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언제였던가. 집으로 온 자동차세 연납분 고지서를 두 장 받아 들고 나는 별생각 없이 자동이체해 두었으니 알아서 빠져나가겠거니 했다.
내가 근무할 때 우리 집 차 두 대분의 자동차세를 진작에 연납 신청을 해 놓고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적극 장려해 왔다. 그때가 벌써 5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지방세 담당자로서 어떻게든 체납세금이 덜 발생하게 하려면 기한 내에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었다. 동시에 전 직원에게 '이참에 연납 신청에 적극 동참해 주시라'며 반강제성의 메일을 발송하는 것도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자동차세는 연초에(연초에 신청을 받았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이러니 이번에도 착각을 했지.) 연납 신청을 받았다. 6월과 12월에 1년에 두 번 자동차세가 부과되는데 당시 연납 신청을 하면 자그마치 10%씩이나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지자체마다 다른지 어쩐 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당시는 그랬었고, 지금은 그 혜택이 많이 줄긴 했다.
물론 한꺼번에 차 두 대 분의 자동차세를 낸다는 게 적잖은 부담이었지만(수 천만 원짜리 고급 자동차는 아니었으나 둘 다 8급 공무원이었을 시절에 우리 부부의 월급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10%가 어디냐며 나처럼 이렇게 알뜰살뜰한 사람이 어디 있냐며(사실 사방천지에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감면 혜택'을 이유로 들며 무조건 연납 신청서를 다 작성해서 서명만 하도록(나는 슬프게도 서명할 권한이 없었다.) 강요했던 것이다. 두 대를 합치면 총 5만 원에서 6만 원 정도를 절약할 수가 있었다.
어차피 자동차세는 내야만 하고 낼 바에는 조금이라도 덜 낼 요량으로, 게다가 미리 연납 신청을 해 두면 자동차세 납부 시기가 와도 안심하고 신경도 쓰지 않아도 됐으므로 그런 장점들만을 예로 들어가며 주민들에게, 특히 만나는 이장님들에게도 적극 홍보하기에 이르렀다. 연납 고지서는 연초에 한 번 받고 내면 끝이니까 얼마나 속 편한가.
그러나, 연납 고지서를 받고 제 때 내지 않으면 원상 복귀가 되어 다시 6월과 12월에 두 번 자동차세가 나오고 이미 신청했던 연납도 자동 해지가 되어버린다는 점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나 또한 그랬다.
전에 자동이체 신청을 했더라도 연납 신청자는 처음 나온 그 연납 고지서로 납부를 해야 하는데 '자동이체'만 믿고 깜빡해 버리기 일쑤다. 고지서에도 분명히 '연납고지서는 자동이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안내되어 있었지만 나도 건성으로 봤다.
2월 초엔가 얼마 들어 있지도 않은 통장 잔액을 확인하다가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분명히 자동차세가 빠져나갔어야 하는데 잔액이 며칠 전과 똑같았다.
이상하다? 어디서 입금될 일도 없는데?
누가 나한테 송금해 줬나?
이게 웬 횡재냐, 속없이 쾌재를 다 불렀다.
나에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건 없는데, 혹시 남편이 인심을 썼나?
그때까지만 해도 자동차세가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당장 출입금 내역을 확인했다.
그런데 자동차세가 빠져나간 흔적이 전혀 없었다.
진짜 이상하다? 말일이 휴일이면 그다음 날 귀신같이 빼가는데 왜 여태 안 빼갔지? 전산 오류인가? 이번엔 특별히 천천히 빼가는 건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다.
그럴 리가 없지.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전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참을 생각하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연납 고지서는 자동이체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 남편에게 한 소리 들을 만도 하다.
언제나 그는 아내에게 깜짝 입금을 하는 대신 혹독한 '따끔한 지적의 말씀'만 베푸신다.
전에 근무하던 시절에도 나 같은 민원인이 꽤나 많았다.
"고지서 보시면 알겠지만 연납 신청자는 자동이체 안되니까 깜빡하시면 안 돼요. 납부하셔야 됩니다. 안 하면 연납 신청한 것도 다 해지되고 전처럼 일 년에 두 번 고지서 받으실 거예요."
라고 지방세 담당자는 노동요 부르듯 술술 읊어대곤 했었는데, 왜 고지서에 안내가 다 되어 있는데 그런 것도 자세히 안 보고 내버려 두다가 나중에 체납까지 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 안 됐는데, 그랬는데, 겪어보니 알겠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민원인이 되어가는구나 나도.
"가만 보면 당신은 진짜 옛날에 그 일을 한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니까."
가뜩이나 이런 내가 어이없을 지경인데 결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시다.
"원래 떠나면 다 잊는 법이야. 날마다 하는 일도 안 한 지 오래되면 다 잊어버리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