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건 시어머니의 아들만
어머님, 아버님은 안 그런 것 같은데 그 사람은 도대체 왜 그럴까?
같이 살면 살 수록 미스터리하고 뜬금없고 느닷없으며 (물론 지극히 나에게만, 내 생각에만 가끔은) 엉망진창인 사람이 우리 집에 한 명 있다.
그의 신변보호를 위해 절대 신분을 밝힐 수가 없다.
어머님, 도대체 아들에게 어떤 과거가 숨겨져 있는 건가요?
자고로 남편은 미워하되 시어머니는 미워하지 말랬다고, 그분의 아들이 밉다고 다짜고짜 아무 상관도 없는(하지만 정말 사람이 미워질 때는 반드시 뭔가 끈끈한 연결 고리가 있는 것만 같다,고 끝까지 우기고만 싶을 때가 있긴 하다, 솔직히) 애꿎은 시어머니까지 덩달아 미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야흐로 결혼 10년째가 되어갈 때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아들의 케케묵은 과거를 들추기 시작하는 대범함 내지는 무모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님, 옛날에 합격이 아범 어떻게 살았어요? 전 어쩔 땐 정말 이해가 안 돼요. 옛날에도 그랬어요?"
라고, 어머님 앞에서 직설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여쭈었으나,
"나는 모른다."
라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대답만 돌아오곤 했다.
아무 거라도 좋으니 끈질기게 어머님께 어떤 고백이라도 하시라고 매달렸으나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건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라든지
"그래, 그런 일이 있었냐?"
라는 심상한 답변을 비롯해
"어째서 그럴까?"
라는 허망한 대답만 듣는 약간의 사소한 쾌거를 거둘 뿐이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결혼 12년째, 난 더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아니면, 난 입고 날아갈 날개옷도 없는데 자식이 셋이 될 때까지 시어머니는 기다리고 계신 걸까, 설마?
난 남매 둘 말고는 더 이상의 자녀 계획은 없는데 이를 어쩐다?
아마도, 남편도 마찬가지일 거란 걸 안다.
그라고 해서
"아버님, 어머님, 집사람이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이젠 솔직히 얘기해 주시죠! 결혼한 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집사람의 과거 따위 다 용서하겠습니다. 진실을 밝혀 주시지요!"
라고 우리 부모님께 간청하고 싶은 그 마음,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고로,
나는 이쯤에서 적당히 멈추기로 한다.
애초에 내가 시어머니께 느닷없이 그분의 아들에 대해 앞조사를 하려고 했던 것은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이해'라는 것을 하고 사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던 것이다.(어쩌면 신혼 초부터 그렇세 살았어야 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단순히 그뿐이다.
그동안 살아보니 서로 자기 말만 하고 상대를 이해하려고조차 하지 않아서 당겨진 불화의 불씨가 대형화재로 이어졌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나 보다. 어쩔 땐 그 사람이 왜 그때 그렇게 행동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제와서는 이해가 가기도 했고 내가 조금 더 기다렸더라면, 내가 잠시 숨 고를 시간을 몇 초라도 가졌었다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다툼을 굳이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물론 지금 그 사람을 모두 다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양심상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 그건 무리다. 나도 사람이니까, 신이 아닌 이상에야! 게다가 생각은 또 이렇게 하지만 말과 행동은 또 엉뚱하게 나가기 일쑤인 고등동물(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라서. )
이제 와서 서로 다시 태어나겠다든지, 기적으로만 보이는 부부 솔루션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 애틋한 정을 다시 소환해 보고자 함도 아니요, 마음을 고쳐먹고 그 사람과 다시 잘 살아 보세, 이런 대단한 각오를 한 것도 아니다.
돌이켜 보면 어쩔 땐 그저 쓸데없는 감정싸움 같고 시간낭비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한때는 왜, 도대체 왜 저럴까 싶어서, 갑자기 시부모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부모님이 남편은 아닌데, 번지수를 잘못 찾은 원망의 대상은 느닷없이 며느리에게 뜬금없는 말을 들으면 정말 얼마나 황당할까?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었다.
시부모님이 제발 그 아들과 결혼하라고 하라고 내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여기서 잠깐, 상견례 후 시가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결혼시키려고 했음을 은근슬쩍 밝히는 바이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었는데 이제 와서 이것저것 맘에 안 든다고 엉뚱한 부모님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단순한 걸 깨닫는 데 10년이나 걸렸다니!
그러면서도 또 어떤 날은 다시금 그 부모님까지 원망하고 싶어지는 날이 또 있다.
이렇게나 간사한 내 마음을 나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만 부리며 살고 있다.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남편은 남편이다, 서로 연관 짓지 말자.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남이다.
남남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내가 결혼한 사람은 그 사람이다.
같이 살고 있는 사람도 그 사람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종종 그 말이 생각나지만 그 죄를 짓는 게 바로 사람이라는 생각에 짧은 내 생각으로는 사람이 문제인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무어 그리 떳떳하냐고 시어머니의 아들이 따지기 전에 이제 그만...
따지고 들면 들수록 나도 출혈이 클 테니.
다 젊고 철없을 적의 일이다.
미워하면 뭐 하나.
그렇다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 되는 것도 아닌데.
물론 가끔 다른 사람으로 환골탈태하지 않더라도 (내가 혼자 만들어낸 미움으로) 실컷 미워해 주고 나면 잠시라도, 속이라도 후련해질 때가 있음을 소심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는 바이다.
하지만,
바람도 좋고, 날씨는 더 좋고,
지금 살아 있는 게 제일 고맙고 좋은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그래도 내 아들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지 뭐야.
바야흐로 친아들에게 집중할 계절이다.
내가 낳지도 않은 시어머니의 아들은 내 알 바가 아니다.
내가 낳은 아들이라도 건사해야겠다.
출생자 친모 책임주의에 입각하여 각자 자신들의 아들만이라도 잘(그게 가장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물론) 길러보면 그게 최고 아닐까.(라고, 이런 생각을 해 낸 내가 기특해 나 혼자만 신동방통해 한다.)
그러면 딸은?
감히 나는 단언한다.
지금 당장은 아들이 급하다.
만에 하나 아들이 결혼이란 걸 하게 돼서 내게도 며느리가 생긴다면
"어머님, 도대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라고 묻는 심판의 날에 나는 무어라고 며느리에게 대답해 줄 것인지를 틈틈이 대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