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 않(은) 남매

개학은 달다

그래도 나는 2024. 8. 2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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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누나, 그래봤자 소용없어. 어차피 똑같은 일이 일어날걸?"
"그래도."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도 그렇게 말할걸? 그러니까 자꾸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개학을 하루 앞둔 남매는 아침 일찍부터 제법 심각해 보였다.
둘이 진지하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연 그들의 방학이 뭔가 달라질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 살짝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우리 아드님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군.
어쩜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저런 말을 다 하는 거람?
하루 종일 남매는 틈만 났다 하면 시계를 쳐다봤다.
"어떡해, 이제 몇 시간 안 남았어."
"벌써 오후가 됐어."
"이젠 정말 내일이면 개학이란 말인가?"
"믿을 수 없어. 이럴 수는 없어."
"시간이 너무 빨리 갔어."
"어떻게 벌써 개학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얘들 좀 보게나.
한 달 내내 실컷 잘 놀아놓고 이게 다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 게지?
누가 들을까 무섭다.
방학 때 남들은 다 간다는(풍문으로 들었다) 학원을 다니길 했어? 아니면 족집게 과외를 받기를 했어?
놀 만큼 놀아놓고 이제 와서 무슨 말이람?
물론 온전히 방학 동안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니 무한의 방만한 생활을 보장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나도 할 만큼은 했고, 놓아줄 만큼은 놓아주었다.(고 생각한다)
남매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한 오백 년 전에는 그런 마음이었을 테니까.
세상에서 가장 긴 것은 엄마가 느끼는 '방학'일 테고 세상에서 가장 짧은 것은 남매가 느끼는 '방학'일 것이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마침 오늘 '모닝스페셜'에서도 무모한 문장이 '가끔은 혼자가 더 편해요'였다.
당장 나는 진심을 담아 특출 나지 않은 실력으로 영작을 해서 도전했다.
나 말고도 방학 중인 자녀를 둔 다른 어머님의 간절한 소망이 사연에 소개되기도 했다.
'가끔'이 아니라 '종종'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나는 '항상'이라고 덧붙여 사연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개학을 해야 부모님도 정신을 좀 차릴 시간이 있지.
그래야 겨울 방학을 또 대비할 것 아닌가.
너희가 아무리 그래봤자 다음날이 개학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냥 개학도 아니야.
아주 아주 달디달고 달디 단 개학이란 말이야, 물론 이 엄마에게만.
옛말 그른 것 하나 없구나.
방학은 쓰지만 개학은 달다.
고생 끝에 개학 온다.
방학 내내 시달린 엄마에게도 개학할 날 있다.
자녀에게 쓴 것이 엄마에게는 달다.
등등, 개학할 즈음에 더욱 빛을 발하는 맞춤형 리미티드 에디션.
내일모레가 곧 겨울방학이지만 그래도 달다, 아주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