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8일 시가 근처 지역 둘째 시누이가 먼저 치른 결혼식장에서 둘 다 모두 초혼인 결혼식을 치렀다.
부부 공무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에는.
남편이 공무원 카페에서 쪽지를 줄기차게 보내오며 만나자고 했을 때 나는 두 가지만 물었다.
"마약을 하는가?"
"아니오."
"그럼 도박은 하는가?"
"아니오."
일단 저 두 가지에서 통과해 합격한 후 나에겐 처음에 공무원 카페에서 알게 된 쪽지남일 뿐이었던 그가 자꾸 나를 만나자며 졸라서 만났고,
처음 만났던 날에
"한 번 더 만나고 싶은데요."
자기 누나 대하듯(나보단 서류상 3살 아래=따지고 보면 내 남동생과 동갑) 조심스레 얘기했었다.
내외하느라 텅 빈 좌석버스 의자에 통로를 사이에 두고 각각 떨어져서 앉아 있었을 때다.
그때만 해도 노약자 공경할 줄은 알더니만.
"그럽시다."
마약도 않고 도박도 안 한다는데, 세상에 특별히 잘난 사람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겠거니, 나 역시 평범 그 자체였으므로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다'라는 거지 당장 결혼해서 혼인신고하고 살자는 것도 아닌데 뭐.
나이 가지고 서로 탐탁지 않아 했던 양쪽 집안에서는 상견례를 기점으로 급히 결혼 날짜를 잡고 서로 의기투합해서 이 두 어린양을 한 데 묶어 잡아 두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단합이 잘될 수가 없다.
이렇게 사이좋은 사돈 지간은 세상에 둘도 없으리라
. 정작 결혼해서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사이가 좋아야 마땅하거늘 양가 어른들 궁합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내 그 당시 근무하던 사무실에 나를 포함해 4명이 결혼식을 올렸는데 남들은 어떻게 하나 봤더니, 청첩장이 나오면 그 따끈한 것을 품 안에 고이 품어 와 기관장께 먼저 드린다. 결재판은 없지만 공손하게 도장만 안 찍는 기안문을 올리듯.
그리고 각 계의 계장님들께도 드린다.
그때의 표정들은 다들 행복하다. 행복해 보였다. 내 눈에는.
아직 안 닥쳤을 때니까, 닥치기 전이니까.
도대체 뭐가 닥친다는 건지는 결혼하고 살아 본 사람들은 다 알리라.
청첩장 받는 것도 한두 번이지.
다들 좀 시들해져 버렸을 거야 금방, 아마도.
차례대로 줄 서서 결재받듯이 저 사람이 청첩장 드리면 다음 주에 이 사람이 드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또 드리고 또 드리고.
가치가 하락하는 건 화폐만이 아니다.
화폐의 가치가 마구마구 하락하듯 그 당시 4장의 연이은 청첩장은 그러고도 남았으리라.
그래도 신통방통하다.
결혼 날짜가 서로 겹치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서로 사전에 계획한 것도 아닌데 기가 막히게 용케도 서로의 결혼 날짜를 피해서 안 겹치게 잘 잡았다. 그것도 능력이다.
서로가 서로의 결혼식에는 참석 못 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연달아 결혼식이 있었으므로 웨딩촬영 날짜 때문에 못 간다, 신혼여행을 간다, 신혼여행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등등의 이유로 그 네 사람은 각자 자기 결혼식에만 참석하는 걸로.
내가 청첩장을 서무님께 건네주자 잽싸게 전 직원에게 메일을 띄워 주신다.
다른 사람들이 어찌하는고? 봤더니 결혼 날짜를 열흘쯤을 남겨놓고 서무님께 전달을 해주면 적당한 시기에, 최대한 결혼식 일주일 전에는 서무님이 전 직원에게 청첩장의 내용을 정성껏 메일로 옮겨서 사방팔방 뿌려주신다.
조용히 조신하게 결혼식을 치르고 싶었으나 공무원 조직사회에서 그런 거 가당치 않다.
거긴 그런 조직 아니다. 쉽게 보지 말라.
하루에도 수 십 건의 공문서 공람이 이뤄지듯 내가 결혼한단 사실도 메일을 타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알게 된다. 영국의 행운의 편지 저리 가라다.
이젠 수많은 전화와 메일로 축하 전화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때 그 남자 친구 맞아? 다른 사람이야? 진짜 그 사람 맞아?"
아니 그때 그 남자 친구이든 다른 사람이든,그게 그리 중요한가요?
그 말로 시작해서 어떻게 이렇게 금방 결혼할 거면서 나한테 말 한마디 없었냐, 왜 남자 친구 있다는 거 숨겨왔냐 어쨌냐 저쨌냐, 네가 그럴 줄 몰랐다......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는걸.
숨기기는 누가 뭘 숨겼다고 그러셔요?
뜬금없이 내가 '나 남자 친구 있다.'이러고 떠벌리고 다닐 순 없잖아요.
"뭐야? 연하였어? 능력자네."
맞아요, 능력자는 능력자인데 '무능력자'에요.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말하는 거 아닙니다.
연하면 어떻고 연상이면 어때요.
실체가 중요하지요.
무능력자이니까 연하랑 결혼하지요.
동네 사람들아, 착각하지 마소.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계시는 것 같소.
어휴,
이렇게까지 일이 크게 벌어질 줄 모르고 ' 나 때문에 2등이 돼서그지역 지방직에 떨어졌다'라고 수 쓰는 그에게 이 무능력자가 걸려들었다는 거 아니겠수.
능력자였다면, 진정한 능력자는 저런 수법에 쉽사리 걸려들지도 않았을 거요.
나도 처음부터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났던 것도 아니었거니와, 그보다는 오히려 나보다 나이가 적었으니까 이런 불상사까지 이르는 일은 전혀 생각조차도 없었고.
남동생과 동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으니까.
도대체 남자는 언제 철이 드는가.
결혼을 결심하고 나는 추가로 남자 친구에게 더 질문을 했다.
이젠 마약이고 도박이고 나도 모르겠다.
마약 않고 도박 안 해도 제정신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고, 사람이긴 하지만 형편없는 사람도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도 세상엔 많고 많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된 후였으니까.
그리고또살아보니 마약 안 하고 도박 안 하는 것만이 다는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더한 복병이 아주 아주 많았는데 뭘 그렇게 도박 타령, 마약 타령을 했더란 말인가 나는.
이 어리석은 사람아.
물론 남편도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충분히 짐작한다.
공무원 세계에서 내가 배운 것들, 수많은 민원인이 나에게 단련시킨 사실.
어디 딴 집 살림이나 안 하고 있음 됐지.
설사하더라도 서류상 정리됐으면 그만이지.
어디 낳아 둔 자식만 없으면 됐지.
지금내게 거짓이 없으면 되는 거지.
"결혼한 적이 있는가? "
"아니요"
"혹시친자식이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오."
아니라고 하면서도 펄쩍펄쩍 뛰며 흥분을 한다.
"뭐 그런 걸 다 물어?"
이거 이거 흥분하는 거 보니까 더 수상한 걸?
당연히 확인을 하고 넘어가야지 이거 왜 이러셔.
그 혹독한 결혼 생활을 단순히 감정만 가지고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
따질 건 따지고 확인할 건 확실히 확인하고 가야지, 이 사람이 말이야, 너무 안일하네?
어디 누구 앞에서 무사안일주의야 지금?
"왜 못 물어볼 소리야? 당연히 물어봐야지. 참고로 난 결혼한 적도 없고 결혼식 한 적도 없고, 아이도 낳아 본 적은 없어. 원하면 혼인관계증명서랑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 줄 수도 있어."
"아니야. 그런 거 안 줘도 돼."
"그래? 그런데 난 그거 필요한데. 이왕 하는 거 확실히 하자고. 내가 몰래 알아볼 수도 있지만 그건 공무원 신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고. 괜히 뒤졌다가 쇠고랑 차고 싶지도 않아."
"진짜야! 떼고 말 것도 없다니까. 왜 날 못 믿어?"
"못 믿는 게 아니지. 지금 이 상황에선 믿고 못 믿고 그런 거랑은 상관없어. 다만 확실히 하자는 거지.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뭐가 있음 솔직히 말해. 이미 다 지나간 일이잖아. 지금에 충실하면 되는 거야. 어서 말해봐. 난 마음의 준비가 다 됐다고."
"진짜 아니라는데 왜 그래?"
"그래? 문서로 확인을 해야지. 가족관계증명서 떼어보면 다 나와 있거든. 그거 한 장만 필요해. 나중에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맙시다."
남자 친구 앞에서 난데없이 한껏 민원실 제증명 발급 담당하는 공무원질에 나도 열을 올린다. 그 말로만 듣던 공무원 갑질, 남자 친구에게 원 없이 본다.
결혼하기 전에 저런 사항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남자 친구는 아닌가 보다.
그런 증명서 따윈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건 '그건니 생각이고'
증명서라도 확실히 확인하고 결혼하고 싶은 건 '그건 내 생각이고'
생각은 누구나 다르게 할 수 있는 법이니까.
세상엔 어이없게도 결혼한 적이 있는 남자와 그 사실은 모르고 결혼한 여자도 있고, 자식까지 있는 것도 모르고 결혼까지 하는 남자도 있고, 나중에서야 속았다고 분개하는 사람도 있더라. 나중에 분개하고 후회하고 속았다고 난리 치기 전에 결혼하기 전에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는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도 정당한 방법으로 충분히 상대방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보는데. 결혼할 사이에 뭘 더 감추고 기분 나빠하고 그럴 종류의 것이라고 물어보지도 못한단 말인가. 심지어 이미 결혼하고 다른 사람과 혼인신고까지 했으면서도 이중으로 또 결혼식을 올리고 또 다른 사람이랑 사실혼 관계를 유지라며 사는 사람도 있더라.
정말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민원실에서 험한 간접경험들을 많이 한 후유증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상대방에게 솔직히 궁금한 것을 묻고 서류상 확인하고 그러는 게 서로 기분 상할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나는.
"처음부터 그냥 솔직히 다 말하자고, 혼인신고 한 순간 복잡해진다. 일 커지기 전에 알고나 가자고."
무슨 일이 커진다는 건지 아무튼 나중에 복잡해지는 일은 귀찮으니까(이미 나는 마음속으로 남자 친구가 한 번 결혼한 적이 있으며 아이도 있는 사람으로 간부해 버리고 작정을 하고 추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자 친구 미안~민원실에서 하도 험한 꼴을 많이 보아서,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까)
자꾸 내 말에 기분 나빠하고 자기를 못 믿냐는 식으로 말하는 남자 친구가 오히려 나는 더 이상했다. 이해가 안 됐다.
그저 가족관계증명서 한 장만 떼어서 보여주면 끝날 일인데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그렇다고 해서 만에 하나 남자 친구가 결혼한 적이 있다손 치더라도 아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빌미로 바로 파혼(내게 거짓말을 했다면그거 좋은방법일 수도 있겠지만)을 하거나 우리 둘 사이를 없었던 관계로 바로 정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참고는 하겠지.
그리고 또 신중히 생각해 보겠지.
난 지난 과거는 굳이 묻고 따지고 서로 피곤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내가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면 알고 넘어가고 싶다는 것뿐이다.
"어허. 이거 서로 피곤하게 굴지 맙시다."
결국 나는 배우자란과 자녀란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남자 친구의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하고야 말았다.
아니 지은 죄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펄쩍 뛴 거람?
세상에 결혼처럼 중요한 일을 단순히 좋은 감정만 가지고(그렇다고 항상 좋지만도 않았던) 결정할 일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열을 올릴 일이 아니다.
결혼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힘껏,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그것도 아주 많이 신중 또 신중하게.
살다 보면 신중히 결정해야 할 순간이 많다.
그 결정에 책임을 지고 감당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아닌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다.
빗발치는 민원인의 항의 전화 저리 가라 하게 전화가 걸려 온다.
미안하지만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전화와 함께 축의금도 밀려든다.
다 빚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하루는 체송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우리 사무실로 도착한 각종 서류들 속에 수신인을 나로 한 두툼한 축의금 봉투들.
정작 나에게 전달돼야 할 서류는 메모지 한 장 없었고, 업무상 전화 통화 한 번이라도 한 직원분들이 마음을 한껏 모아 보내 주셨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방 속에 서류는 없고 온통 손바닥만 한 축의금 봉투들만 수두룩,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그것도 낭만적이고 추억이네.
물론 어디까지나 나에게만은.
부부 공무원이라곤 하지만 이제 발령받은 지 1년 조금 넘었고 9급이라 정말 빠듯한 살림살이가 될 것이 빤했으므로 결국엔 저게 다 빚이려니, 살면서 다 갚아나가야 할 짐으로 여겨지면서도 품앗이라고는 해도 그 마음과 정성이 고마웠다.
"부부 공무원은 움직이는 중소기업이야. 앞으로 걱정 없겠네. 지금은 둘 다 월급 얼마 안 되지만 10년, 20년 지나면 웬만한 중소기업 저리 가라 한다고. 잘 살아 봐."
저런 말을 많이 들었다.
부부 공무원, 중소기업이라, 암튼 뭐 어쨌거나 괜찮다는 거지? 나쁘진 않다는 거겠지?
경험해 볼 새도 없이 그 중소기업 파산했다, 움직이려다 말았다, 결국.
지금 이 순간 내가 의원면직을 한 뒤.
가만 보면 주위에 부부 공무원이 정말 많다. 같은 지자체 소속 부부 공무원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부부 공무원도 있고, 직렬이 다른 배우자를 둔 공무원도 있고, 공무원 넘쳐나는 사회다. 정말이지 공무원 권하는 사회. 부부 공무원도 마구 권하는 사회.
공무원이 이렇게 흔할 수가.
그런데 왜 그렇게 공무원 합격하기는 힘든 거냐고요.
사방팔방 아파트는 높이높이 지어져만 가는데 우리 집 앞에 짓고 뒤에 짓고 옆에 짓고 이 동네도 짓고 저 동네도 짓고 그렇게 지어대도 내 몸 누일 집방 한 칸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저렇게나 공무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은데 왜 너도 나도 그렇게 합격하기가 힘이 드느냐는 말이다. 공무원 인력도 턱없이 모자란다면서.
그때는 그 말이 희망이었다.
부부 공무원 하면 처음에는 좀 힘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살기 좋아진다고, 도대체 살기 좋아진다는 말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음, 나쁜 것은 아닌가 보군. 살아보면 알겠지.
그때 그분이 하신 말씀이 바로 저 의미인 건가. 그래도 부부 공무원 하면 남부럽게까지는 아니어도 남들만큼은 산다고.
도대체 어떻길래 움직이는 중소기업이란 말까지 나오는 거라지?
기업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나 나나 사고나 치지 말고 안전하게 일하다가 정년이나 잘 채우고 퇴직하자."
결혼을 하고 남편과 나는 서로 그렇게 다짐했다.
'공무원 정년' 그거 함부로말할 거 아니었다. 쉽게 입에 올릴 일 아니다.
공무원 정년까지 채우고 퇴직하는 거(비단 공직사회가 아니더라도 어떤 직장에서든지) 그거 정말 대단하고 위대하고 우러를 만한 일이다.
몇 달 차이이긴 하지만 나는 서른 살부터 시작했고 남자 친구는 나보다 더 어리니까 어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