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출 되기 참 쉽죠
"합격아, 오늘 상장받았어?"
"아니."
"아직도 안 주셨어?" 내일 주시려나?"
"나도 몰라."
"왜 안 주시지. 엄마는 얼른 보고 싶은데."
이번 여름 방학 때 따님께서 크게 한 건 하셨다.
"방학 때 시간도 많은데 공모전 한 번 도전해 볼래?"
작년에도 딸은 공모전에서 몇 차례 소소하게 성과를 거두었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호들갑을 떨며 점점 판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맹세코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딸은, 누가 강요한다고 해서 하는 성격도 아니고, 나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므로.
그저, 넌지시, 슬쩍, 쿡 한번 찔러나 보는 것뿐이다.
내가 오매불망 그 상장을 기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디에라도 누구에게라도 자랑이 하고 싶어(이런 부모를 고급 전문 용어로 소위 '팔불출'이라고 한다지 아마?) 근질근질했다. 그래봤자 그 대상이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 말고는 더는 없었지만 말이다.
혹시라도 상장을 받으러 오라고 하면 만사 제치고 자랑스러운 딸을 앞세워 시상식(?)에 갈 준비를 진작에 마쳤다.
"어떡하지? 상 받으러 가려면 미성년자니까 혼자는 못 갈 테고 내가 같이 가줘야 할 텐데 입고 갈 드레스가 없네."
우리 집 가장에게 수 차례 드레스를 언급했지만 그는 듣는 대로 내 말을 가뿐히 무시했다.
이로써 또 새 드레스 장만은 요단강을 건너갔고(애초에 요단강 이쪽으로 건너온 적도 없었으므로) 딸이 받게 된다는 그 상장에만 매달리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그 상장을 학교로 보냈다는 사실에 조금 의아했지만, 우리 딸이 그럼 선생님께 상을 다시 받게 되겠구나 싶어 혼자만 기특했다.
방학 중에 있었던 일이었고, 개학을 하면 주시려나 하고 개학날만 기다려왔다.
하교하고 온 딸에게 지겹도록 매일 물었다.
"혹시 상 안 가져왔어?"
"엄마 빨리 그 상 보고 싶다."
"그 상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진짜 궁금하다."
"언제 주시려고 안 주시지?"
개학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2주째 되던 날이었던가.
"엄마. 내가 뭘 가지고 왔게?"
"드디어 상 가져온 거야?"
딸이 내민 그 상장을 보고 또 보고 당장 사진을 찍어 우리 집 가장에게 보냈다.
장하기도 하지, 기특하기도 하지.
누굴 닮아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하셨을꼬.
"역시 엄마 딸이야!"
라는 그 상황과 전혀 무관한 발언을 몇 차례 언급하며 나는 그 상장을 눈부신 금은보화 보듯 했다.
당장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사실상을 받게 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바로 그 소식을 알리긴 했었다. 이제는 실체가 있으니 또 한 번 이 복음을 전할 기회다.) 평소에도 '상장'이라고 생긴 것 하나만 받아와도 나는 뽀르르 친정에 전화를 한다. 원래 상 받은 일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널리 널리 만천하에(사실은 가족들에게만 국한되긴 했지만) 알려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맹목적인 믿음이 있다.
친정 부모님도 마치 처음 들은 얘기처럼 기뻐하시며 축하해 주셨다.
축하세례에 한껏 어깨가 으쓱해진 딸을 보고 있노라니 나의 호들갑이 또 제법 쓸모 있게도 보였다.
"아빠, 봐봐. 상장받았어."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자 딸은 상장을 챙겨 제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드디어 받았네. 어디 보자. 우와. 진짜 대단하다. 이거 어디다 전시해 놓지? 어디가 좋을까? 고민되네. 어디에 놔야 잘 보일까?"
퇴근하자마자 딸의 상장을 들고 이리보고 저리 보고 뜯어보고 읊어보고 야단법석이었다.
"잠깐, 아빠가 상 다시 줘야지. 이리 와봐. 위 학생은..."
갑자기 조회시간의 교장선생님으로 빙의한 직장인은 혼자 신나서 딸과 상장 수여식 놀이에 빠졌다.
오버하시기는.
난 솔직히 저 정도까지는 아닌데, 팔불출이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