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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 않(은) 남매

버르장머리는 어디에 두고?

by 그래도 나는 2024.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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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태도가 좀 거시기하다."
"내가 뭘?"
"너무 버릇없는 행동을 엄마한테 하고 있네?"
"에이!"
 
어쭈,
요놈 봐라.
갈수록 태산이로세.
뭐가 어쨌다고 엄마 앞에서 한숨을 쉬고 미간을 찌푸리는 거람?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안 되겠어.
다른 건 몰라도 버르장머리 없는 건 내가 절대 안 봐주지.
"엄마. 내일 아침에 나 깨워 줘."
"뭐 하게? 설마 공부하게?"
"응."
"어린이가 무슨 공부를 한다고 그래? 잠이나 푹 자."
"아니야. 깨워줘. 깨워줘야 돼. 꼭! 알았지?"
"일단 알았어.(=깨워 주긴 할 테지만 최대한 늦게 깨워 줄 테다.)"
 
아들은 요즘 아침에 기상하시고 영어 공부를 (정말 하는 건지 어쩐 지는 확인 불가다.)하고 등교하신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왜 굳이 아침부터 공부를 하고 가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어린이가.
그것도 고3도 아닌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신 어린이가.
"우리 아들, 공부는 안 해도 된다니까. 잘 때 자고 먹을 때 먹고 이 잘 닦고 그러면 되는 거야."
"아니야. 엄마. 나 꼭 깨워줘야 돼. 엄마는 몇 시쯤 일어날 거야?"
"7시 넘어서 일어날 건데?"
보통 6시 30분 정도에 일어나지만 아들이 일어나서 공부를 하시겠다고 하니 최대한 늦게 일어날 작정을 했다.
"그래? 그럼 나도 그때 깨워 줘."
"아니야, 넌 더 자도 돼. 아침부터 일어나서 공부하고 가면 하루가 얼마나 길고 피곤하겠어?"
"아니야. 그래도 깨워 줘. 알았지?"
이 어린이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단 말인가.
요즘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EBS 영어 강의를 듣고 다른 강의도 한 두 개 정도 듣고 등교를 하시는 아드님이시다. 
이런, 너무 당황스럽다. 공부하는 어린이라니!
어린이는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건강하게 자라면 (일단은) 그만 아니던가?
(혹자는 아직 아이가 어려서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한다고들 하기도 하지마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신신당부한 아들의 부탁을 가볍게 흘려듣고 8시가 다 되어서야 아들을 깨웠다.
"우리 아들 일어나야지. 깨워 달려며."
"맞다. 엄마, 지금 몇 시야?"
"8시 좀 안 됐어."
"뭐??? 내가 빨리 깨워 달라고 했잖아. 이제 깨우면 어떡해?"
"우리 아들이 잘 자길래 더 자라고 그랬지. 지금 일어나면 되잖아."
"빨리 깨워 달라니까. 에휴(한숨 X1,000)"
"우리 아들 왜 말을 그렇게 해? 엄마가 깨워줬잖아 안 깨워줬어?"
"이게 뭐야? 엄마 때문에 이게 뭐냐고!"
어쭈, 요놈 봐라.
어디서 지금 내 탓을 하려고 드는 게지?
게다가 저렇게나 불손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로.
"우리 아들, 그런데 엄마한테 하는 그 말버릇이 그게 뭐지? 너무 버릇없이 말하잖아."
"에이! 정말!"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버릇없는 것 못 봐준다고 했지? 공부만 하면 뭐 해? 엄마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행동하면서 공부는 해서 뭐 할 거야? 사람이 먼저 기본이 돼야지."
아들은 한동안 내 앞에서 신경질을 부리며 짜증 섞인 말만 했다.
"밥은 먹고 가야지."
"안 먹어."
엄마 보란 듯이 대놓고 아침밥 먹기도 거부하셨다.
"공부는 해서 뭐 한다고. 아침밥도 안 먹고 학교 가면서."
나는 무조건 공부대신 잠을 더 자고, 버릇 있게 행동하고 그냥 아침밥이나 먹고 갔으면 했다.
공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물론 일찍 일어나서 공부도 하고 공손하게 엄마를 대하며 아침밥도 든든하게 잡수고 가시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라고 은근한 속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K 엄마인가 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의 그날 아침 행동은 정말 버르장머리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불손했으므로 나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입이 현관까지 나와있는 아들을 앞에 앉히고 훈화 말씀을 한동안 이어 갔다.
아침부터 그런 일로 서로 얼굴을 붉히면 서로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들 기분 맞춰주자고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도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그런 면에서는 자비란 없는 편이다.
사람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 법이니까.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면 뭐 하고 문법 공부 하나 더 하면 뭐 한단 말인가.
나도 지은 죄가 있었으므로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마음이 편치 많은 않았다.
그러나 아드님은 달랐다.
세상 평온한 얼굴로 아들은 컴백하셨다.
"엄마, 죄송해요."
하교한 아드님은 가방도 풀지 않고 다짜고짜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뭐가?"
"아침에 엄마한테 화내고 신경질 내서요."
"그래. 엄마도 화 내서 미안해. 엄마는 그냥 우리 아들이 잠을 더 잤으면 좋겠어서 그랬던 것뿐이야. 엄마 마음 알지?"
"응. 알아. 엄마가 나 생각해서 그런 거."
 
하여튼 우리 아드님은 뒤끝은 없으시다니까.
 
어쩌면,
아마도,
나를 닮았나 보다...
그러니까 버르장머리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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