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워크숍 가."
"언제?"
"12월에."
"두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 얘기해?"
"일정 잡혔어."
"알았어."
최대한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나를 2달이나 앞당겨 기쁘게 해 주려고 벌써 이실직고를 한 것이다.
이렇게나 자상한 남편이라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고 어차피 갈 워크숍도 일정 잡히자마자 통보하는 게 낫다.
이럴 때 적절하게 쓸 수 있는 표현이 '이게 웬 횡재냐'겠지?
그가 나에게 주는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선물, 저 하늘의 해와 같고 밤하늘의 별과 같이 아름다운 분, 말 한마디로 천냥 대출을 한꺼번에 상환해 버리시는 분, 칭송받아 마땅한 분, 세상의 온갖 미사여구로도 치장하기에 부족하신 분, 한마디로 나는 이 순간 기쁘다 이 말이다.
남편이 집에 있다고 해서 나를 해친다거나 성가시게 할 일은 없지만 이렇게 한 번씩 일을 핑계 삼아 며칠간 집을 비우면 그렇게 상쾌해질 수가 없다.
왜 그런고 하니... 정확히 그 이유를 댈 수가 없다.
기분이 정말 좋은데, 날아갈 듯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그래. 남편들 출장 가서 며칠 안 오면 그것도 좋긴 하지."
라고 말하던 출장이 잦은 큰오빠의 아내인 복 받은 큰 새언니의 말을 근거 삼아 비단 나 혼자만 그런 배은망덕한 생각을 가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너희 남편은 한 번씩 출장이라도 가지, 우리 남편은 출장도 안가. 맨날 집에서 출근해."
라고 한탄하던 친구의 낙심한 얼굴을 떠올림으로써 이것이야말로 뭇 아내들은 남편과 항상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방증이 아니겠냐며 혼자만 강력히 주장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남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쩌면 그들이 더 간절하게 바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공평한 생각을 쉽사리 지울 수 없다.
사람들에게도 가끔은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갖는 일이 필요하다고 '시카고'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 가사 첫마디부터 그렇게 시작했을까. 역시 이런 내 마음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어 봄직한 것임을 다시 한번 격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그룹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노래의 첫 소절을 행동으로 옮길 예정인 남편이 기특하기까지 하다.
"혹시, 2박 3일이야?"
나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슬쩍 찔러본다.
온 얼굴로 웃고 있지만 살짝 시무룩하게 물어야 한다.
"응. 2박 3일."
쥐구멍에도 볕 뜰날이 있다더니, 앞으로 12월까지 '언제나 맑음' 예정이다.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라고 말하던 어린 왕자가 간과한 게 하나 있다.
결혼 12년 째인 부부 사이에서는(어쩌면 나만)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다.
난데없이 남편에게 고백을 한다.
당신이 12월에 워크숍을 간다면 난 두 달 전부터 정말 행복해질 거야.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견디게 하는 힘, 두 달 빠른 남편의 합법적인 외박, 워크숍이라는 아름다운 외래어, 그것만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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