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 먹으란 법 없잖아
"날마다 낳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냐?"
그날도 나는 남의 알들을 얌체같이 꺼내오며 말했다.
"쉬지도 못하고 고생한다."
그건 정말 내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답이 없었다.
닭들이니까.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하지?
그럼 닭은?
특히 암탉은?
매일 알을 퐁퐁 낳는 전 세계의 암탉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가끔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20대 시절에 집에서 닭을 수 십 마리 기른 적이 있었다.
가장 많았을 때는 30 마리도 넘었다.
농사를 지으며 반찬을 자급자족하듯 닭을 직접 길러 달걀과 닭고기를 충당했다.
어린 닭들이 다 크고 나면 암탉은 달걀을 낳았다.
"이거 내가 안 먹으면 너희가 먹으니까 내가 가져간다."
이렇게 말하고 달걀을 꺼내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에도 대답이 없었다.
닭이니까.
세상에는,
놀랍게도,
믿기 힘든 일이지만,
설마설마했는데,
제가 낳은 달걀(혹은 남이 많은 달걀)을 먹어치우는 닭이 있다고 한다.
처음 그 믿기 힘든 비보를 아빠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나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아빠, 아무리 짐승이라고 자기가 낳은 알을 먹는다고? 고양이나 다른 들짐승이 먹었겠지."
오래전에 몇 번 그런 광경을 목격한 당사자이므로 나는 확신에 차 말했다.
건들건들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들이 내 몫의 달걀을 훔쳐 먹는 그 몹쓸 광경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다. 그것들이 얼마나 잘 먹는다고."
아빠도 나 못지않게 확신에 찬 모습이셨다.
"그래도 어떻게 자기가 낳고 자기가 먹어? 아무리 닭이라고 그럴까?"
아빠가 거짓말을 하실 리는 없지만, 종종 농담을 잘하시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었다.
"이것아, 그것들이 먹으니까 먹는다고 하제, 오늘도 몇 개나 깨졌더라."
아빠도 진지하게 대답하셨다.
어라?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정말 그런가 본데?
어느 날,
나도 드디어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정말, 자기가 낳았는지 남이 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을 쪼아 먹고 있었다.
"이것아, 낳아 놓고 그걸 먹어버리면 어떡해?(=내가 갖다 먹으려고 했는데.= 그건 내 몫인데.)"
다소 충격적인 장면에 내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범인(?)은 더 화들짝 놀라며 그 범행 현장을 떴다.
그러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닭 아닌가?
아빠가 모이를 적게 주시나?
왜 저러지?
"아빠, 진짜 닭들이 알 먹습디다. 나도 봤네."
"거 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 너는 내 말은 안 듣더라."
"근데, 자기가 낳고 그걸 왜 먹을까?"
"껍질에 영양분 섭취하려고 그러제."
아빠는 그렇게 추측하셨다.
그래도 그렇지 그게 있을 법한 일인가?
옛날에 닭을 키울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라 나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닭이 알을 낳은 기미가 보이면 잽싸게 그것을 꺼내오곤 한다.
암탉은 친절하게도 알을 낳은 직후 큰 소리로 알려 준다.
솔직히 꺼내 오면서도 닭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다.
눈치도 보인다.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재빨리 챙기는 것이다.
갓 낳은 달걀을 손으로 만졌을 때의 그 따스함이란.
닭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애초에 닭을 기른 목적이 직접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을 얻는 것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다.
닭은 왜 자신이(혹은 다른 닭이) 낳은 닭을 자꾸 먹어 치우는 걸까?
혹시 내가 야금야금 꺼내 가는 게 괘씸해서?
인간에게 주느니 자기가 먹고 말겠다는 심리에서?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는 이 마음,
우리 집 닭들은 다들 꽤나 입이 무겁다.
얼마나 입이 무거운지 그 어떤 질문에도 침묵을 지킨다.
무슨 말을 해도 대꾸가 없다.
그래도 아무튼 고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