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이 그래서 좋은 거구나
"엄마, 엄마는 할인 좋아하잖아. 할인율 어떻게 알아보는지 알아? 내가 알려 줄까?"
딸이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느닷없이 돌발 질문을 했다.
싸인, 코사인, 탄젠트 이런 것만 아니라면,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래프 같은 해괴망측한 것에 관한 게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 마침 엄마가 오늘 할인하는 걸 두 가지 사 왔는데 그걸로 알아보자."
그리 계산적이지 않은 나는, 수학과 친하지 않지만 간만의 기회를 꽉 붙들어야만 한다.
"엄마, 백분윤 알아?"
"잘은 모르지만 알긴 알지."
"지금 내가 그거 하고 있는데 이걸로 할인율을 알 수 있대."
"그래? 지금 너 몇 학년 문제집 풀고 있지?"
"6학년."
"6학년에 그런 게 나오나 보네. 엄마도 그때 배웠나? 언제 배웠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우리 딸이 다시 한번 알려주면 좋겠네."
딸은 지금 5학년이지만 전~혀 교육에 열성적이지 않고, 극성맞지 않은 아빠 덕에 한 두 학기 정도 선행학습(그런 것도 선행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에 들어갔다.
나는 너무 학습에 대한 부담을 주면 지레 질려버릴까 봐 지금 교육과정을 잘 따라가기만 해도 만족하지만 남편 생각은 달랐다. 닥쳐서 하면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미리 준비해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이다.
게다가 수학 분야다.
나는 빠지기로 한다.
왜냐면,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결코 계산적이지 않다.
고로 빠져준다.
"잠깐! 엄마 나도 해 볼래."
3학년 아들이 또 끼어들었다.
"우리 아들이 해 보겠다고? 안 어렵겠어? 누나가 그러는데 이건 6학년이 하는 거래."
아무리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고 하지마는 3년의 교육과정을 월반(?)할 수 있으려나?
"나도 할 수 있어. 문제 내 봐."
저돌적인 아드님이시다.
지금 구구단을 90초 안에 안 틀리고 2단부터 9단까지 외워야 하는 숙명에 처한 아들이 백분율에 덤비시겠다니.
"그럼 합격이 네가 한 번 가르쳐 줘. 어떻게 하는 건지."
남은 가르쳐도 제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누나는 동생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
동기의 힘을 믿는다.
족집게 강사 저리 가라 하게 딸은 핵심만 콕 찍어 동생에게 단기특강을 해 줬다.
"이제 됐어. 엄마. 문제 내 봐."
그래, 자신감을 갖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너무 무작정 달려들어도 곤란한데 이거.
"엄마가 3,700원 짜리를 오늘 2220원 주고 사 왔거든. 그러면 과연 몇 퍼센트 할인한 걸까?"
마침 아침에 대폭 할인한 물건을 사 왔었다.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다니.
이건 분명 오늘 딸의 할인율 관련 부분을 집중 학습하라는 신의 계시임에 틀림없어!
"엄마, 다 했어. 37퍼센트야."
"우리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내가 사 온 물건의 포장지 위에 스티커를 보여줬다.
"잘했어! 40 퍼센트야. 딱 떨어지지 않으니까 반올림해서 40 퍼센트로 한 것 같아."
"이거 신기하다."
딸은 백분율에 반한 것 같았다.
"엄마. 내가 문제 내 볼게 한 번 맞춰 봐."
문제집을 들이밀었다.
이게 왜 이러시나 얘가.
난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라니까.
"엄마는 다른 할 일이 있으니까 그거 할게. 이번엔 다른 거 할인율 맞혀 볼래?"
혹시라도 나의 수학적 밑천이 다 드러나 틀린 답이라도 대는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접근을 금지시켰다.
그때 내게 중요한 것은 아이들 저녁 준비를 하는 것이었으므로.
"엄마. 이번엔 내가 해 볼래!"
그럼 그렇지. 아들이 빠지면 섭섭하지.
"그럼 이번엔 10,500원짜리를 엄마가 3,150원에 사 왔거든. 과연 몇 퍼센트나 할인을 받았을까?"
아들은 제법 잘했다.
"근데 사실 여기 보니까 이건 두 번째 할인된 거였어. 그전에는 얼마였더라? 이번엔 그 할인율을 알려줄 테니까 거기에 맞는 금액을 알아맞혀 볼래?"
"엄마, 진짜 싸게 잘 샀다. 하여튼 엄마는 할인 좋아하더라."
딸이 제 엄마의 쇼핑생활에 한마디 하셨다.
"할인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왕이면 원 플러스 원이면 더 좋지."
"그렇긴 하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최초 가격에서 금액을 얼마나 절약해서 산 건지 알아보는 건 어때? 이건 단순한 빼기니까 우리 아들이 해 보자."
더하기를 빼기로 착각하고 빼기를 더하기로 착각해서 가끔 문제를 풀 때 어이없는 실수를 하곤 하는 아들이다.
"에이, 엄마. 그렇게 쉬운 걸 나 어떻게 보고?"
아들은 콧방귀를 뀌면서도 진지하게 빼기에 열중했다.
순식간에 정답을 댔음은 물론이다.
할인받아 좋고, 은근슬쩍 수학공부까지 덤으로 하니 더 좋고.
그 후로 아이들은 할인 상품만 보면 자꾸 서로 할인율을 맞혀 보겠다고 아우성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