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갈라믄 미용실에 가야쓰겄다."
엄마가 미용실을 다 가시겠다고 하셨다.
"미용실은 무슨 미용실!"
아빠가 느닷없이 웬 미용실 타령이냐고 하셨다.
"미용실 가서 머리도 쪼까 하고 화장도 해야제."
엄마가 발끈하셨다.
"그냥 집에서 하믄 되제, 뭣한디?"
아빠는 여전히 엄마의 미용실 방문 계획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좀 하고 가야제. 조카 결혼식에 그냥 가믄 쓰겄소? 내가 눈썹을 잘 못그린께 그라제. 미용실 가서 해 주라고 해야제."
단지, 눈썹 때문에, 눈썹 그리는 일에 자신이 없어 엄마는 미용실에 다 가시겠다고 하셨다.
"그래, 아빠. 엄마가 이럴 때나 미용실 가시지 언제 또 가시겠수?"
나는 엄마의 계획을 적극 지지함과 동시에 아빠의 동의를 구하는 일에 힘썼다.
그러는 아빠는,
아빠는 조카 결혼식 가신다고 옛날 꼰날에 양복도 다 준비해 두시고 진작에 이발도 다 하시고, 금요일에 다시 한번 다듬으러 가신다고 하시면서 엄마는 미용실도 못 가시나, 뭐?
"아빠, 엄마가 맨날 미용실 다니시는 것도 아닌데, 아빠가 엄마 눈썹을 그려 주실 게 아니라면 그냥 이번에는 엄마가 하시는 대로 잠자코 계시는 게 어때요? 엄마 눈썹이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 고유의 영역이잖아요!"
라고는, 딸은 버릇없이 나서지는 않았다 물론.
정말 사촌 동생의 결혼식이 잠잠하던 우리 친정을 뒤흔들어 놓았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내가 아빠에게 이기적이란 말을 다 듣고, 겨울 날씨가 어찌 될지 몰라 다른 친척에게 같이 가시자고 별말씀 안 하고 계셨다가 엄마가 알리지도 않았다고 서운하다는 말을 듣고, 최근 3년 넘게 이발소를 안 다니시던 아빠가(내가 집에서 이발해 드렸었다, 그동안) 정말 한 오백 년 만에 이발소 출입을 다 하시고, 신고 갈 구두가 마땅찮으니 새로 사네 마네, 급히 신발을 알아보시던 아빠에게 엄마가 잠깐만 신을 건데 '굳이'새로 살 필요가 뭐가 있냐고 제지하고 나서서 엄마 아빠가 옥신각신 하시고, 명색이 조카 결혼식인데 그래도 머리를 좀 손질하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엄마와 굳이 미용실까지 갈 필요가 뭐가 있냐는 반론을 펼치시는 아빠, 결혼식 당일 아침에 친척들에게 어떤 아침을 대접해야 할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엄마 옆에서 내가 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말았다.
"아침에 일찍 출발할 건데 미용실이 그렇게 빨리 문 열어?"
먼 길을 가야 하니까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차가 출발할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미용실을 가는 일은 그보다는 최소한 30분에서 1 시간은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일찍 문을 여는 미용실이 있을까 싶었다, 나는.
"미용실 가서 물어봐야제. 일 있으믄 일찍 해 주라고 하믄 나와서 해 준단다. 옛날에도 아침에 일찍 해주라고 하믄 해줬어야."
이왕이면 안면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나마 몇 년 전까지 '간헐적' 단골로 다니던 미용실이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는 황망해하셨다.
다행히 수소문 끝에 면소재지에 기존에 엄마가 띄엄띄엄 다니시던 미용실이 옮긴 곳을 알아냈다.
"원래 미리 말하믄 아침 7시에도 해 준단다. 하루나 이틀 전에 미리 전화 한 번 주라고 하더라."
미용실 원장님과 원만히 합의를 보고 엄마는 다소 안심하시는 눈치였다.
시골 인심이 이런 거구나.
도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나 혼자만 지레짐작을 했다.
이것이 바로' K- 시골 인심' 아닐까?(라고 또 나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다 해 보았다.)
참, 조카 결혼식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우리 부모님에게는.
사촌 동생은 그날 가지런한 큰엄마의 두 눈썹과 나름 멋 낸 큰엄마의 헤어 스타일을 보게 되겠지?
이것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하객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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