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가정 지킴이는 내 남편

"이따가 물물교환 할까?"
"시간은?"
"대략 두 시 정도?"
"알았다, 오바!"
갑작스러운 만남, 느닷없는 물물교환, 우리는 그런 사이다.
"엄마가 너랑 나눠 먹으라고 또 뭐 주셨는데 월요일 퇴근길에 브로커 파견 가능해?"
"당연히 가능하지."
브로커는 친구의 남편이다.
애칭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고 그냥 친구와 나 사이, 우리만의 별칭이다.
간혹 내가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친구를 호출하면 우리 집(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집 지하 주차장이다)에친구가 들를 때도 있고 친구의 남편이 들를 때도 있는데 친구가 안 오면 브로커가 오신다.
일종의 메신저라고나 할까?
"갈치 낚시 갔다가 좀 잡아 왔어. 씨알은 안 굵어도 먹을 만하니까 보낼게."
"밤새 다녀오셨나 보구만. 갈치 못 본 지 백만 년이야. 나야 고맙지."
원래는 월요일 퇴근길에 내가 주기로 한 농산물을 수거해 갈 예정이었는데 일정이 앞당겨졌다.
"지금 열심히 손질 중이니까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갈치도 잡고 손질까지 직접 하시다니, 남의 남편이지만 대견해 보였다.
걸핏하면 낚시 다닌다고 못마땅해하더니 이렇게 수확물이 넘쳐나는 날이면 친구인 나한테까지 그 집 인심이 미친다.
"무슨 낚시를 그렇게 좋아하나 몰라. 걸핏하면 나간다니까. 그리고 밤잠도 안 자고 밤새 낚시해. 집에 오면 피곤하다고 다음날은 하루 종일 잠만 자고."
그녀의 불만은 그것이었다.
낚시를 가는 건 본인의 취미니까 그렇다 쳐도 주말엔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집안일도 같이 하고 해야 하는데 일주일 내내 맞벌이로 살다가 주말까지 거의 모든 일을 또 친구 혼자 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없는 동안은 네가 자유부인 되는 거잖아. 좋겠다."
"좋긴 뭐가 좋아?"
"그럼 우리 집 누구처럼(그의 사회적 신분과 체면을 생각해 그가 누구인지는 절대 밝힐 수가 없다) 밖에 절대 안 나가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좋겠어?"
"그건 아니지! 생각만 해도 숨 막힌다. 그냥 낚시 가라고 할래."
평소에 낚시 얘기만 나왔다 하면 예민해지는 친구는 우리 집에 거주 중인 한 성인 남성 얘기만 나왔다 하면 그 불만이 쏙 들어가 버린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누구가 친구네 가정의 평화를 지켜주고 있었네.
"우리 아들, 이거 봐봐. 갈치가 엄청 싱싱하다."
"엄마, 은색으로 색칠한 거야?"
"아니, 갈치는 원래 이렇게 은색이잖아. 진짜 은색이다. 그치?"
"옛날에도 우리한테 갈치 주지 않았어."
"그랬지. 기억나? 그때도 엄청 많이 줘서 외할머니랑 나눠 먹었잖아."
"그때도 맛있었는데 이번에도 맛있네. 이제 막 잡은 거라 그런지 싱싱하고 맛있어. 비린내도 안 나."
"그러게.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할머니댁에도 좀 갖다 드리는 건데."
정말 비린내가 안 났다.(고 믿는다, 믿고 싶다)
시가에 바로 전날 갔다 와서 그게 좀 아쉬웠다.
시부모님도 생선을 잘 드시는데 이렇게 싱싱하고 좋은 걸 갈 때 가져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욕심이 났던 거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토요일에 시가 가야 하니까 금요일 밤부터 갈치 잡아주세요."
라고 브로커에게 뻔뻔하게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살생을 하면 다음 생에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지며, 사람 몸을 받더라도 평생 병을 얻어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살게 된단다. 브로커한테 꼭 전해."
라고 신신당부하던 내 말도 이번엔 쏙 들어가 버렸다.
다음 생보다는 일단 이번 생부터 살고 보자.
부처님도 이미 목숨을 다 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셨으니.
다음 생엔 갈치가 좋은 곳에 태어나길 바라며, 나는 그저 맛있게 튀겨 먹고 구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