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들이 누나한테 정말 무서운 얘기해 주네?"
"응. 정말 무서운 얘기 해줬어."
"누나, 진짜 무서웠겠다."
"응. 너무너무 무섭대."
안 듣는 척하고 있었지만, 나는 다 듣고 있었다.
아들이 제 누나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하고도 등골 오싹해지는 무서운 얘기를 전해 주었는지를 말이다.
그러나 그 얘기는 학생인 남매에게만 무서운 것일 뿐 엄마인 내가 듣기엔 하나도 무섭지 않은 얘기였다.
내게는 그저, 고맙고 반가운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누나한테 무서운 얘기 해줬어?"
아들이 벽에 붙은 학사 달력을 보더니 제 누나에게 달려가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아마도 비보로 짐작되는 큰 일을 알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할 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것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기원전 4,000년 경에.
그리고 그날은 반드시 와야만 한다.
남매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기필코.
"아! 안돼!!!"
잠시 후 딸의 절망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어쩌겠어.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사그라들기 마련이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고, 방학이 있으면 개학이 있는 것이지.
이를테면 이건 자연의 섭리와 비슷한 것이다.
"세상에, 다음 주가 벌써 개학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엄마."
딸은 재차 개학일을 확인하고는 내게 와서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한탄을 했다.
"정말이네. 얘들아, 벌써 한 달이 다 갔어. 정말 엊그제 방학한 것 같은데 말이야. 그치?
하지만 너희가 '벌써 방학이 다 갔다'고 말하는 걸 보면 방학 동안 신나게 잘 보냈다는 그런 의미겠지?"
"그건 그래."
"
나야 물론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개학이 세상에서 가장 좋지만, 최소한 방학보다는 좋지만 아이들은 나와는 입장이 다를 테니 너무 좋아하는 티를 실컷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곧 다시 등교해야 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 있는 남애에게 유감이라는 식의 표현을 하는 '시늉 정도'는 해 주어야 마땅했다. 그게 엄마 된 도리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너희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다. 이젠 엄마 세상이 온 거야. 너흰 다시 학교에 가야 하고 엄만 드디어 너희한테서 해방되는 거야.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다!"
라는 식으로 지금 내가 얼마나 환희심이 넘쳐나는지를 남매 앞에서 곧이곧대로 말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표현은 며칠만 더 참았다가 남매가 개학을 하는 대망의 그날 혼자 남은 집에서 마음껏 발산해도 될 일이다.
한 달을 참았는데 그깟 며칠을 더 못 참을까.
방학할 때는 좋았지?
하지만 영원한 방학은 없는 거란다 얘들아.
그래서도 안 될 일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렴.
그래도 아직 방학이 며칠 더 남긴 남았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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