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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 않(은) 남매

딸같지 않은 며느리가 하는 일

by 그래도 나는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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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억지로 전화하라고 해?"

"합격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너희가 보고 싶으시겠어? 가지는 못할망정 전화라도 해 드리면 좋잖아. 두 분만 계시니까 적적하실 텐데. 방학이니까 시간도 많잖아."

 

아침을 먹고 난 후나 점심을 먹고 난 후, 아니면 해가 지고 두 분이 모두 집에 계실 때라고 짐작 가는 그 시각에 나는 남매에게 전화기를 건네준다, 시가 전화번호를 누른 후에 말이다.

 

"어머님, 날씨가 많이 덥죠? 조심하세요, 한낮에는 절대 들에 나가지 마시고 더우면 에어컨도 틀고 지내세요."

"요즘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으세요? 무릎은 좀 어떠세요?"

"아버님, 고추는 많이 따셨어요? 병은 안 왔어요? 고추 따실 거면 해 지고 난 다음에 늦게 밭에 가세요."

"이번 태풍 때 비는 많이 안 왔어요? 비 피해는 없으셨어요?"

 

내가 시부모님께 전화통화 하며 하는 말은 대개가 저렇다.

물론 나라고 해서 딱히 할 말이 있다거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꼬박꼬박 전화를 드리는 것은 아니다.

안부전화, 그렇다, 가볍게 안부 전화 드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팔순이 넘으신 아버님, 칠순이 넘으신 어머님, 연세 많은 시부모님 두 분만 계시는 집이니 적적하기도 할 테고 손주들이 보고 싶기도 할 것 같아 목소리라도 들으시라고 한사코 아이들에게 전화기를 쥐어주는 것뿐이다.

내가 대단한 효부라서도 아니고, 끔찍이 시부모님을 생각해서도 결코 아니다.

친정집에 스스럼없이 전화하듯 이 삼일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혹시라도 무슨 일은 없으신가 갑자기 어디가 편찮으시진 않나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거의 항상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 전화를 하는 편이다.

솔직히 며느리보다야 손주들 목소리가 더 반갑지 않을까.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히 잘 계세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돼. 어려울 거 하나도 없어. 너희 목소리만 들어도 좋아하시잖아."

아들은 내가 시가에 전화를 걸면 당연하다는 듯 기다렸다가 전화기 바통 터치를 하는데 딸은 그렇지 않다.

"엄마, 나까지 꼭 해야 돼? 엄마랑 통화했잖아. 난 할 말도 없는데. 난 안 할래. 난 빼줘."

이렇게 약간 비협조적이다.

"합격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계셨으면 아빠도 없었고 너도 태어나지 못했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잠깐이라도 통화하자."

라며 나는 구슬려야만 한다.

부모가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손주들과 통화하실 때면 목소리부터 달라지시는데(그렇다고 며느리와의 통화를 달가워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야속한 손녀는 내켜하지 않으니 내가 살살 구슬리기라도 해야 할 밖에.

 

내가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고 배운 게 이거라서 그렇다.

장남인 아빠는 할머니를 30년 이상 모시고 살았고 친척들은 우리 집에 왕래가 정말 잦았고 안부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왔다. 부모님이 강조하며 가르치신 것도 이런 것이다. 어른이 계신 곳에 안부 전화라도 한 번 더 드리고 찾아뵙고 하라고 말이다.

전에는 특별히 할 말도 없는데 굳이 전화를 드려야 하나 싶기도 했었고, 한창 질풍노도의 며느리 시절을 겪던 때(물론 가정불화가 절정에 달했던 과거 한 때의 얘기다.)는 나도 전화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얘기하자면 아~주 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남편은 남편이요 부모님은 부모님, 서로 엮어서 생각할 게 아니었다. 시부모님은 그저 시부모님으로 대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로 말이다.

"집에 전화는 자주 하냐? 전화 자주 드려라. 손주들한테 전화 오면 목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줄 아냐?"

엄마는 아직도 내게 잔소리하신다.

"걱정 마. 이틀에 한 번씩은 하고 있어. 근데 며느리는 해도 아들은 집에 전화도 안 합디다."

이렇게 엄마에게 실없는 소리도 다 한다.

 

실제로 엄마는 며느리나 손주들에게 전화가 오면

"전화해 줘서 고맙다."

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으신다, 항상.

효도(라고 거창하게 말하기도 그렇지만)하기 참 쉽다.

이 정도는 내게 어려운 거 아니다.

와서 같이 고추 따자는 것도 아니고, 매주마다 와서 밥을 차리라는 것도 아니고 더울 땐 더위 조심하시라, 추울 땐 감기 조심하시라, 이런 사소한 내용이 전화 한 통의 전부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랄 것이다.

나는 시부모님께 잘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도 전혀 아니고, 더군다나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전전긍긍하며 사는 사람도 아니다.

딸같은 며느리는 아니고 딸은 더더욱 아니며 그저 남인 '며느리' 딱 만큼이다.

그저 내가 마음이 내키는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분들의 아들과의 관계가 악화될 때면 주춤하게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랑하는 두 아이들을 있게 해 주신 분들에 대한 보답으로 그 정도면 '완전 거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