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엄마 한 명 더 없나?

"엄마, 누구한테 갈 거야?"
딸이 물었다.
"엄마 학교 가야 되는 거야, 얘들아?"
"그럼 당연히 와야지!"
아들이 발끈했다.
"엄마가 가긴 가야겠지?"
가기는 가야겠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가야 한단 말인가?
"어떡하지? 둘 다 3교시네. 엄마 어디로 가야 돼?"
엊그제 개학한 것 같은데 벌써 학부모 공개수업날이 잡혔다.
겨우 말문이 트인 아이를 붙잡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묻는 철부지처럼 남매 앞에서 나는 엄마 인생 최대의 고민에 빠졌다.
"얘들아, 근데 공개수업 시간이 겹치네. 이상하다. 전에는 저학년이랑 고학년 시간을 다르게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둘 다 3교시네, 하필이면."
이렇게 아무 영양가 없는 말만 했다.
"합격아, 너 몇 층이지?"
"나는 4층인데."
"우리 아들은 3층인가?"
"응. 엄마. 난 3층이니까 나한테 와."
"근데 너희 학교는 구조가 복잡해서 잘못하면 헷갈려서 교실 찾는데도 한참 걸리더라."
"엄마, 나는 본관 쪽이라 정문에서 더 가까워."
딸이 친절히도 알려 주었다.
그러나 나는 후문으로 입장할 예정이다.
"엄마, 나는 후문에서 더 가까워. 그리고 교실이 다 표시 돼 있는데 뭐가 헷갈린다고 그래 엄마는?"
아들이 엄마의 길치스러움에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가 많아야 일 년에 두 번 가는데 어떻게 잘 찾겠어? 너희는 맨날 다니니까 쉽지만."
그러니까 내가 아이들 학교에서 헤매는 이유는 특이하고 특이한 건물 구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아들의 공개수업이 먼저였고 그다음 시간이 딸의 공개 수업이 있었으므로 아들에게 엄마가 학교에 온 티를 최대한 팍팍 내고 나서 딸의 교실로 가려는데 한참을 헤맸다.
그곳은 같은 학년이어도 일부는 1층에 있고 나머지는 다른 층에 있기도 하고 한 학년만 따로 떼어서 분리돼 있기도 했다.
공개수업이 있을 때는 미리 남매의 교실이 몇 층, 어디쯤에 있는지부터 선행학습을 철저히 해야만 한다.
작년에는 그 층수도 헷갈려서 아이들에게 한소리 들었었다.
"엄마, 어떻게 할 거야?"
딸은 은근히 제 교실로 찾아와 줬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다.
"엄마. 엄마는 나한테 올 거지? 그치?"
아들은 당연히 제가 더 유리하다고 믿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자꾸 나보고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고 나만 느꼈다.)
아이들의 어느 한 순 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물론 욕심인 줄 알지만 말이다.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왔다 갔다 하면 되지."
퇴근한 멤버가 교통정리를 해 주었다.
솔로몬이 여기 계셨네.
그렇게 단순한 것을.
"그래, 엄마. 그러면 되겠네. 우리 교실에 있다가 누나 교실로 가고 다시 오면 되잖아."
맹모삼천지교는 들어봤지만, 아이들 공개수업을 둘 다 참관하고 싶은 욕심에 왔다리갔다리 하는 엄마 얘기는 아직 못 들어봤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복잡한 건물 안에서 다시 다른 자녀의 교실을 찾아 돌아갈 수 있을지 길치인 엄마는 장담할 수 없다.
"이럴 때 엄마가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 한 명은 딸한테 가고, 한 명은 아들한테 가고."
그러나,
꼭 이럴 때만이 아니라도 나는 푹 쉬고 다른 엄마 멤버를 파견해서 내 대신 엄마 역할을 다 해줬으면 하고, 엄마가 한 명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다소 불량한) 생각을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나는, 이번에도 남편 찬스를 쓰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그저 혼자서만 가상 시나리오를 잔뜩 썼다.
어떻게 해야 공개수업 참관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그거 들어서 뭐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