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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면직-일반행정 지방직 아내의 공무원 그만두기

친구따라 공무원 시험 직렬 바꾼다

by 그래도 나는 2023.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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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나랑 같은 과 친구 그 앤 일반행정직만 준비하다가 저번에 교정직으로 바꿔서 공부하고 이번에 붙었대."

 

비보가 날아들었다.

고등학교 동창의 생생한 간증이 있었다.

교정직에 합격했다는 그 친구는 나도 아는 내 친구의 친구였다.

단연코, 친구의 친구를 사랑한 적은 없었지만 그와 나는 같은 도서관에서 '함께'는 아니었더라도 '따로' 일반행정직을 공부한 적은 있었다.

그를 떠올릴 때면 항상 군무원이라던 그의 여자 친구가 내 기억 속으로 동시 입장해 들어왔다.


교정직은 또 뭐지?

느닷없이 보건직에 어설프게 도전했다가 남들은 다 알았으나 나만 그럴 줄 몰랐던 쓴 맛만 보고 일반행정직으로 갈아 탄 나는 다른 직렬들에는 무관심했고 무지하기조차 했었다.

모르면, 세상 물정에 어두우면 장수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귀가 0.1cm 얇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교정직 그거 해 볼 만한 건가? 일행만 하다가 교정직 일정 나와서 급히 준비하고 시험 본 건데 합격했다고? 그게 가능한 일일까? 어차피 과목 겹치는 게 있으니까 그렇게 어렵진 않은가 보네."

벤치마킹 합격, 불신 불합격.

예수님 믿고 천당 가는 일보다, 믿지 아니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일보다 당장은 합격이 급했다.

사후세계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었다.

적극적으로 벤치마킹을 한다.

 

물론 나만의 망령된 생각이오, 착각이었다.

말로는 급히 준비해서 시험 봤다고 하지만 알게 모르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슬슬 '구꿈사' 카페에서도 수험생들의 양다리 작전은 풍토병처럼 만연해 있었다.

물론 그는 그만큼 실력이 있었으니까 합격했으리라.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 속을 알 것이며 섣불리 판단할 수 있으랴.

 

2009년 이전의 일이었다.

보건직의 전과를 차치하고라고 당장 일행 하나만 잡고 물고 늘어져도 모자랄 상황에 '어디 나도 한번?' 하는 심리가 꿈틀댔다.

무섭게 창궐하던 양다리의 역병을 나도 피할 길은 없었다.

아니, 정면으로 그 역병에 감염되기를 자초했었다.

교대근무를 하는 교정직은 내 건강상 힘들 것이고(물론 합격은 더욱더 힘들 것임이 분명하겠지만) 일행과 과목이 겹치는 직렬 중에서 어떤 직렬을 골라야 하나.

다 먹고 싶은 욕심에 점심 메뉴 고르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듯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타 직렬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원래 본인의 주제 파악도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따지는 건 많다.

재고 말고 할 처지도 아니요, 실력도 아니었으나 남들 눈엔 뻔히 보이는 것도 당사자 눈엔 안 보이는 법이니까.

 

대학 4학년 때 교생 실습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교육학 공부를 하던 기억을 되살려 물건을 충동구매하듯 '교육행정직렬'을 잽싸게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행히 신은 나를 가엾이 여기시어 못 붙는 시험 응시라도 한 번 해 보라고 일행 시험이 끝나고 몇 달 후에 '교행 필기시험' 공고를 내주셨다.

국어, 영어, 국사 이렇게 세 과목이 겹치는 과목이었던가? 그리고 교육학 개론하고 또 하나, 기억나지 않는 과목, 그리하여 나는 또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리 사람이 무모하다고 해도 정도껏 무모해야지 대책 없이 무모한 이에게 돌아온 결과는 뻔했다.

공평의 주님, 자비로운 부처님께서는 교행에 응시할 기회는 주셨지만 '합격'은 역시나 주시지 않았다.

남들이 직렬 바꿔서 서 너 달 미친 듯이 공부해 붙었다고 해서 나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다.

제발 그런 법이 내 평생에 한 번쯤은 있었으면 좋겠는데도 말이다.

 

워낙에 단기간이고 크게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몇 과목이 겹치니까 스멀스멀 욕심이 올라와 무작정 덤볐다. 그 당시엔 공무원이 되는 각종 직렬 시험을 치르는 데에 나라님도 구제 못할 카드 돌려 막기보다도 더한 '공무원 시험 돌려막기'를 하는 만행을 일삼았다.

일행 하나만으로는 안되니까 교정직까지(인지 아니면 중간에 직렬을 바꾼 건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확장해 격국엔 또 한 명이 옆에서 공무원으로 임용되는 것을 목격했다.

아, 정말 합격하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아니 나만 빼고 다들 합격하는구나.

이제 마지막 대기표를 뽑아 든 사람은 나다.

번호가 없는 백지 대기표였다.

포기만 안 하면 언젠가는 붙는다고 했겠다?

아무리 연령제한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합격하자마자 정년퇴직하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주위에서 저런 사태가 벌어지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얼마나 죽자 사자 매달려서 노력하고 힘을 썼을까?'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직렬을 바꾸더니 운 좋게도 바로 붙었네.'

이런 불순한 마음, 어쩌면 못난 부러움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한 번쯤은 붙어줬어야지. 멋도 모르고 덤볐던 보건직을 시작으로 일반행정직을 하다가 누가 옆에서 한 소리 하니까 또 솔깃해져 가지고 당장 교육행정직 교재부터 샀던 나 말이다.

 

내가 아는 친구 중에 일반행정직을 공부하다가 한 명은 그만뒀고, 한 명은 우체국(국가직) 붙었고, 한 명은 교정직으로 합격했고 그러고 보니 나만 남았다 어느새.

마지막 잎새도 아니고 혼자가 된 이 몸은 더욱 조바심이 났다.

스물아홉이라는 그 나이가 더 바싹 애를 태웠다.

 

지난 일들을 적어나가려니까 부쩍 어렸던 그때가, 막막하기만 했던 나의 20대가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그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쯤 나는?

후회된다거나 미련이 있어서라기 보다 그저 심상하게 생각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삶 말고 다른 삶, 나의 삶 말고 다른 이의 삶도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보같이 남의 것이라 그럴듯하게 보이는 건 줄도 모르고 말이다.

바보 소리를 듣는다 해도 그러고 싶은 마음뿐 그러하지 못해 차라리 더 간절한 마음이어라.

 

'애초에 공무원 준비를 안 했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일반행정직으로 시작했더라면, 눈 질끈 감고 상경했더라면.'

그런데 이런 생각들 끝에

'그때 내가 의원면직을 안 했더라면?'

여기까지는 아직 아니다 솔직히.

오만 가지 가정법들을 다 동원해 봐도 희한하게 저 생각은 안 든다.

대신에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권태기인가, 갱년기인가, 그저 진실한 속마음인가.

 

 

오호통재(嗚呼痛哉)라,

피할 길 없어라, 저 세 가지 '모두'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