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나는 이런 것을

명절마다 너무 시가에 가기 싫은 며느리

그래도 나는 2024. 9. 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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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시가에 가기도 싫어. 이번에도 2박 3일이라니까."

"너 왜 그래? 왜 그렇게 오래 있어?"

"나라고 있고 싶어서 있겠냐? 시어머니가 빨리 간다고 뭐라고 해서."

"2박 3일 있었으면 됐지, 더 있으라고?"

"그러게 말이다. 나 명절 다가오니까 또 가슴이 막 답답해."

 

친구는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

1박 2일이면 몰라도 2박 3일은 좀 길다 싶었다.

시가에 갔으면 친정에도 가야 할 테고 명절에 일했으니 또 집에 가서 쉬어야 할 텐데, 게다가 직장도 다니는 사람인데 혼자 쉴 시간도 필요할 텐데 불편한 시가에서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있을 수 있는지 나는 친구의 말이 곧이곧대로 안 들렸다.


"넌 내 마음 몰라."

"그래도 조금은 알지."

"아니. 아무도 내 마음 몰라."

"그래도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정신 건강에 해로워."

"이미 내 정신 건강은 물 건너간 것 같아."

"그래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 너를 위해서."

"그래야지. 아무튼 벌써부터 우울해진다."

왜 아니겠는가. 아무리 시어머니가 잘해준다고 하더라도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엄연한 남이고 아무리 호화로운 대궐 같은 시가라 할지라도 내 집이 아닌 이상 편할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근데 2박 3일은 너무 긴 거 아니야?"

"내 말이."

"남편한테 좀 일찍 가자고 해 봐. 그런 눈치는 있을 거 아니야?"

"눈치라고는 없어."

"그래?"

"눈치라도 있는 사람이면 내가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지."

"그럼 네가 시어머니한테 가겠다고 직접 말하면 안 돼?"

"그러면 난리 나. 다른 집 자식들은 오래 있다 가는데 왜 너희는 '날마다' 일찍 가려고만 하냐고."

"일찍 가는 건 아니잖아 솔직히. 보통 하루 자고 오지 않아? 너희처럼 그렇게 오래 있다 오는 집도 없을걸? 그리고 너도 거기가 편하진 않잖아."

"당연히 불편하지. 그리고 거기 있는 동안 내내 일만 해야 되고. 진짜 스트레스받아."

"네가 고생이 많다 정말."

"시어머니한테 한 번 얘기해 봐."

"한 두 번 얘기해 본 줄 알아? 여러 번 말했는데 그때마다 화내. 이젠 화내는 거 보기 싫어서라도 아예 말을 안 해. 내가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그럴 때마다 어이없고. 진짜 말 안 통하거든."

"그게 화 낼 일인가? 왜 화를 내지?"

"그러게 말이다."

"보통 그렇게 말하면 속으론 싫어도 겉으로는 그냥 가라고 할 거 같은데."

"나 진짜 시가 가기 싫어. 갈 생각만 하면 너무 스트레스받아."

"어떡하냐. 내가 대신 가 줄 수도 없고."

정말 나는 내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라면 대신해주고라도 싶었다.

하지만 남의 부부 문제에 나서는 거 아니고 남의 고부 사이에 낄 일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무조건 시어머니가 싫다거나 시가가 싫다거나 그런 얘기가 아니었다.

거기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싫다는 것이다.

나라도 (물론 나의 시어머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시어머니지만) 시가에 며칠 동안 있으라고 하면(물론 그럴 분도 아니었지만) 많이 부담스러울 게 확실하다.

 

"명절 연휴가 길면 뭐 해. 난 긴 게 더 싫어. 길어지면 그만큼 시가에 더 있어야 하니까."

"그럼 시가에 2박 3일 있다가 일만 하고 오면 너희 친정에 가서도 2박 3일 있다 오긴 해?"

"너 지금 장난하냐? 그러면 내가 이러겠어?"

"어머님, 저도 친정 가야죠, 이러고 하루 먼저 나오면 안 돼?"

"그런 말이 통할 거 같으면 내가 이러겠냐고."

"왜 그 말이 안 통하지?"

"너는 몰라. 시어머니가 집에 간다고 하면 왜 그렇게 빨리 가냐고 그러면서 뭐라고 하니까 그 소리 듣기 싫어서 그냥 있는 거지 나라고 좋아서 있겠어?"

"그래. 나는 이해가 안되긴 하는데, 그래도 보통 다들 하룻밤 정도 자고 오는 것 같던데 말이야."

"다른 집 자식들은 다들 오~래 있다 간대."

"다른 집 자식들 누구?"

"나도 모르지. 나도 그 다른 집 자식들이 누군지 진짜 궁금하다."

"다른 집 자식들은 잠도 안 자고 반나절만에 갑디다, 그래 봐. 요즘 다른 집 자식들은 명절에 집에 안 오고 다들 여행만 잘 다닙디다, 그래 봐."

"너 계속 입 아프게 할래?"

"네가 시어머니한테 너무 잘해 드리나 보다. 그래서 오래 같이 있고 싶으신가 보다. 네가 좋은가 봐."

"그만해라!"

친구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나는 혹시 몰라서, 아니 그렇게라도 생각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할 것 같아서 한 말이었는데 더 진도를 나갔다가는 친구에게 의절당할 것 같았다.

나도 마음이 안 좋아서 그랬다.

보아하니 그분은 안 변할 것 같고 상황은 매번 달라지지 않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렇게라도 생각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 말이다.

맨 처음 친구에게 믿기 힘든 얘기를 들었을 때는 거짓말 같았다.

얘가 지금 소설을 쓰나 싶었다.

하지만 소설이라도 그건 너무 한다 싶을 정도였다.

그저 그런 시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동안 들은 말이 있어서 내가 하는 하나마나한 소리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정말 나도 잘 안다, 남의 일이라 말은 쉽다는 걸.

정작 내 일이라면 또 달라지겠지.

하지만 나라면 그래도 계속 시어머니에게 얘기하고 집에 올 것 같은데,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니까 시어머니가 어떻게 나오든 밀고 나갈 것 같은데.

이런 내게 친구는 항상 말한다.

"네가 안 겪어봐서 그래."

하긴, 내가 남의 시어머니를 굳이 겪어볼 필요는 없긴 하지.

어떻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지만 나는 친구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너한테 말이라도 하니까 속이 뻥 뚫린 것 같다. 이제 좀 살겠어."

"그럼 다행이고."

나야 언제든지 그녀의 고충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잠시나마 속이 시원해졌다면 좋은 일이지.

친구끼리 서로 돕고 사는 거지, 그래서 나도 한 번씩 답답한 속내도 꺼내놓고. 

 

아, 그런 시어머니도 있구나.

나는 겪어 본 적도 없는, 여태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시어머니가 있긴 있구나.

드라마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이번 추석에도 2박 3일을 낙찰받은 친구는 우울해하고 있다.

"저기요, 어머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제 친구라서가 아니라 그 정도면 할 만큼 하는 거 아닌가요? 제 친구가 명절을 안 챙겼어요? 생신을 안 챙겼어요? 병원을 안 모시고 갔어요? 시누이들이 걸핏하면 와서 자고 시조카들도 걸핏하면 들르고 어머님도 제 친구집에 자주 오시는 거 저도 다 알아요. 다 하잖아요. 안 하는 거 없잖아요. 그 정도면 만족할 줄 아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손녀 낳아 잘 기르고 직장 생활까지 하는 며느리잖아요. 시가 모임에 꼬박꼬박 나가고 얼마 전에도 시가 식구들이랑 1박 2일 여행까지 다 참석했잖아요. 설 일주일 전이 어머님 생신이라고 그 때도 가고 일주일 뒤에 설이라고 또 갔잖아요. 2주 연속 갔잖아요. 그런 며느리 요즘 흔치 않아요. 어머님도 같은 여자이면서 좀 심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오죽하면 친구가 명절마다 스트레스받는다고 하겠어요? 가기도 싫다잖아요. 어머님, 세상이 바뀌었답니다. 그걸 아셔야죠! 예전처럼 며느리에게 대접만 받으려고 하시면 곤란해요. 하루를 있더라도 즐겁게 있다 가는 게 좋지 며느리가 2박 3일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있으면 서로 좋을 거 하나도 없잖아요. 옆에서 보는 제가 더 속상해요."

라고 친구의 시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싶지만, 남의 시어머니께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 할 수만 있다면 그분을 만나 사정하고 싶었다, 이젠 제발 적당히 좀 하시라고.


친구의 말을 듣는 내내 나까지 마음이 안 좋았다.

벌써 거의 10년째다.

명절이 대관절 뭐라고, 남의 자식들이 하루를 있다 가든 일주일을 있다 가든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남의 자식들은 생신하고 설하고 일 주일 간격이면 한 번만 가기도 하던데.

아니, 그것도 아니, 어떤 집은 명절 맞춰서 각자 놀러가기 바쁜 자식들도 있던데.

10년, 강산은 변해도 안 변하는 게 있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