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그마치 두 달이 걸렸다.
하마터면 그대로 죽일 뻔했다.
사람 앞일도 모르는 거고 허브 앞일도 모르는 거구나.
지난번에 페퍼민트 하나 겨우 돋았던 게 귀뚜라미로 추정되는 곤충에게 줄기가 잘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흙에 묻어 두었었다. 그리고 며칠 관리했더니 시들했던 잎이 다시 생기가 돌았고 어떻게 해 보면 살릴 수 있겠다고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너무 뜨거운 햇살을 피한답시고 거실 그늘에 옮겨 둔 날 따님께서 발로 뻥 차버리는 바람에(물론 전혀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고 실수였다)그래서 그 페퍼민트는 요단강을 건넌 지 오래였다.
애초에 페퍼민트 씨앗은 먼지가 아닌가 싶게 너무나 작디작아서 과연 저기에서 싹이 움틀 수나 있을까 싶긴 했었다. 하지만 바질과 레몬밤과 허브딜을 같이 심으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에(그러나 밑지는 건 밑지는 일일 뿐이라는 걸, 본전도 못 찾을 경우도 생긴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심어 두고 '없는 셈 치고' 물만 꾸준히 주었더니 나중에 돋긴 돋았다.
바질은 심은 씨앗 개수만큼 거의 다 돋았다고 봐도 될 정도였으나 페퍼민트는 발아율이 높은 것도 아니라서 그중에 하나라도 건지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바질에서 떡잎이 나고 그 위로 마구마구 잎이 무성해질 때쯤에야 겨우 페퍼민트는 고개를 내밀었다. 참 손 귀한 집 자식이다.
차라리 화원에 가서 이미 다 큰 페퍼민트를 사다가 꺾꽂이를 해서 그 개수를 늘려보는 게 나을 뻔했다는 후회가 들 때쯤 그것은 돋아난 거다.
결국 귀뚜라미로 추정되는 곤충에 당하고 딸에게 당하는 바람에 며칠 만에 그마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지만 최근에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페퍼민트로 추정되는 식물'을 발견했다.
그게 정말 그것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난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도 페퍼민트가 맞을 것이다.
씨앗도 작더니 떡잎도 너무 작다.
그리고 성장 속도도 그렇게 더딜 수가 없다.
슬로 라이프를 실천하는 허브가 바로 페퍼민트다.
여러 가지 허브를 한 화분에 같이 심었더니 경계가 불분명해서(아마도 페퍼민트 씨앗이 너무 작아서) 물을 줄 때마다 흙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엉뚱한 곳에 돋은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듯 지금 이렇게라도 늦둥이(?)가 생겼다.
기쁜 마음도 잠시, 이제 햇살 좋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려고 하는데 그러면 점점 추워질 텐데 잘 클 수나 있을까?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금 내가 키우고 있는 허브들은 봄에 씨앗을 뿌렸어야 했다.
올해는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그 시기를 놓쳐서 6월 말에 심었더니 작년처럼 성장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사람이라면 이제 태어나서 어느 세월에 기저귀 떼고 제 손으로 밥 떠먹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한낮에는 무덥고 금세 땀이 나는 날이지만, 아침저녁 바람이 선선하게 살랑거리는 걸 보면 저만치 가을이 다 온 것 같지만 페퍼민트를 생각하면 좀 더 여름이 있다 갔으면 좋겠다. 그래도 쌀쌀한 가을보다는 살짝 무덥더라도 볕 좋은 여름이 더 나을 것 같아서 말이다.
기쁨이 시름이 되는 순간, 정말 그건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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