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어리 살어리랏다 전원에 살어리랏다
'뿌리대로 거둔다'는 속담은 거짓말이다.
그래도 나는
2023. 5. 16. 22:27
"그렇게 하면 그것이 나중에 돋아 나겄냐? 너무 깊이 심어도 안된다. 비켜 봐라.이라고 이라고 심어야제. 이런 것은 뭐한디 심을라고 그러냐?"
"아빠, 이거 허브라니까. 좋은 거야."
지난번 1차로 허브 싹틔우기에 실패(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땐 정말 처절한 실패였다. 아빠가 모래를 다 쏟아붓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으니까.)
어디까지나 나의 잘못이 아니라 아빠의 부주의(?)로 인한 참극이었다.
다시 나는 도전했다.
여전히 혀를 끌끌 차시며 못 미더워하시는 아빠와 함께(라기보다 아빠의 적극적인 주도 하에) 했음은 물론이다.
"아빠, 이번에는 모판에다 씨를 심어야겠네. 여기 한 칸에 하나씩 심으면 되겠지?"
"하나만 심으믄 쓴다냐. 두 개씩은 심어야제. 그것들이 심는다고 다 돋는다는 보장도 없고."
"아, 그렇구나."
참으로 단순한 사람이다 나는.
미처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나는 씨앗 하나당 하나씩 싹을 틔워 그 좁디좁은 모판에서 금세 열대우림이라도 조성할 줄로만 알았다.
듣고 보니 아빠 말씀도 일리가 있었고,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제야 씨앗 봉투에 안내된 사항을 자세히 보았다.
발아율이 모두 50%에서 60% 사이였다.
레몬밤과 페퍼민트와 라벤더는 운이 좋으면 반타작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확률이다. 수학에 몹시도 약한 나지만 그건 그리 내게 유리한 일이 전혀 아니란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럼 두 개를 심으면, 그것도 운이 좋아야 하나라도 싹을 틔운다는 거잖아?
내가 계산한 것과는 너무 달랐다.
왜 나는 그동안 씨를 뿌린 대로 다 거두리라 굳게 믿고만 있었던 것일까?
그 속담이 문제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적어도 (내가 구입한) 허브 씨앗에 대해서는 '뿌린 것 중에서 거둘 확률은 50%가 되리라.'라고 현실적인 속담으로 정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까 영어로는 이렇게 표현을 했었지.
'You reap what you sow. - > '굳이 내가 정정할 필요가 있을까? 능력자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한다. 결코 내가 영작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란 점을 밝히고 싶다. 믿어 주길 바란다.
영어 속담조차도 뿌린 만큼 거둘 것이라고 곧이곧대로 표현하는데 속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쩔 땐 저 속담은 거의 사기에 가까울 때도 있음을 경험상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속담에 기대를 해 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이 얼마나 지금 내게 꼭 필요하고도 희망적이며 시의적절한 표현이란 말인가.
한 번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하나라도 싹을 틔우리.
"그거 다 심고 물도 바로 줘야제. 물이 모판 아래로 다 샐 만큼 줘 놔야지 그대로 두믄 안 된다. 날마다 물 줘야제."
"그럼 물 줘야지."
"비켜 봐라. 니가 물을 줄 줄이나 아냐?"
"그냥 주면 되지."
"그냥 주믄 상토가 다 파이재. 물뿌리개로 살살 줘야제."
나는 아빠 말씀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바가지로 물을 주려고 했음은 물론이다.
"이것도 여기다 두믄 된다냐. 저기 평평한 데다 햇빛 잘 보게 놔두고 키워야제."
아빠는 물을 골고루 다 뿌리신 후 양지바른 곳으로 모판을 옮겨 주셨다.
"아빠, 내가 해도 되는데."
라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빠는 이사를 마치셨다.
역시, 아빤 뭐가 달라도 다르셔.
아, 내가 한 일이라곤 겨우 씨앗을 두 개씩 심은 게 다지만 참 보람 있는 하루였어.
누가 보아도 2차 허브 심는 일의 8할은 아빠가 다 하셨지만 말이다.
이번엔 잘 될 것 같다. 날씨도 점점 따뜻해지고 있고, 이번에야말로 나름 전문가와 함께 했으니 하나라도 건지겠지.
벌써부터 파릇파릇 허브들이 고개를 내밀 풍경이 눈에 선하다.
끝까지 내게 완전히 못 맡기시는 아빠를 뒤로 하고 나는 친정을 벗어났다.
슬그머니 매일 물 주는 일은 아빠 몫으로 미뤄놓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