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 않(은) 남매

할인이 그래서 좋은 거구나

그래도 나는 2023. 9. 5. 12:03
반응형

"엄마, 엄마는 할인 좋아하잖아. 할인율 어떻게 알아보는지 알아? 내가 알려 줄까?"

딸이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느닷없이 돌발 질문을 했다.

싸인, 코사인, 탄젠트 이런 것만 아니라면,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래프 같은 해괴망측한 것에 관한 게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 마침 엄마가 오늘 할인하는 걸 두 가지 사 왔는데 그걸로 알아보자."

그리 계산적이지 않은 나는, 수학과 친하지 않지만 간만의 기회를 꽉 붙들어야만 한다.

 

"엄마, 백분윤 알아?"

"잘은 모르지만 알긴 알지."

"지금 내가 그거 하고 있는데 이걸로 할인율을 알 수 있대."

"그래? 지금 너 몇 학년 문제집 풀고 있지?"

"6학년."

"6학년에 그런 게 나오나 보네. 엄마도 그때 배웠나? 언제 배웠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우리 딸이 다시 한번 알려주면 좋겠네."

딸은 지금 5학년이지만 전~혀 교육에 열성적이지 않고, 극성맞지 않은 아빠 덕에 한 두 학기 정도 선행학습(그런 것도 선행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에 들어갔다.

나는 너무 학습에 대한 부담을 주면 지레 질려버릴까 봐 지금 교육과정을 잘 따라가기만 해도 만족하지만 남편 생각은 달랐다. 닥쳐서 하면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미리 준비해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이다. 

게다가 수학 분야다. 

나는 빠지기로 한다.

왜냐면,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결코 계산적이지 않다.

고로 빠져준다.

 

"잠깐! 엄마 나도 해 볼래."

3학년 아들이 또 끼어들었다.

"우리 아들이 해 보겠다고? 안 어렵겠어? 누나가 그러는데 이건 6학년이 하는 거래."

아무리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고 하지마는 3년의 교육과정을 월반(?)할 수 있으려나?

"나도 할 수 있어. 문제 내 봐."

저돌적인 아드님이시다.

지금 구구단을 90초 안에 안 틀리고 2단부터 9단까지 외워야 하는 숙명에 처한 아들이 백분율에 덤비시겠다니.

"그럼 합격이 네가 한 번 가르쳐 줘. 어떻게 하는 건지."

남은 가르쳐도 제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누나는 동생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

동기의 힘을 믿는다.

 

족집게 강사 저리 가라 하게 딸은 핵심만 콕 찍어 동생에게 단기특강을 해 줬다.

"이제 됐어. 엄마. 문제 내 봐."

그래, 자신감을 갖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너무 무작정 달려들어도 곤란한데 이거.

"엄마가 3,700원 짜리를 오늘 2220원 주고 사 왔거든. 그러면 과연 몇 퍼센트 할인한 걸까?"

마침 아침에 대폭 할인한 물건을 사 왔었다.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다니.

이건 분명 오늘 딸의 할인율 관련 부분을 집중 학습하라는 신의 계시임에 틀림없어!

 

"엄마, 다 했어. 37퍼센트야."

"우리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내가 사 온 물건의 포장지 위에 스티커를 보여줬다.

"잘했어! 40 퍼센트야. 딱 떨어지지 않으니까 반올림해서 40 퍼센트로 한 것 같아."

"이거 신기하다."

딸은 백분율에 반한 것 같았다.

"엄마. 내가 문제 내 볼게 한 번 맞춰 봐."

문제집을 들이밀었다.

이게 왜 이러시나 얘가.

난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라니까.

"엄마는 다른 할 일이 있으니까 그거 할게. 이번엔 다른 거 할인율 맞혀 볼래?"

혹시라도 나의 수학적 밑천이 다 드러나 틀린 답이라도 대는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접근을 금지시켰다.

그때 내게 중요한 것은 아이들 저녁 준비를 하는 것이었으므로.

"엄마. 이번엔 내가 해 볼래!"

그럼 그렇지. 아들이 빠지면 섭섭하지.

"그럼 이번엔 10,500원짜리를 엄마가 3,150원에 사 왔거든. 과연 몇 퍼센트나 할인을 받았을까?"

아들은 제법 잘했다.

"근데 사실 여기 보니까 이건 두 번째 할인된 거였어. 그전에는 얼마였더라? 이번엔 그 할인율을 알려줄 테니까 거기에 맞는 금액을 알아맞혀 볼래?"

"엄마, 진짜 싸게 잘 샀다. 하여튼 엄마는 할인 좋아하더라."

딸이 제 엄마의 쇼핑생활에 한마디 하셨다.

"할인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왕이면 원 플러스 원이면 더 좋지."

"그렇긴 하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최초 가격에서 금액을 얼마나 절약해서 산 건지 알아보는 건 어때? 이건 단순한 빼기니까 우리 아들이 해 보자."

더하기를 빼기로 착각하고 빼기를 더하기로 착각해서 가끔 문제를 풀 때 어이없는 실수를 하곤 하는 아들이다. 

"에이, 엄마. 그렇게 쉬운 걸 나 어떻게 보고?"

아들은 콧방귀를 뀌면서도 진지하게 빼기에 열중했다.

순식간에 정답을 댔음은 물론이다.

할인받아 좋고, 은근슬쩍 수학공부까지 덤으로 하니 더 좋고.

그 후로 아이들은 할인 상품만 보면 자꾸 서로 할인율을 맞혀 보겠다고 아우성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