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어리 살어리랏다 전원에 살어리랏다

아빠가 오죽했으면 그러셨을까

그래도 나는 2023. 8. 2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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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기 사과나무 아래 뭐야?"

오랜만에 외가에 간 딸이 내게 물었다.

"아, 그거. 할아버지가 참새 잡는다고 설치해 두신 거야."

(아빠는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셨겠지만) 내 눈엔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직사각형 철조망 같은 '덫'이, 청춘의 덫보다도 더 무섭게 옭아맬 수 있는 그 덫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 옛날에도 참새 잡는다고 무슨 장치 만들었었잖아. 그때 몇 마리나 잡았어?"

딸은 기억력도 좋다.

"한 마리도 못 잡았지."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생각이 났다.

"근데 또 만들었어? 과연 참새가 잡힐까?"

딸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니, 엄마 생각엔 한 마리도 못 잡을 것 같아. 네가 보기엔 어때? 잡힐 것 같아?"

"안 잡힐 것 같은데. 참새가 얼마나 빠른데."

딸은 애초에 인간의 몸으로 참새를 잡는 일은, 그것도 허술한 장치로 그 잔망스러운 생명체를 잡아 가둔다는 게 조금 허황돼 보였나 보다. 12살짜리는 진작에 간파한 그것을 70년 하고도 5년을 더 사신 아빠는 왜 굳이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셨을까.

어쩌다가 아빠는 참새랑 앙숙이 되신 걸까?

 

"엄마. 저건 또 뭐야? 이런 게 왜 여기 있어?"

언젠가 닭 모이를 주러 갔다가 희한한 물체를 보고 엄마에게 물었다.

"그거 아빠가 참새 잡는다고 만들었단다. 하나도 못 잡을 것이다. 그것들이 거기 걸릴 줄 아냐."

이런, 엄마도 진작에 결론 내리셨군.

그런데 아빠만 포기를 모르셨다.

"한 놈이라도 걸리겠제, 그것들이. 내가 그놈들 가만히 안 둘란다!"

아빠는 뭔가 분해하시면서 동시에 의지를 굳히시면서 자신 있어하셨다.

"옛날에도 그런 거 만들어 놔도 한 마리도 안 걸리던데?"

나는 지난날의 성과, 아니 성과라기보다 아무 결실 없었음을 정확히 짚고 넘어갔다.

"이번에는 잡힐 것이다. 내가 요놈들 다 잡을란다."

아빠의 의욕과는 달리 참새들은 눈치 빠르고 도망치는 데는 더 재빨라서 한 달이 지나도록 '한 놈도' 그 덫에 걸려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덫을 놓고 긴 줄을 연결해 작은 방 문고리에 걸어 묶었다. 살짝 그 덫을 건들기라도 하면 너무 허술해 애처롭기까지 한 뚜껑이 위에서 아래로 철커덕 떨어지게 해서 가두는 (설명으로 하면 그럴듯한데 막상 실물을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다.

야생 동물을 가두는 덫, 그런 비슷한 원리로 아마 흉내내서 만드신 것 같았다.

 

"참새는 잡아서 뭐 하시게? 어디 쓸 데 있다고?"

아무것도 모르면 잠자코 있기나 했어야 했는데, 나는 눈치 없이 물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도 못한, 반드시 잡아야 할 확실하고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듣는 내가 참새들이 다 얄미워질 정도로 과연 아빠가 참새 덫이 아니라 참새 감옥이라도 짓고 싶을 만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했다.

그것은 바로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