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무원 근무 중에 이런 일도

아픈 것보다 선거가 더 중요해

by 그래도 나는 2024. 3. 15.
반응형

 

"너 아픈 건 안 됐지만, 선거가 내일모레인데 언제 출근할래? 지금 선거 준비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데 일은 하러 나와야지."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저렇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나는 절대 저 말이 잊히지 않는다.
무슨 원한 맺은 사이도 아니고 원수 진 일도 없고, 미워서도 아니고 그냥, 그냥  남아 있다.
원망하지도 않고, 원망할 일도 아니고, 원망한들 달라질 게 무엇 있겠는가.
하지만, 그 말이 가슴에 맺힌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계속 뇌리에 남는 거다.
왜냐면 그때는 내가 병원에 일주일 가까이 입원 중이었으니까, 임신 8개월 차에 급성신우염으로 입원을 하고 너무 아파서 그냥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그러면 고통 같은 건 느낄 수 없을 테니 차라리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면서 매일 병원에서 울면서 지낸 날들이었으니까.
 
나는 태어나서 그런 고통은 처음 겪어 봤고 상상도 못 했던 고통으로 날마다 울었다.
임신 중이라 아무 약이나 쓸 수도 없어서 더 힘들었다.
남들은 그깟 신우염이 뭐가 그리 아프냐고들 했지만 세상에 고통의 크기는 사람마다 똑같은 건 아닌 것 같다. 남들은 수월이 넘어가는 일도 어떤 사람에겐 감히 가늠하기조차 힘들 만큼 괴로울 수도 있는 법이니까.
정말 아이만 아니라면, 홑몸이었다면, 고통을 안 느낄 수만 있다면, 가장 독한 약으로 모든 고통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땐 첫 아이를 낳기 전이라 출산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못할 때였지만 나는 감히 확신했다, 출산의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얼마나 통증이 심하던지 정신이 내 정신도 아닐 때였다.
그런 때에 그분은 내게 전화를 걸어 말씀하셨다.
"일할 사람이 없는데 네가 빨리 출근해야지. 너 몸 그렇게 된 건 안 됐지만 그래도 나와서 일은 해야지. 선거에 차질이 생기면 큰일인데, 다른 일도 아니고 선거도 있는데 계속 그러고 있으면 어떡하냐. 언제쯤 퇴원할래? 얼른 나와라."
아마 나는 그때 그 말에 대답도 못하고 울기만 했던 것 같다.
울고 싶어서 운 것도 아니고 그 말 몇 마디에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통제 불가능했다.
도대체 나한테 어쩌라는 거야? 누군 출근하기 싫어서 이러고 있나? 나도 밤새워 매일 일하더라도 좋으니까 몸이나 안 아프면 좋겠다고요, 제발 아프지만 않게 해 달라고요.
내 처지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지고 모든 게 불만스러웠다, 그때는.
하필 그때 임신은 해서, 하필 급성 신우염에 걸려서, 하필 그분이 그런 말을 해서, 하필,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직업 중에 내 직업이 공무원이어서, 하필 그때 민원실에서 근무를 해서, 하필 주민등록 담당자여서, 하필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내 평생 서러움이란 걸 느꼈다면 아마 그때가 가장 최고치였을 거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아프면 나만 서럽다는 그 말.
 
나라고 아프고 싶어서 아프겠는가. 물론 임신을 계획한 사람은 내가 맞지만 임신 중에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갑자기 입원하게 될 때도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급하게 입원하게 됐다는 말을 전할 때 나를 보는 그들의 눈빛이란...
괜히 제 발 저려서 나 혼자만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왜 하필 지금이야? 다 바쁜 시기에 왜 지금이냐고?'
하는 그런 눈빛 같았다.
병원에서는 급성 신우염에 조산기도 있으니 한 두 달 정도 입원을 하라고 적극 권장했지만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양심상 그래서도 안되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선거가 코 앞이었는데, 그 며칠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얼마나 눈치가 보였는데, 한 달씩이나? 당시 상황상 내가 먼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도 못 꺼낼 상황이었지만 사무실에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아마 결재도 안 해줄 것 같았다.
당시 내가 근무한 곳은 민원실이었고 가족관계 등록업무 담당자로 계장님(한오백년 전에는 호칭이 그랬다)이 한 분, 계장님과 같이 일하는 직원 한 명, 인감과 주민등록 등 오만가지 그 외 업무를 담당하는 나와 또 나와 같이 일하는 직원 한 명, 이렇게 총 4명이 있었다.
만약 내가 계속 병원 신세를 진다고 하면 많은 일이 꼬여버린다.
계장님이 내 업무를 담당하지는 않을 것 같았고, 내 대신한다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나마 담당자가 그 일을 더 잘 아니까, 하던 사람이 하는 게 제일이니까, 솔직히 그게 제일 편하니까.
물론 다른 두 분이 많은 부분에서 같이 일을 하긴 하지만 사무분장표상 엄연히 담당자는 나였기 때문에 내가 출근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 주기 위해서라도(솔직히 남의 일을 누가 얼마나 나서서 하고 싶겠는가, 나라도 그건 부담스러울 것 같다) 나는 출근해야 했다. 아프든 말든 어쨌거나 그 와중에도 남에게 피해는 안 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솔직히 대단한 사명감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나 때문에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 대신 남편이 차라리 임신을 했더라면, 아니 임신은 내가 했더라도 아픈 건 차라리 남편이었더라면, 왜 임신은 내가 하고 나 혼자만 미친 듯이 입덧을 하고 걸핏하면 병원 신세를 지고 그럴 때마다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하는 거지? 남편이란 사람은 멀쩡히 출근 잘하고 아프지도 않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선거 담당은 총무계였지만 민원실에서도 해야 할 중요하고 많은 일들이 있다. 선거인 명부를 작성해야 하고 걸핏하면 선거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통계를 다시 내야 하고 전출입 관리도 해야 하고 아무튼 선거철이 다가오면 일도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게다가 나는 민원실에서 치르는 첫 선거였으므로 모르는 것도 많았다. 선거가 어디 보통 일인가 말이다.
그전에는 하루 투표 하고 쉬는 날 정도로 선거를 별 거 아닌 일로 생각했었는데 근무를 하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이래서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면 그 속사정은 모르는 거다.
 
"선생님, 제발 아무 약이나 써 주세요. 너무 아파요. 안 아프게만 해주세요."
라면서 선생님께 애원했지만 그녀라고 해서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에서도 나름 조치를 취해주긴 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고 나는 고통 속에서 지냈다.
그렇잖아도 예민해서 잠도 잘 못 자는 편인데 밤을 꼬박 새우는 날도 많았고, 혼자 신세 한탄하는 날이 이어졌다.
아파서 고통스러웠고, 대놓고 얼른 출근하라고 닦달하는 사무실 생각에 고통스러웠고, 그저 모든 상황이 고통스러웠다. 그런 것도 고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거라면 말이다.
 
아무리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걸까?
같은 여자이면서, 임신과 출산 경험도 있는 사람이면서 이미 지난 일이라고 벌써 다 잊은 걸까?
그저 한낱 직원의 성가신 일일 뿐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분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서운해할 일만도 아니었다.
단순히 감상적인 동정이나 위로 같은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테지만, 그런 걸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겉치레로 하는 무미건조한 말이라 할지라도 내 처지를 조금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걸까? 가족도 아닌 남이?
그분이나 나나 어쩔 수 없는 처지 아닌가.
나는 담당자니까 일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분은 책임자로서 꾸려 나가야 할 책무가 있고, 어쩔 수 없는 우리는 그저 직장인일 뿐이었다. 내게 특별히 나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중간에서 그분 입장도 난처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매일 아파서 울고 사는데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물론.
나도 사람이니까 이해했다가 좀 섭섭한 것도 같고 내가 어쩌다 이 처지가 되었나 병원에 누워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어느 직장인이 그렇지 않을까.
관리자는 이끌어 가야 하고 직원은 그에 부응해 담당 업무를 해 나가야 하는 숙명의 사람들인 것을.
하지만, 당장 내 몸이 그 지경이 되니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도 못되었다.
만사가 귀찮고 짐스럽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내가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나 너무 아파.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
오죽하면, 오죽하면 남편에게 그런 몹쓸 소리도 서슴지 않았고,
"엄마, 나 아파 죽겠어."
라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 그저 내 손만 부여잡고 눈가를 붉히는 친정 엄마에게도 하소연만 해댔다.
아프지 않을 수 있는 방법만 있었다면, 예방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렇게 했을 텐데.
임신 중의 갑작스러운 상황은 많은 일을 뒤틀리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는 아파 죽겠는데(물론 쉽게 죽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나는 많은 아픔을 느꼈다) 사무실에서는 자꾸 언제 나올 거냐고 은근히 재촉하는 바람에 나는 급히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근할게요."
입원한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난날이었던가.
정말 더 이상은 퇴원을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퇴원하겠다는 내 말에 의사 선생님은 더 있어야 한다고 말렸지만 나는 무조건 퇴원해야 한다고 우겼다.
당장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내 몸이야 아프든 말든 출근을 해야 했다.
남이 대신해 주지도 않을 일이고 어차피 내 몫이었으니까.
당장 아픈 몸뚱이보다 심리적인 부담감이 결국엔 나를 다시 출근하게 만들었다.
다만,  나는 많이 암담했던가?
그 지경인 몸으로 다시 일할 생각에, 다른 일도 아니고 보통 일도 아닌 선거를 치를 일에...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어쩌면 나는 그런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출근했다가 다시 입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당장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 했다.
한 개인의 임신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사로운 사익(그것도 사익이라고 할 수 있다면)보다, 한낱 직원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건 오직 선거 업무였다.
그분은 그런 사소한(?) 에피소드 같은 건 진작에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내가 별 뜻 없이 한 말이 상대방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때도 있다.
그 깊이가 아무리 얕다 해도 한번 새겨지면 쉬이 흐려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돌이켜 보면 공무원이란 직업은 좀 그런 편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익보다는 공익이 우선인 직업이니까.
어느 직장이라고 그렇지 않겠냐마는 조금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아니, 직장을 다니든 안 다니든 우리 인간은 종종 서글픈 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