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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4월에 한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때서야 내가 의원면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나 보다.
그는 육아 휴직 중이란다.
작년에 시작해서 1년 반의 기간을 신청했다고 했다.
6월 말이면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는데 7월 정기 인사 이동이 있을 때 복직을 할지, 아니면 의원면직을 할지, 육아 휴직을 더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고 했다.
둘째가 아직 어린 편이라 고민이 많이 되는데 쉽게 결정을 못하겠단다.
"그럼 너 명예퇴직한 거야?"
"응? 무슨 말이야?"
"정년퇴직은 아니잖아."
"아니. 명예는 없고 그냥 퇴직이야. 의원면직한 거야."
나는 공무원에게는 '정년퇴직'과 '명예퇴직' 두 가지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평소에 관심도 전혀 없었고 어디서 들어볼 일도 없었다.
'의원'이란 말이 들어가서 처음 그 단어를 보았을 때는
'의원들이 무슨 일을 그만두는 건가?'
했었다.
행정학 공부를 할 때 그런 내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만큼 낯설다.
공무원의 징계에 대해서도 '견, 감, 정, 해, 파' 순으로 점점 가혹해진다는 것 정도만 배웠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저 5 단계 중에서 가능하다면, 미리 피할 수 있다면, 어느 하나라도 결코 밟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명예는 오간데 없고 퇴직만 있을 따름이라고 했다.
결국에는 남편도 아이들도 받아들였고, 큰 사고 치지 않고 복잡한 소송에 휘말리거나 경찰서 들락날락한 일 없이 무난하게 공직생활 마쳤다고 생각한다.
사고 치고 시끄럽게 쫓겨나는 사람도 있는데, 불명예스럽게.
무슨 사정으로 의원면직을 고려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자세한 그 집 사정을 나는 모른다.
그는 이럴지 저럴지 도무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직장은 없어도 스케줄은 항상 있는 나다.
너무 고민이 된다면서 나보고 그만두니까, 18년이나 빨리 의원면직을 했는데, 허무하지 않냐고 물었다.
허무감이란 뚜렷한 목표도 없고 삶의 방향성 같은 게 없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허무감 느낄 틈도 없고, 현재 나는 현실에 아주 만족하며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내 시간을 내가 결정해서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요즘처럼 몸이 안 좋을 때는 다른 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 가족과 내 건강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고, 여기저기 남들 눈치 보며 병가 쓰느라 머리 복잡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것도 장점 중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들은 취직에 성공한 후 취직한 보람을 느낀다지만 난 퇴직한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 대관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의원면직 발령 공문이 뜬 그날 오후 퇴근 무렵부터 아직까지도 직원들이 연락을 해 온다.
그리고 그중에 꼭 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 직원들도 여럿 있다.
나처럼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으므로, 내가 그곳에서 '의원면직한 1호'가 된 것 같다고 직원들은 얘기한다.
그만큼 말이 참 많기도 했다.
나는 절대로 충동적으로 그만둔 게 아니기 때문에 벌써부터 후회한다거나 허탈감을 느낀다거나 그런 건 없다.
충분히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했고, 노후도 고려하고, 자녀 교육도 염두에 두고 이것저것 아주 많이 생각했고 신중한 날들을 보냈다.
"일 그만두니까 좋아?"
"쉬니까 좋지?"
"부럽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말들을 한다.
아무래도 단순히 일하기 싫어서, 편하게 살기 위해, 푹 쉬고 싶어서 그만둔 거라고만 그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
각자의 생각을 내가 어쩌랴.
그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 거지.
남편도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솔직히 말해 봐. 그만둔 거 후회되지 않아?"
"솔직히?"
"그래. 우리끼린데 뭐 어때? 얘기해 봐."
"응. 후회 안돼. 솔직히 진짜 후회 안돼."
남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알았어? 나 지금 진짜 후회돼. 그때 더 뜯어말리지 그랬어? 끝까지 그만 못 두게 막았어야지. 나 너무너무 후회된단 말이야. 그때 무릎 꿇고 인사담당자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지라고 할 때 정말 그럴 걸 그랬나 봐. 그 말 들을걸.'
이렇게 대답해야 마땅하겠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란 그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 무조건 후회하기만을 바라는 거지?
왜 후회할 거라고만 확신을 하는 걸까.
남편은 실망하며 언제나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진짜 특이한 사람이야."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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