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나는 이런 것을

어머님, 전 남의 딸인데요

그래도 나는 2023. 9. 1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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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수술하시게 되면 나보고 좀 옆에 있어 달라고 하시던데?"
"엄마가 그러셔?"
"응. 나보고 집에도 와서 좀 도와주고 그러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얘기하셔?"
"그렇다니까. '근데, 어머님, 어머님도 딸이 있으시잖아요. 두 명이나 있는데 왜 남인 저한테 그러세요? 5분 거리에 사는 큰 딸도 있고 30분 거리에 사는 작은 딸도 있으시잖아요. 남인 며느리보다 친자식인 딸들한테 부탁하시든지 그러세요, 버스 타고 가면 서 너 시간 걸리는 거리에 사는 며느리한테 그러지 마시고 딸들한테 얘기해 보세요',라고는 말씀 안 드렸다."
 
어머님이 무릎이 많이 안 좋아서 결국 수술을 하기로 하셨다.
물론 그게 언제쯤이 될지는 기약 없다.
무릎에 상처가 있어서 그게 완전히 아물어야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지금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어버이날에 갔을 때 다 아물려면 아직도 멀어 보였다.
어머님 앞에서는 내색 안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나는 쉽게 수술 날짜가 잡히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전부터 무릎 연골이 다 닳았다고 너무 아프다고 하셨는데, 참다 참다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셨으나 수술을 한다고 해도 그 후가 막막했다.
무릎 수술을 하고 나면 1년 정도 절대 안정을 취하며 재활 운동은 해도 되지만 아무리 가벼운 농사일도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방심했다가 큰일 난다고, 그러다 영영 못 걷는다고 친정 동네에 흉흉한 소문이 자자하다.
두 분만 사시는 시가는 어머님의 손길이 멈추면 아마 모든 게 다 정지돼 버릴 것만 같았다.
가장 먼저 아버님이 제일 불편을 겪으실 것이다.
당장 수술을 하게 되면 어머님은 당분간은 병원에 입원해 계실 테고 최대한 머물 수 있는 만큼 병원에 계시게 하는 게 좋겠다고 남편과 나는 합의를 본 지 오래다.
아버님만 혼자 남아서 손수 끼니를 챙겨 드시는 일도 쉽지 않아 보였다.
 
"어머님, 무릎은 좀 어떠세요? 좀 나아지셨어요?"
"응. 많이 좋아졌어. 거의 다 나았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빨리 나아야 수술도 하실 텐데요."
"며늘아. 나 수술하고 나면 네가 좀 와서 나 좀 도와줄래? 집에 와서 반찬도 좀 해 주고?"
"그럴게요, 어머님. 별일 없으면 그래야죠."
안부차 전화를 드렸는데 어머님 간병 백지 수표를 받았던 것이다.
솔직히 뜨악하기는 했다.
내가 당첨된 건가?
왜 나지?
딸이 둘씩이나 있는데?
하지만, 친자식은 아니더라도 나도 며느리니까 내 아이들의 할머니니까 어머님의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는 일이긴 하다. 평생 같이 살자는 것도 아닌데 지레 호들갑 떨며 거부할 일도 아니었다.
언젠가 수술을 하게 되면 아마 내게 그 찬스(?)가 올지도 모른다고 대충 예감하고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며느리들에게는 귀신같은 직감이란 게 있기 마련이다.
 
"이제 일도 안 하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라고 본전도 못 찾을 소리 하는 그 어머님의 아드님이 설레발을 치기 전에 내가, 내 의지로, 진심으로, 거짓 없이 그리할 수도 있겠노라 다짐했단 말이다.
"근데 난 어머님이 대놓고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실지 몰랐는데 나보고 집에 와서 좀 도와달라고 그러시더라. 큰 형님은 5분 거리에 사시잖아. 난 내가 운전하고 가도 2 시간이고."
"당신이 전화도 자주 하고 그래서 누나들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나 보다 엄마가."
"그래도 나는 남인데?"
"당신이 편해서 그러시나 보지."
"난 안 편한데?"
 
어머님이 정말 남편 말대로 내가 편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어머님이 편해서' 어머님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이 몸이 불편한데 자식들 누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남의 딸인 며느리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던 거다.
항상 그런 각오는 해 왔다.
시가에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칭찬이나 받자고 그러는 것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아빠가 할머니께 해드린 대로 나도 할 뿐이다.
아빠는 동네에 소문난 효자셨다.
내 몸 아플 때의 설움,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박하게 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자신의 집 일에 '나서지 말라'라고 주야장천 얘기해 왔으니 절대 먼저 나서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부모님이 먼저 요청하면' 그 뜻대로 할 의향쯤은 내게도 있다는 말이다.
솔직히 어머님도 딸이 편하지 며느리가 편할까 설마?
그런데, 가끔 어머님이 정말 나를 편하게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딸이 하면 어떻고 아들이 하면 어떻고 며느리가 하면 또 어떠랴?
그저 나는 부모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것이다.
어머님도 별 뜻 없이 그냥 해 보신 말씀일지도 모를 일이고, 정작 아직 수술 날짜도 잡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