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시간을 위해

"일찍 일어난 김에 우리 도토리묵이나 만들까?"
학교는 내일모레 가는데, 아직은 방학 중인데 아드님이 8시가 되기도 전에 기상하셨다.
딸이 아니고 분명히 아들이다.
아, 오늘 하루가 길겠구나, 나는 직감했다.
일찍 일어나는 남자 어린이가 하면 좋을 일이 뭐가 있을까?
오디오어학당에서 한 번 골라 볼까?
'Easy Writing'에서는 '커리어냐 가족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내용의 대화문이 방송됐는데 초등 4학년 남자 어린이가 관심 있어 할 내용은 아닌 것 같고, '귀가 트이는 영어'에서 다룬 뉴스 기사인 '오픈 AI 직원들의 위험성 및 관리 감독 부족 경고'에 대해 토론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입이 트이는 영어'의 사연 주제인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서도 나는 입도 뻥끗할 무엇이 딱히 없었다. '모닝 스페셜'에서는 '알랑 드롱'의 타계 소식과 함께 '일도 안 하고 일자리도 찾지 않는 청년이 지난달에 44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는 뉴스 기사 내용이 나오고 있었지만 나도 얼굴도 모르는 외국 배우에 대해 얘기하기도 그렇고, 다짜고짜 아들에게 그 44만 명의 칭년들에 대해 토킹 어바웃 해 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아들이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지? 벌써 학교 갈 준비하는 거야?"
비몽사몽이 분명해 보이지만 그 어린이는 아무튼 일어나긴 일어나셨다.
네가 최대한 늦게 일어나야 하는데, 왜 하필 새벽부터 일어난 게야?
그렇다면, 할 일이 있지.
없던 일도 만들어 내야지.
"일찍 일어난 '기념'으로 도토리묵 만들자."
도토리묵을 만드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상대방의 의향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론을 지어놓고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이고 싶었다.
"지난주에도 만들었잖아. 그때 우리 아들이 정말 잘 먹던데 오늘도 만들자."
지난 주만 만든 게 아니고 벌써 내가 남매와 함께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은 지는 한참 됐다,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알았어."
"우선은 엄마가 감자 버터구이를 해 줄 테니까 그거 먹고 하자. 그러면 기운이 나겠지?"
나는 무조건 체험 학습만 시키는 무지막지한 엄마가 아니다.(라고 혼자만 굳세게 믿고 있다.)
"뭐 하면 돼?"
"일단 엄마가 젓고 있을 테니까 우리 아들이 나중에 조금만 더 저어 주라."
처음부터 저어달라고 부탁하면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기 힘들 터였으므로 '너는 숟가락만 얹어라'하는 마음으로 일단 안심을 시킨 후 가내 수공업에 참여하게 했다.
이제 고작 아침 8시, 우리의 아침은 당신의 아침보다 할 일이 많다.
일단 감자 버터구이를 먹이자.
예로부터 일꾼들은 먹이고 보지 않았던가.
"버터가 들어가서 그런지 좀 느끼하네."
"그래? 그럼 엄마가 자몽 에이드 만들어줄게. 그런데 자몽청도 오늘 먹으면 이젠 없어. 그런 의미에서 이따가 자몽청 같이 만드는 건 어때? 어차피 너희가 제일 많이 먹잖아."
"그렇긴 하지. 알았어. 만들게."
후다닥 도토리묵을 쑤고 다음 코스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중에 아드님이 말씀하셨다.
"엄마, 감자 버터구이를 먹으니까 빵이 먹고 싶어."
감자 버터구이와 빵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아드님은 빵타령을 시작하셨다.
여기서의 빵이라 함은 '식빵'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옳다구나 싶었다.
"그래? 빵을 먹으려면 잼이랑 같이 먹으면 맛있겠네. 그럼 잼을 만들어야겠지? 너희가 복숭아 잼 만들면 되겠다."
냉장고에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복숭아가 있었다. 복숭아 잼도 지난주에 이미 만들어 봤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그 이전 이전에도.
그러니까 충분히 또 만들 수 있다, 그것도 너희가.
"엄마, 잼은 내가 만들래."
딸이 갑자기 나섰다.
별 걸 다 욕심내는 딸이다.
"그래. 그럼 잼은 합격이 네가 만들고, 자몽청은 우리 아들이 만들면 되겠네. 그치?"
"그럼 되겠다."
좋아,
내 계획대로 순조롭게 착착 잘 진행되고 있어.
그리하여 감자 버터구이로 남매의 배를 불린 뒤 도토리묵을 쑤고, 복숭아 잼과 자몽청을 만들었다, '남매가'.
계속 기회를 엿보다가 나는 또 슬쩍 한마디 했다.
"바질을 분갈이해 줘야 할 때가 됐는데, 같이 할래? 내일모레 개학하는 '기념'으로 말이야."
"분갈이랑 개학이랑 무슨 상관인데?"
"학교 가니까 좋잖아. 그런 의미에서 하자는 거지."
"그래? 아무 상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내가 할래."
분갈이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전날 한차례 이파리를 다 따주고 나니 휑해서 몇 그루는 따로 심기로 했다.
바질 분갈이는 딸이 맡았다.
화분 하나로 키운 지가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다.
볼 때마다 좀 나눠 심어야겠다고 한 오백 년 전에 마음만 수 백번 먹었다.
그러 보 보면 나도 어지간하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이것도 남매가 개학하기 전에 처리해야지.
이제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다.
살 공간에 여유도 생겼겠지?
그럼 더 잘 크겠지?
잘 커야 하는데 ...
산세베리아 분갈이도 방학 중 숙원 사업이었다, 물론 내게만.
"우리 아들, 혹시 엄마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
"당연하지. 뭐든지 말만 해. 버섯 먹으라는 것만 빼고 다 들어줄게."
어쩜, 다정하기도 하셔라.
"여기 화분 공간이 좁아서 산세베리아가 잘 안 크는 것 같아. 이것도 이참에 좀 정리하자. 우리 아들이 도와줄래?"
"당연히 내가 해야지. 엄마, 내가 뭘 하면 돼?"
넌 그냥 내가 하라는 것만 하고,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단다.
이제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다.
살 공간에 여유도 생겼겠지?
그럼 더 잘 크겠지?
잘 커야 하는데 ...
딸과 아들 덕분에(그러나 정확히는 나의 철저한 계산에 의해) 얼마나 보람찬 월요일을 보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아서였다, 사실.
애초에 '허락된 시간(=방학)'같은 건 없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면 선생님들의 원성을 사겠지?)
차라리 허락을 안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선생님들의 역적이 되겠지?)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나만 조급해지고 분주했다.
"그런데 얘들아, 엄마 왜 이렇게 오늘 피곤하지?"
저녁이 되자 피로감이 급습했다.
하루에 백 년을 산 것 같았다.
피곤해도 너무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았다.
내 무덤을 내가 판 것 같은 이 느낌, 정말 이러다가 나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당연하지, 엄마. 아침부터 우리한테 감자 버터구이 해 주고, 도토리묵 쑤고 자몽청이랑 복숭아 잼도 만들었잖아. 그리고 바질 분갈이했지, 산세베리아도 옮겨 심었지. 그러니 안 피곤하겠어?"
"맞다. 안 피곤하면 이상한 거지."
왠지 내가 판 함정에 내가 걸려든 느낌이랄까?
막판 방학을 이용해서 남매에게 벼락치기 방학생활을 만끽(?)하게 하려다가 그만...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 내지는 '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라고 한다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