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면직-일반행정 지방직 아내의 공무원 그만두기

나의 의원면직 절차(2)-헤어지기로 해요, 우리

그래도 나는 2023. 6. 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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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과 인사담당자에게 퇴직 의사 전달하기, 내 생애 가장 길었던 하루 >

금요일 밤에 내가 의원면직을 결정하고, 주말에 남편과 합의 보고, 그다음 주 월요일 아침 바로 사무실에 이 사실을 알렸다.

출근한 후 할까 퇴근할 때 할까 하다가 퇴근 때까지 도저히 못 기다릴 것 같아 출근하면 말씀드리기로 결정했다.

 

안 좋은 일일수록 한시라도 빨리 알려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물론 월요일  아침부터 모두들 혼란스러운 기분에 유쾌한 하루가 될 수는 없을 것이 뻔했지만.

그 점에 대해선 나도 진심으로 유감이지만.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벌써 팀장님이 와 계신다.

거의 매일 일찍 출근하시는 편이다.

그날은 나도 좀 이르게 출근을 하고 마음 단단히 먹고 팀장님께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산속 절간처럼 조용하기만 한 사무실이다.

다행히 다른 직원들은 아무도 없다.

단 둘뿐이다.

세 번째 출근자가 도착하기 전에 일을 해치워야 한다.

 

"팀장님, 저 사정이 있어서 일 그만두겠습니다."

휘둥그레진 팀장님의 두 눈.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개인 사정으로 퇴직하려고요."

"아니, 갑자기 왜 그래? 복직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지, 다들 '복직한 지 얼마나 됐다고?'라고 이 소리부터 시작하더라고요.

 

충분히 들을 법한 얘기, 예상 가능한 반응이다.

복직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의원면직을 하겠다고 결정을 했으니, 설사 복직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다 하더라도 도저히 상황이  안 좋다면 일을 그만두는 수밖에 달리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느닷없이 무슨 일이야? 설마 공무원을 아예 그만둔단 말이야? 휴직이 아니고?"

"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너무 황당하다."

"죄송합니다. 복직하자마자 이런 말씀드려서. 하지만 지금 제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 일단 알았어. 과장님 오시면 다시 얘기하자."

 

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인데 당연히 팀에 피해를 주리라는 것은 잘 안다.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처럼도 보일 것이다.

내가 다른 직원들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으로 생각될 것이다, 처음에는.

이제 새로 업무분장 다 하고 미칠 듯이 일에만 매달려도 바쁜 시기에 생각지도 못한 '퇴직'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하지만 오히려 차라리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결과가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되면 최대한 빨리 이 사실을 알리고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내 판단이 틀린 것일 수도 있고 이에 반대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내린 결론은 그랬다.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이건 호랑이 장가가는 날도 아닌데 팀장님 입장에서도 정말 마른하늘 아래서 우르르 쾅쾅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를 온몸으로  들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정년퇴직이 몇 년 안 남아서 명예퇴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3년간 육아 휴직하고 엊그제 복직해 놓고는 벌써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으니 어이없고 경황도 없었으리라.

정말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과장님께 말씀드려야 하는데 넘어가야만 하는 그 큰 고개가 배는 더 높아 보인다.

월요일이라 간부 회의 참석 차 군청에 가시고 사무실로 오시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게 사람 좋다고 직원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해 마지않았던 분인데, 내 공무원 인생에서 언제 또 저런 분 만나 볼 수 있나 싶게 기대됐던 분이기도 한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남에게 싫은 소리 들을 수도 있는 건 당연하다.

 

과장님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첫아기 출산에 임박해 진통을 겪는 시간만큼이나 초조하기도 하고 걱정됐다.

그날 난 세 번째 진통을 혹독하게 겪은 셈이다.

 

9시가 좀 넘어 과장님이 오셨다.

팀장님이 간단히 내 망언을 과장님께 전달하고 나를 부르셨다.

곧바로 진심인 내 의사를 전달했다.

 

"과장님. 제 사정상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오자마자 분란만 일으키는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과장님 또한 어리둥절해하시고 황당해하시기는 마찬가지다.

저런 말을 심상하게 들을 사람은 이 세상에 없겠지.

 

"지금 나가면 어디 딴 데서 무슨 일을 다시 하기도 그럴 텐데. 어렵게 들어와서 왜 갑자기 그만두려는 건가?"

 

내가 다른 일을 하려고 그만두려고 하는지 오해라도 하신 걸까. 당시 오라는 데는 한 군데도 없었는데 말이다.

양반이시다, 역시.

붉으락푸르락 한 얼굴로 다짜고짜 화를 내며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애들도 아니고 직장 생활 하루 이틀 해 본 사람도 아니면서 무작정 그만두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버리면 어쩌느냐고, 더군다나 이제 출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 하며 사무실 떠나가게 호통을 치셔도 다 감당해 내리라 마음먹고 갔던 차라, 계속 용기 내어 말씀드릴 수 있었다.

 

아, 대화란 게 되는 분이다.

 

"네, 지금 제 상황상 계속 출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하루 이틀 생각한 것도 아니고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도 절대 아닙니다. 신중히 여러 번 생각하고 결정했고 남편과도 이야기 끝낸 상황입니다."

 

"그래? 오랜만에 출근해서 힘들 수도 있지. 그래도 하다 보면 차차 적응해 나가고 괜찮아질 텐데."

 

"일이 힘들다거나 그런 이유는 절대 아닙니다. 그런 이유라면 저도 시간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괜찮아지겠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고, 별개라서요.

 

사람들은 오해할지도 모른다.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일지도 모른다.

오랜 육아휴직 기간 끝내고 적응을 못해서 그러는 걸로 말이다.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걸로 오해하기 딱 제격이 시점이다.

 

그러나, 세상에 어디 안 힘든 일이 있다던가.

보릿고개보다도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은 공시생 시절도 다 지나온 사람인데 나도.

일이 힘들어서 그러느냐고요?

남들도 다 하는 일 라고 못할 것도 없지 않겠어요.

 

닥치면 누구든 다 헤쳐 나가기 마련이다.

정말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라면 밤새워서라도 할 마음이 충분히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의 시간을 사서라도 일할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