 5시가 넘어가면 나는 그만 초조해진다. 지금부터 바짝 할 일에 집중하기 시작해야 하는데 여전히 남매는 무사태평이다.
그러면서 간간히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엄마, 저녁밥은 뭐야?"
'매일 할 일을 마치지 않은 어린이에게 저녁밥 같은 건 없다'라고 딱 잘라 말하고 싶지만 유치하게 굴지 않기로 한다.
"벌써 5시가 넘었네. 금방 잘 시간이다.(=할 일을 여태 손 놓고 있으면 어쩐다니?=지금부터라도 착수해야지.=할 일은 하고 밥 타령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하루 종일 놀기만 하면 곤란해.)"
다만 인내심이 바닥나려는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이다.
그래도 일단 먹이자. 
먹이고 또 두고 보자, 어떻게 나오는지.
7시가 넘어가려고 하면 그제야 아드님은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문제집을 넘기기 시작한다.
멀쩡한 책상 두고 굳이 거실 바닥에서 말이다.
중간중간 EBS강의를 보다가 옆에 펼쳐 둔 만화책을 힐끔거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딸은?
어둠이 밀려들어야만, 마치 '개와 늑대의 시간'을 방불케 하는 그 황금시간대가 닥쳐와도 그놈의 '스티커'만 만지작거리고 계신다.
지금 딸 방에는 스티커만 수백 장, 아니 어쩌면 수 천장일지도 모른다.
나 몰래 스티커 도매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강한 의심이 든 지는 꽤 됐다.
그 와중에 최애 '포카'를 들여다보다가 느닷없이 포장지를 만들다가 다이어리를 쓰질 않나, 선물 꾸러미를 만들질 않나, 당최 요즘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가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소녀다.
밤 9시가 되어 갈 무렵, 하루 종일 내 할 일 하랴 남매 감시(그날 하루만은 정말 나는 감시하는 마음으로 남매의 행태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행동 하나하나를 끈질기게 좇으며 마음에 담고 있었다)하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멤버들은 잘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런데 남매는 그제야 본격적으로 할 일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저러다가는 또 10시 넘어서까지 그 일에 매달려야 할 터인데.
내가 피곤해서 더는 못 기다리겠는데.
그래도 잔소리는 하지 말아야지.
딱 하루야, 딱 하루만 너희에게 무한의 자유를 주겠어.
어떻게 하는지 내가 다 지켜보고 있어.
그리고 나는 진단 내릴 테야.
밤 11시가 이미 넘었다.
남매는 이제 거실 바닥에 누워 다시 만화책 삼매경이다.
물론 거실이 초토화된 지는 오래다.
정말 거슬렸지만 이제 와서 하루 동안의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게 할 수는 없어.
끝까지 지켜보자.
하지만 내가 너무 피곤하다. 더는 못 봐주겠다. 
저러다가 12시도 넘기겠는걸?
나도 참는 데는 한계가 있어.
"이놈들! 지금 시간이 몇 시야? 벌써 12시가 다 됐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거실 치워야지. 이는 닦았어? 밥 먹고 바로 안 닦았지? 할 일은? 오전 내내 어서 부영 하다가 시간만 다 보내고 그러면 되겠어? 밥도 차려 놓으면 얼른 와서 먹을 것이지 엄마가 몇 번을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말이야! 제발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부터 개고 청소부터 하라니까! 이것저것 한꺼번에 하면서 어지르지 좀 말고. 물건을 썼으면 갖다 놔야 할 거 아니야? 최소한 너희가 쓴 건 너희가 치워야지. 엄마가 쓴 걸 너희한테 치우라는 것도 아니잖아. 엄마가 너희한테 밥을 하라고 했어 빨래를 하라고 했어? 최소한 너희도 할 일은 해야지. 같이 살면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다 같이 해야 하는 거라고! 그리고 할 일은 아침에 미리미리 해 두라고 했잖아. 어차피 할 일인데 왜 자꾸 미루는 거야? 결국 너희가 다 해야 할 일들이잖아. 왜 엄마 말을 그렇게 안 듣는 거야? 학교도 안 가니까 시간도 많은데 그렇게 시간을 허투루 쓰면 어떡해?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니까 모르고 있는 줄 알아? 이제 개학이 며칠이나 남았다고 그러는 거야? 학교 갈 준비도 이제 해야 될 거 아냐? 응?!"
자식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의 말씀,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잔소리'라고 한다지 아마?
속이 다 시원하다.
역시 사람이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해.
참으면 병이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