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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면직-일반행정 지방직 아내의 공무원 그만두기

뭔 말인지 알겠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

by 그래도 나는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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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려치우지 않았습니다.

그만두었습니다.

 

"나도 공무원 그만두고 싶어. 그만두니까 좋아?"

그들은 내게서 어떤 대답을 들길 원하는 걸까.

내가 홧김에 그만뒀나?

아니잖아.

집에서 맨날 놀고만 있으려고 그만뒀나?

아니잖아.

남들 눈에는 충동적으로 '그냥' 그만둔 건가?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만

건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오죽했으면 저런 노래가 다 나왔을까 싶다.

 

'장기하'가 내 이상형이었단 걸

현재 동거 중인 '나의 기쁨, 나의 고통'에게

일방적으로 혼인신고  사실을 통보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어떤 이는 내가 부럽다고 한다.

다른 이는 내가 호강에 겨웠다고도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대책 없는 사람 취급까지도 했다.

그 모~~~ 든 것들이 그저 다 '니 생각'일 뿐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연금은 받을 수 있어?"

"나중에 얼마나 받는지 알아봤어?"

"그렇게 조금밖에 못 받는데 어떻게 살래?"

 

공직 생활하던 시절에 간혹 윗분들이

"나 퇴직하면 기초 연금 많이씩 줘, 00 씨!"

농담으로 이러시면,

"공무원은 기초연금 못 받아요!"

딱 잘라 말하던 담당자가 있었다.

 

내가 받게 될 공무원 연금은 기초연금보다는 조금 더 많은 57만 원 정도였다.

그것도 2041년에 개시된다.

자그마치 2041년 12월이기까지 하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그날은 그 때야 비로소 도래한다.

그때까지 나는 무사하겠지?

공무원 연금도 무사하고 우리나라도 무사하겠지?

까마득하기만 한 그날을 기다린다기보다 차라리 잊고 산다.


"잘 살고 있어?"

어쩌다가 사람들과 우연히 마주치면, 한결같은 안부 인사들을 건넨다.

"응, 잘 살고 있으니까 이렇게 또 만나지. 나 아직은 안 죽었어."

"그렇구나. 잘 살고 있구나."

 

그들의 예상이 빗나갔나 보다.

나는 벌써 좌절하고 쓰러지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그들이 흡족해할지도 모른다.

뭔가를 탐색하는 눈치다.

 

'너는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어서는 안 되는데.'

'지금쯤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절망하고 있어야 해.'

'그때 너의 선택은 옳은 게 아니었어.'

'넌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를 부러워하게 될 거야.'

'넌 다 끝났어. 이 바보야.'

'결국 네가 틀렸어.'

그들은 온몸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살면서 어떻게 쭉 뻗은 고속도로 위만 달릴 수 있겠는가.

가다 보면 울퉁불퉁한 자갈길도 있고, 흙탕물 튀기는 웅덩이도 만나고, 막다른 골목길에서 난감할 수도 있으며 뜻밖의 모퉁이를 만나면 한번 돌아갈 수도 있는 법이지.

남들은 그 모퉁이를 돌면 되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고들 했지만, 모퉁이를 돌아보니 뜻밖의 세계들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모퉁이를 돌았던 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산을 오르다 보면 수많은 발자국들이 흔적을 남겨 선명하게 다져진 길도 있고, 눈을 돌려보면 한 사람 두 사람이 거쳐가면서 만들어진 길도 있다.

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사람은 길을 낼 줄 안다.

길이 없으면 하다못해 '개구멍'이라도 만드는 게 사람이다.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묻고 싶을 지경이다.

"다들 잘 살고 있어? 잘 사는 거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