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은 정근수당도 나오는 날이네?"
나는 내 것도 아니면서 반가운 마음에 그 양반에게 한마디 했지만 정작 그 수당의 주인은 말이 없었다.
다만 조용히 한숨만 쉬었던가?
"나한테도 콩고물 좀 있어?"
내친김에 언감생심, 콩고물까지 다 바랐다.
그러나 '정근수당'이라는 말에는 침묵하던 이가 내가 '콩고물'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직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말했다.
"나도 없어."
없긴, 없긴 왜 없어, 다 있으면서.
"얘들아, 엄마 어디 있어?"
저녁을 먹고 난 후 느닷없이 분리불안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마냥 그 양반이 나를 급히 찾았다.
그 양반이 나를 찾을 때는 반드시 볼 일이 있어서다.
뭔가 원하는 게 있다.
뭔가 요구할 게 있다.
뭔가 아쉬운 게 있다.
그러니까 그럴 때만(나는 그럴 때만 나를 찾는다고 진심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건 어쩌면 그 양반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나를 급히 찾는 것이다.
또 뭘 하려고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게지?
그 양반은 도서관을 가려는 나를 붙잡고 방으로 '끌고' 갔다.
정말 나는 끌려가다시피 했다.
"바빠?"
"안 바빠도 바빠."
"뭐 하고 있어?"
"뭐 안 하고 있어도 뭐 하고 있어."
"나 좀 도와줘."
내 이럴 줄 알았다.
걸핏하면 세상 물정도 모른다며 나를 타박하더니 본인이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도와달라고 한다.
다행히 나는 한글을 안다.
무사히 그 양반이 원하는 대로 일을 마치고 방을 나서려다가 갑자기 그 생각이 난 것이다.
어느 시인의 고장의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이육사의 '청포도')' 계절이지만, 내게 7월은 정근수당의 계절이다.
물론 내 것은 아니고 그 양반 것이지만 말이다.
남의 것이라도, 내가 받는 것은 아닐지라도 7월은 괜히 기분 좋아지는 계절이 되는 것이다.
마침 내가 그 양반의 일도 도와줬으니까(물론 아주 미미하게였지만) 그 은혜(물론 그런 것도 '은혜씩이나'라고 이름 붙이기엔 양심상 좀 거시기하긴 했지만 도와준 건 도와준 것이니까)를 모른 척하지는 않으렷다?
그래서 아무 말 대잔치를 또 해 본 거다.
"내일은 월급도 받고 정근수당도 받겠네. 나한테도 콩고물 떨어질 거 좀 있어?"
느닷없이 왜 콩고물 타령을 했냐고 묻는다면, 돌이켜 보건대 정근수당이 나오는 달에는 내게도 뭔가가 떨어지는 게 있었던 것도 같은 착각이 갑자기 들어서였다.
혹 과거에 그런 게 전혀 없었다 하더라도 이참에 콩고물을 좀 노려볼까도 싶었던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자고 그러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꼭 뭘 바라서가 아니었다, 솔직히.
마침 '월급날 이브'라서 그냥 생각난 김에 해 본 말일뿐이었다.
그런데 그 양반이 정색을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도 없어."
이 양반이 말은 똑바로 해야지.
있으면서 그러시네.
다 아는데 그러시네.
주기 싫으면 주기 싫다고 그럴 것이지.
내가 언제 뭘 달라고 했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라고 외치던 30년 전의 이 연사는 오늘날 다시금 외쳐 본다.
"그러나 나는, 정근수당은 좋아요!"
라고 말이다.
즐거운 월급날에 '또' 회식을 하신단다.
내게 콩고물을 떨어뜨려주기는커녕, 술 냄새만 풍겨 줄 것이다.
콩고물은 무슨,
콩나물이나 사러 나가야지.
'남편=나의 기쁨=나의 고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달 57만원 말고 그때 공무원 연금 일시금을 받았더라면 (0) | 2024.07.27 |
---|---|
말을 말았어야지 (0) | 2024.07.20 |
나는 식기 세척기 기술자 (0) | 2024.07.15 |
남편을 차단했더니 (0) | 2024.07.11 |
느닷없이 남편이 고백하던 날 (0) | 2024.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