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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면직-일반행정 지방직 아내의 공무원 그만두기

나의 의원면직 절차(5)- 의원면직 인사발령과 전화

by 그래도 나는 2023.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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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기다림의 시간은 드디어 끝났다.
2022년 1월 20일 오후 5시 45분경이었다.
눈에 선하다.
 
외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제나저제나 언제쯤 인사담당자에게 연락이 올까, 이왕 이렇게 된 거 1초라도 빨랐으면 좋겠다.
가슴이 답답한 것이.
필요한 서류는 제출했고 인사담당자는 수리했으며 나는 그저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20일 오후 느지막이  전화벨이 울리자 난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역시나 애타게 기다려온 인사담당자였다.
"군수님 결재까지 최종 처리됐고, 내일 날짜로 면직 처리됩니다. 앞으로 좋은 일들 많이 생기고 하는 일 잘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그때 나는 운전 중이었고, 잠시 신호를 기다리느라 멈춘 상태였는데, 왼편 어깨너머로 몇 년 전 근무했던 건물이 보였다.
 
그와 나는 의원면직 때문에 처음 만난 사이고, 내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며 빨리 처리해 달라고 재촉만 해댔지만, 그래도 말이라도 저렇게 해주니 내심 고마웠다.
물론 형식상의 인사였을 뿐일지라도 상관없었다.
사직서는 냈는데 중간에 아무 연락이 없길래 도대체 일이 진행되고 있기나 한 건지 걱정만 한가득이었었는데, 이제 다 끝난 거구나.
이렇게 말 몇 마디, 종이 한 장으로.
 
인사발령이라고 하니 공무원 퇴직을 하는 게 아니라 다시 어딘가로 발령받아 가야 할 것 같다, 기분이 묘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끝나면 끝났다고 내게 서류상으로라도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했고, 나의 면직 공문은 새올 시스템 안에서 전 직원  다 보란 듯이  한 자리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알고 싶지 않아도, 내가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일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시스템이 증명하겠지.
그 당시 내 느낌이라면, 별다른 게 없었다.
13년 전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보고 난 후 필기 합격자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때와는 또 달랐다.
그때는 시작하는 것이었고, 지금은 끝을 내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항상 시작과 끝은 맞닿아 있었다.
 
아쉽다거나, 후회스럽다거나, 막막하다거나, 기분이 가라앉는다거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상도 하지.
공무원이란 직업에  원수 지고 헤어진 것도 아닌데 그냥 홀가분하다는 느낌이 다였다.
눈물 같은 것도 흐르지 않았다.
 
어쩌면 나란 사람은 공무원 합격보다는 공무원 퇴직을 더 바라 왔던가.
 
나중에서야 들은 얘기지만 남편은 내가 사무실에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온 그날 혼자 집에서 울었다고 한다.
펑펑 울지는 않았겠지만 괜히 자신이 눈물이 났다고 한다.
당사자는 나인데 왜 그가 눈물을 흘리는가.
울 일이었던가?
 
11년 전 본인이 국가직 의원면직했던 그때 생각이 나서 그랬단다.
자기도 모르게 그때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흐르더라고.
 
평소답지 않게 느닷없이 눈물이 흐르면 갱년기라고 했다.
나의 퇴직으로 말미암아 그의 갱년기가 앞당겨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전혀 눈물이 흐를 상황이 아닌데도 느닷없이 눈물 흘리는 걸 보면 이 남자, 혹시?
 
그러면서 나보고 슬프지 않았냐고, 그만두겠다고 말한 거 후회하지 않냐고.
전혀, 나는 그냥 홀가분하단 느낌뿐이라고.
그냥 뭔가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그런 가벼움이라고 할까.
 
내가 보기엔 나는 미련이 없는데 남편은 내 의원면직에 어마어마하게 미련이 남은 것 같다.
그러면서 나보고 특이한 사람이라고 그런다.
어떻게 조금도 미련이 남지 않을 수 있냐고.
사람이 다 똑같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잖아.
 
어떻게 합격한 공무원인데 어쩌고 저쩌고 또 시작하려는 순간이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싹을 자르자.
 
"미련이 하나도 남지 않으니까 그래서 퇴직할 수 있는 거야."
그럼에도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해할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는 것 같다가도 아리송해한다.
나란 사람에 대해.
 
정작 자신도 그 옛날에 우체국을 그만두면서 후회한다느니, 미련이 남는다느니 그러지도 않았으면서 왜 내게 그런 감정을 느끼도록 강요하는 걸까.
강요한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기쁨, 나의 고통, 그는 도대체 무엇이 그리 아쉬운 걸까.
 
아, 이렇게 나의 공무원 생활이 끝나는구나.
언제나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끔찍할 만큼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일들이 더 많았고, 함께 일했던 직원들과도 좋은 기억이 아주 많았으며, 지금도 떠오르는 일들 중에서  좋은 기억들이 더 많은 걸 보면 그동안 내가  공무원이란 직업과 사이좋게 지내긴 했구나.
 
어디 공무원뿐이랴, 어느 직업이나 달고, 쓰고, 매운맛 보면서 사는 건 마찬가지일 테지.
 
처음에 의원면직 절차가 완전히 끝나려면 얼마나 걸릴지 물어봤을 때 인사 담당자는 넉넉잡아 한 달 정도 걸릴 거라고 했었다.
하루도 너무 힘든데 한 달씩이나?
내가 미리 알아본 바로는 보통 2주에서 한 달 사이지만 한 달까지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안 서약서인가 그런 걸 쓰고 여기저기 무슨 조회 요청해서 다시 회신 오면 최종 마무리가 된다고 했었다.
 
나는 올해 3년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하자마자 바로 그만둔 셈이어서 조회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쭉 근무를 해왔던 사람이라면 업무상 관련된 뭔가를 조회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겠지만 속세와 인연을 끊고 집에서만 조신히 3년간 지낸 사람한테 나올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공무원은 그만둘 때도 조사는 확실히 하는구나.
한낱 지방직 7급 공무원 한 명 그만두는데 철저하기도 하지, 정작 철저하게 캐고 묻고 따져야 할 대단한 분들은 조용히 잘도 넘어가던데, 힘이 없는 자는 가만히 처분만 기다린다.
사고 치면 그만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그만두지도 못하는 공무원이라는 신분, 그 멍에.
임용될 때도 신원 조회로 시작하고, 면직 처리할 때도 신원조회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했지만 정말 캐낼 것 없는 내 신분이었으므로 속으로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으리라 짐작했다.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너무 조회할 게 없어서 당황했을걸?
'원에 의하여 그 직을 면함.'
그 한 장의 공문이 쓸쓸해 보였다.
그뿐이다.
 
맞다.
내가 원했다.
 
13년간 같이 살던 부부가 판결문 한 장으로 헤어지고  남남이 되는 듯한 야릇한 기분이 잠시, 들었다.
이젠 공무원이란 직업과 헤어진 거다.
이혼 같은 거.
 
아쉬움과는 달랐다.
미련도 아니었다.
(2022.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