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언니가 와서 김장 같이 한다고 하더라. 언니네 친정은 다 했다고."
"친정 김장하고 나서 피곤할 텐데 여기도 온다고? 그냥 나 혼자 해도 하겠는데?"
올해 김장 양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면서 나는 혼자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로만) 자신 있어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오는 며느리 막지 않고, 가는 며느리도 안 잡는다.'
얼마 전 엄마는 내게 든든한 지원군이 곧 올 것이라는 예보를 하셨다.
"엄마, 올해는 몇 포기나 할 거야?"
"모르겄다, 봐서."
"너무 많이는 하지 마. 날마다 남아서 처치 곤란인데."
"배추를 캐봐야 알겄다."
"몇 포기나 심었는데?"
"한 100 포기 될 것이다."
"올해는 진짜 얼마 안 심었네?"
내가, 거기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100포기씩이나 되는 배추를 보고 얼마 안 된다고 감히 나섰는지 모르겠다.
10 단위도 아니고 자그마치 100 단위인데 말이다.
100 포기라면, 아무리 많아도 101 포기가 될 리는 없겠네?
그럼, 그 정도면 양호한 거네?
어디까지나 그동안의 축적된 김장 자료에 비추어 보면 말이다.
예전에는 기본으로 200에서 300 포기를 심으셨는데 올해는 웬일로 이렇게 반토막이 난 거지?
아무래도 엄마가 올해 무릎이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그런 탓도 있으리라.
"너희 둘째 언니네 친정에서 김장했다고 너랑 나눠 먹으라고 보냈더라. 언제 가지러 올래? 고기도 보내셨더라."
"내일모레 김장하러 갈 건데 그때 가서 가져와야겠네."
며칠 전에 엄마가 전화하셨다.
곧 친정으로 김장을 하러 갈 예정이었으므로 겸사겸사 그때 챙겨 오기로 했다.
"올해는 너희 둘째 언니도 와서 한다고 하더라."
"언니네 친정도 김장 많이 했을 텐데 그냥 쉬지. 안 와도 되는데."
진심으로 나는 굳이 둘째 새언니까지 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기껏해야 100 포기니까. 나 혼자 하더라도 하루 종일 하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언니에게 당장 전화해서
"언니, 우리 집은 내가 혼자 다 해도 되니까 오지 마요. 올해는 얼마 하지도 않아요. 혼자 다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요."
라고는, 입에 발린 말 같은 건 시누이로서 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집은 오겠다는 사람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굳이 오지 말라고 말리지는 않는 편이다.
무조건 오라고 의무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오고 싶은 사람은 오고, 사정상 안 되는 사람은 못 오는 것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꾸 둘째 새언니가 안 와도 된다고 혼잣말만 한 이유는 언니네 친정 김장 수준이 보통이 아니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둘째 새언니네 친정에서는 올해 280 포기를 하셨다고 한다.
우리 집도 많이 할 때는 많이 했지만 그래도 250 포기를 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뿐인데 뭐 하러 그렇게 많이 하시나 싶었는데 그렇게까지 많이 김장을 많이 하시는 이유가 다 있었다.
동네에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매년 김장을 해서 조금씩 나눠 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다니시는 성당에도 좀 드리고 그런다고 했던가?
그리고 우리 친정에도 반드시 보내주신다.
이렇게 여기저기 나누다 보면 그 많은 김치도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힘들긴 해도 나눠먹는 기쁨에 매년 그렇게 하신다고 했다.
주위에서 오셔서 도와드렸다고는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양의 김장을 하느라 새언니가 힘들었을 것 같았다.
김장도 해 본 놈이 그 속을 안다.
그런데 연달아 시가까지 와서 김장에 손을 넣는다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친정에 가서 김장을 하다 보면 며칠은 온몸이 아프기도 했다.
평소에 우리 부모님을 잘 챙겨드리는 새언니라서 명절이나 제사, 김장 이런 일에는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내가 있으니까 내가 하겠다고 해도 새언니는 언제나 적극적이다.
불가에서는 '오는 사람 안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라고 하는데,
우리 친정도 김장하러 오겠다는 며느리는 안 막는다.
좋은 뜻에서 손을 넣어주겠다는 그 마음, 그마저도 뿌리치는 건 좀, 야박하달까?
둘째 며느리의 진심을 아니까 오지 말라고 손사래 치는 대신 엄마는 김장날이 언제라고 그저 날짜만 넌지시 알려 주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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