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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직(일반행정) 의원면직과 부부 갈등

by 그래도 나는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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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9. 1. 개인 하늘

남편이 돌변했다, 맑게 개인 하늘처럼.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보고,
"아무것도 안 한다."
라고 불평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린 사람이
"우리 여보, 밥 다 된 것 같은데 끌까?"
이러면서 넉살 좋게 말을 붙인다.

나는 남편이 '함부로 말했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그 사람과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결코 아닌데 자꾸 말을 시킨다.
남편이 기분이 내켜서 말을 걸면 아내는 무조건 그에 응해야 하는 걸까.

나도 '기분'이란 것이 있는 사람이다.
직장은 없지만 '내 기분'은 가지고 있다.
말 한마디에 의해 불쾌해지고 그로 말미암아 지금은 누구 하고도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말을 걸어오는 남편이 싫다.
그 태도가 싫다.

"지금 말하고 싶지 않아."
내 의견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엄마가 또 왜 저렇게 말할까. 너희 엄마는 가끔 저렇게 나온다니까. 뭐가 또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래?"
"본인이 말 시키면 나는 무조건 다 대답해야 돼? 그리고 애들 앞에서 마음대로 혼자 판단한 걸 가지고 말 좀 하지 마. 애들도 보고 생각하는 게 있을 텐데 왜 항상 그렇게 말해? 애들하고 상관도 없는 일을 가지고?"
내 의지로서가 아니라 남편의 의지로 '말'이란 것을 해야 하는가.
나는 기분이 나빠질 수도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사람은 기분에 따라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언쟁을 벌인 상대와는 더욱 그렇다.

본인만 기분이 풀어져서(풀어진 척하는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마는) 말을 걸면 나는 고마워하며 대꾸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인가?
마음이 풀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자기 마음대로만 행동한다.'라는 말로 시작해 '언제 어른이 될 거냐? 어른답게 행동해라.'하며 또 한소리 한다.
"자긴 아직도 멀었어."
라는 말은 덤이다.

그 모든 말들을 복사해서 붙여넣기 해주고 싶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니까.

언쟁의 근본적인 이유를 파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화는 애초에 없었다.
혼자 화를 내고(내가 본인을 화나게 만든다고 말한다, 나는 화는 당신 자신이 스스로 내는 것이라고 대꾸한다), 혼자 기분이 나아져서 말을 걸고, 그러고는 흐지부지 없었던 일로 되고, 얼마 가지 않아 또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고, 이러기를 11년 째다.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네."
라고 처음에 말하기보다
"이것 좀 더 신경 써 주면 좋겠다."
라고 말문을 열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내가 불쾌하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난 귀가 먹은 사람도 아닌데 눈썹을 치켜뜨면서 얼굴을 잔뜩 구기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에게(그것도 갑자기, 느닷없이, 뜬금없이) 차분히 이야기할 의지를 잃어버린다.

나도 내가 살림을 썩 잘하거나, 아이들을 완벽하게 돌보거나, 두루두루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이 아닌 것을 잘 안다.
"다른 집 여자들은 일하면서 살림도 잘하고 아이들도 잘만 키운다."
라고 남의 편은 자주 내게 말해 왔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한 두 번은 말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반복되면 그건 진심이리라.
나도 사람인데 아무리 내가
"앞으로는 집안일이랑 애들 돌보는 것은 내가 다 할게."
라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몸이 힘들면 소홀해질 수도 있고, 어딘가 허술해질 수도 있다.

"자기는 정리를 못해. 너희 엄마가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야."
라고 종종 그는 내게 말한다.
그러면서 본인이 나서서 정리하지는 않는다.
"본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본인 마음이니까 상관없어. 하지만 애들한테 선입견을 줄 수 있는 그런 말 좀 안 할 수 없어? 내가 '너희 아빠는~' 이러면서 애들한테 말하는 거 봤어? 본인 생각을 애들한테까지 강요하지 말라니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남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내 말과 행동을 먼저 살피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남보다 나를 먼저 돌아보라'라고 했다.
남이 이러네 저러네 말할 것도 아니다.
내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하고 단속하자.
그럼 되겠지.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애들한테도 안 좋아."
유치하지만
"내가 다 어지른 거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앞으로 집안일은 내가 다 할게.'라고 말해버린 죄로 더 이상의 입씨름은 기운만 뺄 것이 뻔하므로 더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않기로 했다.

단순히 권태기이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