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형님들도 주시지 저한테 다 주시는 거예요?"
"딸들은 됐어."
"갖다 쓰라고 하지 그러세요?"
"안 가져간대."
"그래도 몇 개는 어머님이 두고 쓰세요."
"나중에 나 없으면 어차피 다 버릴 건데 놔두면 뭐 하냐? 더 가져갈래?""
"아니에요. 이것도 많아요."
"그래. 엄마도 몇 개 갖다 드리고 너 써라."
"그럴게요. 잘 쓸게요, 어머님."
이렇게 며느리의 취향을 제대로 알고 계신 시어머니가 세상에 또 계실까?
완전, 딱 내 스타일이다.
"그거 다 새 거다. 놔두고 써라."
"무슨 바구니가 이렇게 많아요, 어머님?"
"응. 내가 너 주려고 안 쓰고 다 모아놨다."
"아휴, 그냥 어머님도 새것도 쓰고 그러시지."
"아니다. 너 말고 며느리가 또 누가 있냐. 난 너밖에 없지."
"저야 주시면 고맙죠. 집에서 쓸 일도 많은데."
"그래. 너는 집에서 이것저것 해 먹고 그러니까 다 쓸 데가 있을 거다."
둘씩이나 있는 딸보다도 하나뿐인 며느리를 먼저 생각해 주시는 그 마음에 더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어머님 말씀에 따르면 형님들은 가져가서 쓰라고 했는데 마다했다고 하긴 했지만 말이다.
솔직히 저런 바구니는 시장에 가서 사려면 몇 천 원이면 다 살 수 있는 거지만 그래도 며느리 하나 있는 거 그 며느리 주려고 언제 받아두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여태 안 쓰고 비닐까지 씌워서 새 걸로 고이 모셔뒀다가 며느리가 오면 한 무더기씩 내어주시는 분이 나의 시어머니다.
어차피 살림하는 데 다 필요한 물건들이니, 그리고 어머님의 마음이 고마워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뜻 가져가서 쓰겠다고 했다. 그럴 땐 나는 절대 거절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추석 전에 한 차례 어머님이 쓰시던 것 중 새거나 다름없는 것과 완전 새것인 것들을 이미 받아왔는데, 게다가 친정 엄마 갖다 드리라며 추가로 더 받아왔는데 최근에도 또 주셨다.
"이런 걸 뭐 하러 가져왔어? 엄마는 이런 걸 뭐 하려 주셨나 몰라."
라며, 시어머니의 아들은 눈치도 없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냥 제발 어머님 하시는 대로 보고만 있을래? 어머님이 나한테 준 거지 아들한테 준 건 아니잖아?"
라고, 나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로 답하긴 했다.
가끔 그 양반은 어머님이 내게 챙겨주시는 별의별 것이 이해되지 않는 눈치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머님이 아들한테 준 게 아니고 며느리한테 준 것이니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고부 사이에 하는 일은 끼는 거 아니다, 이 양반아. 간섭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제 앞으로 쓰면 얼마나 더 쓰겠냐. 네가 다 갖다 써라, 며늘아. 필요한 거 있으면 더 가지고 가."
단순히 새 살림받아 온 것에 신이 났던 나는 어머님의 그 말씀에 그만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머님, 오래된 건 다 버리고 새 걸로 바꿔서 쓰세요. 좋은 거 있으면 어머님도 아끼지 말고 다 쓰세요."
"아니다. 좋은 것은 놔뒀다가 우리 며느리 줘야지."
"안 그러셔도 돼요. 이미 많이 주셨잖아요."
어머님이 몸이 안 좋아진 후로는 부쩍 약한 말씀도 지주 하신다.
"며늘아, 그거 이번에 새로 받은 거다. 스텐 그것도 새 거다. 너 김치 담글 때 배추 물 뺄 때 써라."
"안 그래도 그런 거 하나 사려고 했었는데 잘 됐네요. 어머님. 딱 필요한 거였어요."
"그랬냐? 그래. 며늘아, 고맙다. 사랑한다."
고작 플라스틱 바구니 몇 개로 이렇게 고부 사이가 가까워질 수 있다니.(가까워진 거 맞겠지? 최소한 멀어지지는 않았겠지?)
(소문으로 들었는데) 남들이 결혼 예물로 받았다던 다이아 세트보다 나는 간헐적으로 받는 이런 살림살이가 더 좋다.
(이것도 소문으로 들었는데) 대대로 시어머니들이 물려주기도 한다던 금가락지보다 나 같은 며느리에게는 시어머니가 물려주는 살림살이도 꽤 괜찮다.
정말 딱 내 스타일이다.
그러고 보면 그 양반 하고는 안 맞아도 너~~~ 무 안 맞는 것 같아도 시어머니와는 좀 맞는 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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