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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나의 기쁨=나의 고통

육아휴직 3년 한 대가 = 기여금 1,200만원

by 그래도 나는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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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신 퇴직 수당 받았잖아. 좀 됐던 것 같은데?"
"없어."
"왜 없어?"
"미납 기여금 내고 나가라고 해가지고 거기에 다 썼잖아."
"맞다. 그랬었지."
 
이 양반이 왜 느닷없이 꼬치꼬치 캐묻는 거지?
연금을 매달 얼마나 받느냐는 중, 언제부터 받느냐는 둥, 새삼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내가 무얼 숨기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본인이 그때 내가 공무원 연금공단 직원과 통화하는 거 다 옆에서 들었으면서) 이번에는 나의 '퇴직 수당'의 행방을 찾아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없어.
어차피 내 것이 아니었어.
들어만 봤지 본 적도 없는 퇴직수당이다.
남아 있는 게 없다고. 남을 수도 없었다고...
"육아휴직하는 동안 내가 수입이 없으니까 기여금을 안 내고 있었잖아. 복직하면 나눠서 낼 생각하고."
"그랬었지. 그때 미납금이 얼마나 됐었지?"
"1,200만 원."
"진짜 많긴 하다."
"그게 3년 치 미납금이야. 세상에 1년에 400만 원 정도나 된다니까."
"그럼 퇴직 수당으로 그걸 냈다고?"
"그랬지. 미납 기여금이랑 퇴직수당이랑 둘이 거의 금액이 비슷하게 맞아떨어졌으니까. 그래도 그거라도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니까. 그 큰돈을 당장 어떻게 어떻게 구하겠어. 휴직하는 동안 월급 나오는 것도 아닌데."
첫째를 낳고 육아휴가휴직을 6개월만 썼는데 몇 년 전 연속 3년 육아휴직을 할 때 나머지 6개월부터 찾아 썼다. 그래서 다행히 처음 6개월 간은 수입이 조금 있었다. 2012년 9급으로 육아휴직을 했을 때는 6개월 간 매달 45만 원 정도 받았다. 물론 그때도 기여금이나 행정공제회는 일시정지된 상태였다. 솔직히 45만 원에서 뭘 어떻게 할 도리가 없긴 했다.
그리고 2019년 첫째의 육아휴직 6개월(육아휴직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나머지)을 썼을 때는 100만 원씩이나 받았다. 당시 나는 7급이었다.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 정도면 제법 큰돈이었다.
물론 처음 6개월까지만 나왔고 나머지 2년 6개월 동안은 1원 한 장 나오지 않았다.
실수로라도 잘못 지급한 적도 없었다. 하긴 착오 지급했다면 어차피 나중에 다시 돌려줘야 하니까 아무 소용없는 일이긴 하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그때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미납 기여금 같은 건.
그런데 의원면직을 하려고 알아보니 그만두기 위해서는 '우선, 반드시'미납 기여금부터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그 암담함이란.
아니, 그저 나는 아무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거다.
계획적으로 그만둔 게 아니라 사정상 급히 그만둔 경우였으므로.
(그래서 아직까지 어떤 이들은 그 이유에 대해 마음대로 찧고 까분다고 한다.)
하지만 나를 더 황당하게 했던 건, 옆에서 그런 내용을 듣고 있던 그 양반마저 충격으로 몰아갔던 건 미납 기여금의 '금액'이었다.
자그마치 '1,200만 원'씩이나 되었던 거다.
맨 처음 9급 시절 기여금은 매달 20만 원 안팎이었던 것 같은데 10년이 지나고 나니 그 사이에 꽤나 금액이 오른 상태였다. 
아직 '퇴직수당'이라는 구세주를 만나기 전이라 얼마나 막막했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일을 그만두려고 대출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대출받고 일을 그만두면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갚는담?
미납 기여금을 낼 돈이 없어서 그만두지도 못하게 생겼네?
그때의 막막함이라니.
하지만 무너진 하늘에 '퇴직수당'이라는 구멍이, 딱 숨을 쉴 정도로만,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숨통이 트일 정도로만 살짝 뚫려 있었다. 그거라도 어딘가. 
일이 되려면 그런 식으로도 되는가 보았다.
다행이었다.
나 같은 경우를 많이 겪어 보셨는지 연금 상담원이 지체 없이 '퇴직수당'의 정체를 넌지시 알려 주셨던 거다.
친절하게도 그 금액까지, 상냥하게도 그 '퇴직수당으로 미납 기여금을 갚아버리라'는 고급 정보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셨다.
돈만 내면, 3년 동안의 미납 기여금만 내면 퇴직 처리는 바로 된다면서.
불과 몇 분 전에 절망스러우리만치 암담하기만 했던 우리 부부는 안도했고 미납 기여금을 청산하는 일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행정 공제회는 매달 20만 원을 내고 있었으나 육아휴직을 들어가면서 바로 정지했으니 따로 신경 쓸 것은 없었다.
솔직히 그만두는 마당에 그 미납 기여금은 꼭 내야만 할까, 싶은 생각이 안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3년 치 없는 셈 치고, 그 퇴직수당 내가 다 갖고 싶었다.
하지만 무조건 납부는 해야 한다고 했다.
법이 그런다고 했다.
법이라니, 별 수 있나.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지도 못하는걸.
그 1,200만 원의 거금(그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이, 솔직히 그 돈이면 최소한 1, 2년 생활비(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그 양반에게 내가 받는 55만 원에 견주면)가 될 수도 있었다.
우리 가족이 크게 돈 쓰는 곳이 없으니 당분간 요긴하게 쓸 자금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나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는 없는 게 세상사라, 그것을 내지 않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었으므로 차라리 연금 쪽에서 권하는 대로 할 수밖에, 적어도 그 당시의 답은 보기가 하나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런 문제였던 거다.
다만,
나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판국에 지금에 와서 마지막 3년 치의 기여금도 아쉬운 것이다.
주위에 퇴직하는 사람이 하나 둘 생길 때마다 나는 막연한 불안감과 그래도 행여나 하는 희미한 지푸라기를 그러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