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인지 허브인지
"엄마. 여기 흙 속에 뭐가 났는데?"
딸이 급히 나를 불렀다.
딸 말마따나 정체는 모르겠지만 정말 뭔가 있긴 있었다.
"이거 혹시 페퍼민트 아닐까?"
일단 김칫국부터 들이켰다.
이번엔 정말 페퍼민트 구경을 할 수도 있겠군, 잘~ 하면.
"이상하다. 왜 바질이랑 레몬밤은 잘 크는데 페퍼민트는 아무 소식이 없지?"
"엄마가 잘 못 사 온 거 아니야? 그게 정말 페퍼민트 맞아?"
"분명히 봉투에 그렇게 써 있었다니까. 그래도 엄마가 한글은 잘 읽는다고!"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발아율이 낮다고 해도 그렇게 싹이 안 트기도 힘들어 보였다.
생긴 것도 먼지만큼이나 작더니 정말 싹도 찾아 보기 힘들었다.
바질의 성장이 가장 눈에 띄게 좋았고 레몬밤도(레몬밤이라고 믿고 있는데 아직도 확신은 없다)그런대로 잘 크고 있는데 페퍼민트는 얼굴도 보기 힘들다.
그런데 9월 초에 화분 여기 저기에서 풀 같기도 하고, 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페퍼민트라고 굳게 믿고 살뜰히 보살피던 싹이 여럿 나긴 했었다.
옆에 돋은 바질과 레몬밤과는 떡잎부터 확연히 달라서 은근히 기대도 됐었다.
하지만 추석 연휴에 며칠 간 집을 비우는 바람에 막 싹 튼 정체모를 식물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올해는 페퍼민트 구경 다 했다고 단념할 때쯤 불쑥 싹이 하나씩 올라 왔다.
마치 허브에 매달려 애면글면 하는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나도 (엉뚱한 데에) 오기가 다 생겼다.
하나라도 살려야지. 떡잎이라도 봐야지.
어느 날 바질이 크고 있는 컵에서 새 생명이 싹을 틔웠다.
어쩌다가 바질 씨앗이 아닌 다른 씨앗이 거기 들어간 건지 너무 느닷없이 말이다.
투명해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뭐가 돋아났어도 모르고 살 뻔했다.
이건 나보고 잘 거두어 주라는 하늘의 계시가 분명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깨만 한 것을 내가 발견해 냈으니 말이다.
사실 속으로는 아마 저건 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그 운명은 정해진지 오래겠지만 인간적으로 하나 정도는 다른 허브로 자라나야 했다.
그래서 이참에 발견한 그것이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페퍼민트로 자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저렇게 흙 속에 파묻혀 있다가는 숨도 못쉬어서 죽게 생겼다.
하루 빨리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줘야지.
팠다.
꺼냈다.
심었다.
꺼내놓고 보니 더 풀 같기도 하고, 허브같기도 했다.
코에 걸든, 귀에 걸든 내가 걸기 나름이었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볼 수도 없고 이것 참.
화분에 있는 저 흙을 친정 집에서 가져왔는데 혹시 풀 씨가 떨어져 있다가 돋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허브로 신분 세탁을 했다. 풀이라고 해서 나쁠 건 또 없으니까. 자세히 보면 예쁜 풀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만에 하나 정말 내가 풀을 키운 거라고 하더라도 실망하지는 말아야지.
그나저나,
나중에 뭐가 되려고,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