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 남편 교육행정직 합격 비법

허락 없이, 아내가 대신 쓰는 남편의 교행 합격 수기

그래도 나는 2023. 5. 2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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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2011년 늦가을에 교육행정직 9급에 합격을 했다.

면접까지 무사히 치르고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나자 남편은 세상에 그렇게 기고만장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그 참상을 차마 눈뜨고는 못 볼 지경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사위가 국가직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시생 역할을 하고 시험까지 합격한 줄로 단단히 오해를 하고, 엄마가 특히

"우리 사위는 일하면서 다른 공무원 시험에도 붙었네."

이러시는데 나는 최후의 날이 올 때까지는 침묵해야 했다.

 

진실은 밝혀져야만 한다.

하지만 엄마의 환상을 좀 더 지켜주기로 한다.

 

시가에 가서 남편의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는 우리 집보다 더 많이 기뻐하셨다.

처음에 남편이 의원면직 한 걸 휴직을 했다고 거짓말로 둘러댔음에도 시어머니는

"내가 그 소릴 듣고 그날부터 밤에 잠을 못 잤다."

라며 뒤늦게 고백하시는 것이었다.

세상에, 아들이 휴직한 것에도 잠 못 이룰 정도면 아예 그만두었다고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불효자는 거짓말합니다.

 

남편이 국가직을 그만둔 사실은 몇 년이 훨씬 더 지난 후에야 내가 시가에 참다 참다 다 얘기해 버렸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거짓말을 진실로 되돌려 놓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그럼 그동안 임자가 너 먹여 살렸냐?"

라고 다소 흥분하시며 언성을 높이시기도 했다.

 

옛날 분(남편은 늘 그렇게 말해왔다)이시라 남자가 직장 생활 안 하고 부인이 경제활동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해 다소 고지식한 면을 보이시기도 했다.

누가 벌면 어떠랴, 중간에 사고 치는 사람만 없으면 되지.

예를 들어, 공시생 신분으로 인강 대신 주식에 빠져 산다거나 하는 그런 사소한 일.

 

내가 먹여 살렸다고는 말하기 좀 그렇다.

난 나대로 먹고살았고, 남편은 남편대로 먹고살았지 누가 누굴 먹여 살린단 말인가.

 

한참이 지난 후에 남편이 국가직을 휴직한 게 아니라 결혼하고 일주일 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시가에선 나를 고맙게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는 느낌을 받았다.

 

잠깐이다 그것도.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우리 집에선 아직도 대단한 사위이다.

남들은 하나도 붙기 어렵다는 그 공무원 시험을 두 개나 붙은.

딸 혼자서 9개월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하고 살았는지는 모르고.

게다가 그 와중에 임신까지 했는데(어디까지나 내가 계획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나도 말로야 걱정한다고 달라질 게 있겠나,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크게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남도 아니고 남편인데 아예 무관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 이것저것 티 안 나게 둔한 남편만 눈치 못 챌 만큼  신경 다 쓰고 조정하고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해 본 사람은 다 알겠지.

 

종종 남편과 그런 얘기를 한다.

"그때 자기 시험 안 붙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글쎄, 생각하기도 싫어."

"난 더 싫다."

하지만 난 그때가 다시 새 출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지도 모르는데......

 

사람들도 나중에는 남편이 국가직 그만두고 교행 시험을 치른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그런 얘기를 숨기고 여태 말도 안 했어?"

이렇게 사람들은 내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숨긴 사람처럼 말했다.

 

남편이 일 그만뒀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잖아요.

느닷없이 내 입으로 남편 일 그만뒀다고 광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제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일을 그만둬? 임신까지 해가지고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혼자 벌어서는 살기 힘들어."

외벌이 신혼부부를 철천지 원수 보듯 한다.

 

어쩌다가 우리 집 비밀을 알게 된 직원은 하나같이 날 보면 걱정스러워했다.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아기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두 사람 살기엔 내 월급으로도 아직은 감당할 수준이다.

내 집은 아니지만 임대 아파트 보금자리도 있고 차도 한 대 있고 남편과 나는 당시는 크게 아픈데도 없었고, 둘 다 사치를 일삼는 사람들도 아니니까 그럭저럭 살아지리라.

사치를 일삼지는 않지만 그가 쇼핑을 일삼는다는 걸 살면서 깨닫긴 했지만 말이다.

형편에 맞게 살면 다 살게 되어 있다.

 

9급 공무원 내 월급은 매달 뻔하지만 그보다 더 적은 월급으로 한 달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임진왜란 때도 살았고, 6.25 때도 다 살았고, 보릿고개도 다 넘겨온 민족이다.

그 자손인 나는 더 잘 살 수 있다.

내가 밥을 굶기를 해? 헐벗고 살기를 해? 결정적으로 직장이 없어?

이 정도면 풍족하다...... 고 생각하고 마음 단단히 먹는 편이 태교에도 좋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면 남편에게 절대 의원면직만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내가 처음에 남편이 교행 공부하겠다고 '자판기 코피 한 잔' 타령할 때부터 애초에 강력하게 나갔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일단은 현실을 직시해야 했고, 남편이 수입이 있는 아내를 믿고 공부하는 일에 자칫 해이해질까 봐 빈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솔직히 그 한 잔이 얼마나 한다고 그리 청승맞게 굴 이유가 있겠는가.

좀 더 솔직히는 남편이 공부는 안 하고 자꾸 엉뚱한 행동만 하길래 얄미워서 그랬던 것도 있다.

서럽고 서러워 울분에 겨워 독한 마음으로 공부에만 집중해서 나 보란 듯이 합격해 버리라고.

 

원래 사람이 가슴에 서러움이 쌓이면 오히려 그게 강한 동기 부여가 되고 힘이 돼서 더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는 거니까.

다행히도 그 작전은 남편에게 아주 잘 통했다.

공시생이 한을 품으면 9개월 만에도 교행 합격하는 수가 있다.

 

"나 그때 진짜 자기한테 서운했어. 어쩌면 그렇게 나한테 박하게 대하는지.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몇 년 전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기필코 진상을 알아내야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말했다.

거 참, 이미 지난 일 가지고 왜 자꾸 그러시나.

합격했으면 된 거 아니유?

 

"그때 그렇게 기분이 나빴어?"

기분 나쁠 시간이 어디 있어 공시생이?

"당연하지. 공부하는 사람한테 어느 정도는 지원을 해 줘야지. 나처럼 서럽게 공부한 사람도 없을 거야. 자판기 코피 한 잔도 마음대로 못 사 먹고."

"지원도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한테만 해 주는 거야. 내가 볼 때 그땐 공부를 제대로 안 하고 있었거든. 진정한 공시생의 자세가 아니었어. 그래서 그랬어."

"그래도 그렇지. 내가 진짜 오기가 다 생겨서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하고 그래서 그 후엔 진짜 열심히 했다니까."

"비로 그거야. 내가 노린 게. 자긴 자극이 좀 필요했거든."

"뭐라고? 그럼 일부러 그랬단 말이야?"

"응. 몰랐어? 사람이 독해야 공시생도 하는 거야. 아무나 공시생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붙었잖아?"

"그야 그렇지만. 아무튼 진짜 나 평생 안 잊을 거야."

 

잊든지 간직하든지 본인 알아서 하시고요.

그까짓 거 무슨 첫사랑의 기억이라도 된다고 평생 안 잊겠다고 그러셔요.

나야말로 임신 중에 공시생이랍시고 거들먹거리며 내게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거 절대 잊지 않겠어.

그래도 내 작전 덕에 한 번에 이렇게 금방 시험 붙어 놓고는 왜 이제 와서 배부른 소린지 모르겠다.

호강에 겨웠구나 이제?

공무원 합격생, 궁상맞던 공시생 시절 생각 못 한다더니.

그래서 그런 말도 생긴 거로구나.

 

"그리고 합격이 말이야. 내가 시험이나 끝나면 갖자는데 왜 또 중간에 그런 거야?"

"아 그거 말이지, 그때 자기가 또 정신 못 차리고 주식에 빠져 있었잖아? 가망이 없어 보이더라고 솔직히. 그래서 그렇게 나가다간 애 하나도 못 낳고 갱년기 와서 공시생 남편 뒷바라지만 하게 될 것 같아서."

"그래도! 만약에 내가 불합격하기라도 했어 봐. 당장 세 식구가 어떻게 살려고 그랬어?"

"아니지. 왜 세 식구야? 두 식구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잘 생각해 봐. 누구만 빠지면 되는지."

난 그 당시 주식에 정신 팔려 시험공부는 뒷전인 남편이 기가 막혔고, 가족 구성원에서 남편을 깔끔하게 제외했다, 마음속으로 실컷.

오죽했으면.

정말 오죽했으면.

 

다행히 결혼식에서 '평생토록 기쁘나 슬프나 남편과 함께 하겠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결혼한 성인이라면 적어도 책임감이란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자신 있다고 큰소리쳤으니까 행동도 그에 맞게 뒤따라줘야 하는데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니었다.

애초의 가족계획을 수정해서 교행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내가 임신을 한 것은 앞서 밝힌 것처럼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

 

사람이면 정신 차리겠지.

아기까지 태어난다는데 언제까지 주식에만 빠져서 허우적거릴까.

아마 그때 임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남편은 계속 정신 못 차리고  엉뚱한 데만 정신 팔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다행히 하느님이 보우하사 내 작전이 잘 맞아떨어졌다.

 

내가 임신했다고 하자, 게다가 '태명'도 의미심장하게 '합격이'로 선언하자 남편이 부담감을 느끼는 게 눈에 보였다.

그래.

이 남자는 이런 방법으로 길들여야겠군.

 

처음에 합격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듯이, 합격하고 나니 세상에서 제일 잘난 남자는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바로 내 남편이었다.

그동안 나한테 한 게 있는데 나 같으면 합격의 기쁨을 조신하게 집안 청소나 설거지 같은 살림하는 일로 승화시켰을 것 같은데 그에겐 어림없다.

 

"거 봐. 내가 자신이 있다고 했지?"

이런다.

"아무래도 정말 잘 찍은 거 같은데?"

진심으로 한 말이다.

"아니야. 그래도 공부하던 게 좀 남아있어서 더 수월했다니까."

그렇게라도 말해서 본인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얼마든지.

"그러니까 문제가 쉬웠구먼?"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음이 분명해.

"왜 자기는 인정을 안 해?"

비단 당신의 자신감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존재 자체를 아예 인정 안 하고 싶을 때도 있다.

"문제도 쉽고, 잘 찍고, 결정적으로 내가 그날 낮잠도 안 자서 그래. 그래서 붙은 거야. 게다가 내가 합격이까지 임신해서. 태명을 합격이라고 지은 것에서부터 합격의 조짐이 보였던 거지."

 

자기 말만 해대는 부부.

애당초 부부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자기 말만 하기로 하객들 앞에서 맹세하고 결혼 한 사람들이다.

 

남편은 그 뒤 얼마 후에 과거 일했던 우체국으로 경력증명서를 떼러 갔다.

"내가 가니까 다들 나를 우러러보는 거 있지?"

"혼자 착각했겠지. 뭐 우러러볼 거 있다고 우러러보겠어?"

"아니. 내가 나간 지 1년도 안 돼서 다른 공무원 시험 붙어서 왔으니까 그렇지. 거기도 나처럼 신규자 때 다른 직렬 시험 본다고 나간 사람은 많았어도 붙은 사람은 별로 없었거든."

 

아니, 자기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나간 사람들이 붙었다고 다 알려줬을걸.

사실은 많이들 붙었을 거야.

 

"세상엔 공무원 시험 두 개 세 개 붙은 사람도 많아. 혼자만 대단한 거 붙은 거 아니야. 어째 기고만장해지려고 그런다? 사람이 겸손해야지 말이야. 최근에 추가된 공무원의 의무 못 들어 봤어? '겸손의 의무'라고. 그리고 곧 '잘난 척 금지의 의무'도 추가될 거래. 시보 때 저거 위반하면 신분보장 못해줘. 알지? 시보 떼기 전까지는 조신하게 다녀야 하는 거?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일 걸? 그동안 공부만 하고 살아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지 지금?"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남편이라지만, 쉽게 속아 넘어갈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의 기고만장함을 저지해야 했다.

 

"솔직히 하나 붙기도 어려운 건 사실이잖아."

"한 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들이 수 천명이야."

"하여튼 자긴 진짜 너무해. 다들 나보고 대단하다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같이 안 살아봐서 모르니까, 그 실체를."

"아직도 그 표정들이 잊히지 않아. 날 정말 엄청 대단하단  얼굴로 쳐다봤다니까?"

 

공시생이 공부는 않고 주식에 한동안 빠져서 부인 속 뒤집어 놓은 거 소문났나 보지. 공부는 않고 주식이나 하고 있었다고 대단하다고 쳐다봤나 보지.

나도 그 시절 당신이 했던 엉뚱한 짓들 잊히질 않아.

나야말로 죽을 때까지, 아니 가보로 자자손손 물려줄 테다.

 

"그동안 얼굴 안 봐서 좋았는데 괜히 갑자기 나타나서 그 사람들 기분 상한 거 아냐?"

"자긴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하더라."

 

내가 괜히 그래?

남편이 수험 생활하는 동안 나에게 베풀었던 은혜를 내 어찌 잊으랴.

은혜는 갚아야지.

아무렴, 갚아야 하고 말고.

아무리 부부지간이라 하더라도 계산은 정확히 해야겠지?

그동안 나에게 어떻게 했더라.

최소한 받은 만큼 돌려주리라.

이날만을 기다렸다.

요즘 금리도 자꾸 오르는데 이자 두둑이 쳐서 몇 곱절로  더 갚아주리라, 그 은혜.

 

은혜를 갚지 않는다면 그건 엄연한 이혼 사유에 해당한다.

앞으로 기대해도 좋아.

실망시키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상상의 경계를 허물어트릴 테다.

 

아니 저렇게도 요렇게도 다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적당히 해라잉.

혼자 잘나서 시험 붙은 줄 알아요 정말.

 

시험 운이란 게 있다고 얘기를 들었다.

어느 정도 공감한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500명, 1,000명 넘는 인원을 뽑는 공무원 시험에도 매번 떨어졌지만 달랑 1명 뽑는 지방직 시험에는 붙었으니까.

때가 되면, 운이 맞으면 그때가 합격할 운명이라는 그 말에 희망을 걸었던 과거가 내게도 있었다.

물론 그동안 꾸준히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가정 하에서이다.

 

남편은 정말 그러고 보면 운이 좋았단 생각도 든다.

본인은 끝까지 실력으로 붙은 거라고 우기지만 완전히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적절히 채찍질(?)을 해 준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당근 따위는 없는 오직 채찍질만.

공시생에게 당근은 사치일 뿐이다.

당근은 말에게 양보해야 다.

난 맞춤형 교육이 뭔지 아는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만나고 나랑 결혼한 게 가장 큰 행운......이라고 나만 생각한다.

전생에 전 인류를 백 번쯤은 구했을 거야 분명히.

반면, 난 우주 전체를 팔아먹어 버렸을 테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어쨌거나 이렇게 요란하게 수험생활을 마친 남편이 그 해 12월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시겠단다.

"나 곧 임용되면 당분간 어디 여행 가기도 힘들 것 같아서 말이야. 일주일 정도 제주도 다녀올게."

 

'증거자료 6'으로 채택한다.

 

내가 항상 말했잖아.

가기만 해, 오지 않아도 돼,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여전히 미친듯한 입덧과 점점 불러오는 배로 허덕이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고, 남편이고 뭐고 하루하루가 귀찮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 차라리 안 보이면 더 나을지도 몰라.

나 거슬리게 안 하려고 나 생각해서 그러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자.

나를 위해서 잠시 떠나 있는 거야.

나는 태교 중이다.

좋은 생각만 하자.

 

그래도 그렇지 밥 냄새도 못 맡는 임신부를 두고 자그마치 일주일씩이나? 난 매일 출근해야 하는데?

내가 그동안 미친듯한 입덧에도 입 틀어막으며 반찬 투정해 대는 공시생 남편의 도시락을 얼마나 수도 없이 싸 줬었는데.

처음에 진실을 모르고 세상 최고의 남편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사무실 언니들도 이번 사태엔 국물도 없었다.

나보다 더 흥분을 하며 어떻게 입덧의 지옥에 빠진 임신한 아내 혼자 두고 여행 따위를 가냐며.

 

바쁜 업무에 열중하느라 볼 시간도 없는데 남편이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하며 사진을 보내온다.

누군 뭐 여행 갈 줄 몰라서 안 가는 줄 아시나,

제주도 좋은 거 나라고 모르겠어?

제주도가 얼마나 멋진지 몰라서 지금 이렇게 민원실에서 등, 초본만 발급하고 있는 줄 아냐고?

 

"나 바쁘니까 그만 보내. 일하는 데 방해돼."

"너무 멋있어서 자기도 보라고 보낸 거지."

"난 보내달라고 사정한 적 없어."

"그래도 봐봐. 진짜 멋있지? 우리 다음에 같이 오자."

"우리라고 하지 마. 갈지 안 갈지는 내가 결정해. 같이 간다고도 안 했어. 백 날, 천 날 신중히 생각해 볼 거야."

"자기야, 왜 또 그래? 그러지 말고 다음에 같이 오자!"

 

국어 시험을 어떻게 봤나 모르겠다.

사람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듣는다.

필기는 그렇다 치자, 면접은 대체 어떻게 본 거야?

 

나는 스팸문자라고 판단되면 과감히 삭제하고 수신 거부를 하는 편이다.

인정사정없다.

 

나는 태교에만 집중하기에도 바쁜 사람이다.

 

업무에 방해될 정도로, 게다가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자꾸 전화하고 문자 보내는 행위는 스팸에 버금간다는 판단하에,

 

급기야 남편의 번호를 수신 차단했다.
(2023. 8.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