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어리 살어리랏다 전원에 살어리랏다

오늘도 시장 잘~봤다, '친정에서'

그래도 나는 2023. 6. 25.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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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또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응, 외할머니가 너희랑 맛있게 먹으라고 이렇게 많이 주셨지."

"진짜 많다. 이거 다 사려면 대체 얼마야? 골고루 다 있네."

 

딸은 나를, 사람들 앞에 자랑스레 신문물을 선보이는 방물장수 보듯 했다.

어쨌거나 그날도 골고루 많이도 챙겨 왔다.

저 많은 채소들이 모두 친정 출신이다.

친정은 언제나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엄마, 오이랑 양파는 하나씩만 줘.  그것도 며칠은 먹을 수 있어."

"하여튼 너는 무조건 쬐끔만 갖고 갈라고 그러냐. 우리 애기들이랑 먹을라믄 많이 갖고 가야제."

"아니라니까! 저것도 많아. 우리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O서방도 출장 갔다 올 거 아니냐. 저까짓 것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냐?"

"많다니까.  하나씩만 가져갈라네. 다 먹고 또 갖다 먹으면 되지."

"식구가 넷이나 된디 그것 갖고 쓴다냐? 잔말 말고 다 갖고 가라!"

"무조건 많이 가져가서 못 먹고 버리면 아까워."

"그것도 다 못 먹냐? 하여튼 너는 그것이 뭐라고 먹냐?"

"그냥 내가 먹을 만큼만 먹는다니까!"

친정에서는 무조건 많이 가져가라고 하시고, 나는 무조건 조금만 가져가겠다고 한다.

나도 안다, 지금 내가 호강에 겨웠다는 걸.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라고 한다지 아마?

 

저렇게 많이 가져오면, 혼자 다 처리 못할 것 같으면 일찌감치 친구에게 나눔을 한다.

전에도 무조건 욕심부려서 많이 챙겨 왔다가 못 먹고 버린 적도 있었다.

물론 그때 바깥양반께서 하시는 지겨운 잔소리와 나의 살림 태도에 대한 지적의 훈화 말씀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나도 그럴 때 속이 쓰리긴 하다.

돈 주고 사서 먹어도 미처 다 못 먹고 버릴 때가 종종 있었는데 고생고생해서 농사지은 부모님의 결과물이 내 가족의 피와 살이 되지 못하고 음식 쓰레기로 전락해 버렸을 때의 그 참담함이라니.

그래서 최근에는 애초에 조금 덜 챙겨 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다 못 먹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얼른 지인들에게 보시를 하곤 한다.

 

"아이고, 양파 그거 하나 가져가서 누구 코에 붙이냐? 한 봉다리는 가져 가야제."

"이거 하나도 며칠은 먹어. 다음에 또 가지러 올게."

"너 우리 애기들 뭐 먹이고 사냐? 너 쬐끔씩 먹는 것은 그런다고 치고 애기들은 많이 먹여야제."

"아휴, 애들이 나보다 더 많이 먹고 있어. 걱정하지 마셔!"

자색 양파가 저래봬도 손바닥 위에 올려 두면 내 손바닥을 다 가릴 만큼 굉장히 크다.

달랑 하나여도 지지고 볶고 끓이고 요리조리 별 거 다 해 먹을 수 있다.

청양 고추도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엄마는 거의 10개씩이나 따 주셨다.

저걸 언제 다 먹누?

오이 고추와 오이는 힘 들이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으니까 좀 넉넉히, 가지는 튀김 해서 배 불리 먹으려고 내가 직접 세 개나 땄다.

대파는 이제 끝물이라 다듬어서 냉동실에 넣고 먹으려고 가장 욕심을 많이 낸 품목이다.

상추와 치커리는 사과 넣고 겉절이를 하면 바깥양반도 잘 잡수길래  챙겨 온 거고, 호박전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정말 팔뚝만 한 걸로 두 개, 깻잎은 우리 집에서 동그랑땡 만들  때 필수이니까, 감자는 급할 때 쓰기 만만해서 두 개, 이렇게나 푸짐하다.

 

당장 시장으로 달려간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딱 그 농산물들을, 내 마음에 쏙 드는 것들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보고 있기만 해도 뿌듯하고 배부르다.

보는 것만으로도 먹은 셈 치고 싶다.

정말 시장 한 번 자~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