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면직-일반행정 지방직 아내의 공무원 그만두기

"면사무소 계약직 한 번 해 볼래?" 면장님의 제안

그래도 나는 2023. 8. 10.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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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공무원 시험만 보고 있지 말고 이젠 취직해야지.(=그렇게 많이 떨어졌으면 그만 둘 때도 됐다.) 면사무소에 임시직 한 명 뽑는데 거기 들어가 볼 생각 없냐?(=비정규직이라도 취직을 하는 게 먼저다.=지금 네 처지에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때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보다 못해 저렇게 말씀하셨을까.
 
도저히 못 봐줄 지경이었겠지.
1년이 가고 , 2년이 가고, 나이는 먹어 가고, 별다른 포부도 없는 조카가 안돼 보여(답답하셨겠지, 무척이나.) 나름 구조신호를 보내신 것이리라.
일방적이기만 했던 '보건직'에 대한 짝사랑은, 끝내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으므로 내 마음을 정리하고 일행으로 마음을 준 지도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일행과의 사이도 썩 다정하지는 못했다.
일행은 아주 콧대가 높은 녀석이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까닭으로 나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평생 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줄 알았더냐? 너도 언젠가는 인기가 시들해질 날이 올 것이야.)
해 년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진심을 전했으나 거절만 당했다.
무정한 직렬, 내겐 너무나 무정했다.
 
어리석은 건지, 밑도 끝도 없는 (포기만 안 하면 붙는다는데 언젠가는 붙겠거니 하는) 사이비 믿음 때문이었는지 나는 내 인생에서 몇 되지 않은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말씀은 고맙지만, 정정당당히 시험을 봐서 들어가고 싶어요."
 
말은 잘해요.
그래, 시험 봐서 도대체 어느 세월에?
어차피 나이 제한도 없는데 들어가자마자 퇴직하려고?
 
꽃무릇은 꽃이 먼저 피어나고 그 꽃이 다 진 후에라야 비로소 잎이 돋아난다.
꽃은 잎을 볼 수 없고 잎은 꽃을 만날 수 없으니, 그래서 '상사화'라고 했다.
임시직은 당장 취업은 되겠지만 앞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함도 덤으로 달고 살아야 한다.
공채에 합격하면 정년은 확실히 보장받겠지만 합격의 날을 보장할 수 없고 그전까지는 피폐한 수험생활로 연명해 나가야 한다.
당장 취직도 하고 정년보장까지 되는 그런 행운은 쉽게 만날 수  없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꽃만 보든지, 꽃은 졌더라도 잎을 볼 것인지.


정정당당도 좋고, 공채로 떳떳이 공무원 임용되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도 좋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판에 나름 소신은 있어가지고 솔깃한 그 제안을 단칼에 무찌른다.
 
그분이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고, 부모님은 예상 밖의 대답에 황당해하셨고, 친구들 사이에선 졸지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저 혼자만 줏대 세우는 장기 수험생으로 전락했다.
모두들 혀를 쯧쯧 찼다.
공무원 불합격 10관왕이긴 했으나 나름의 원칙은 가지고 살았고, 변함없이 그러고 싶었다.
융통성 없는 답답한 공무원의 자세가 그때부터 갖추어진 '나는야 준비된 공무원'이었다.
 
나라고 잠깐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수험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불안감에 밤새 뒤척이기도 했다.
의지가 흐물거려지면 그때 그 제안을 잽싸게 받아들이지 못한 게 나중에 후회로 남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지역 사회에서의 인맥의 고리로 쉽고도 편한 채용(이라고 남들은 생각하기 쉬운), 남들은 그렇게라도 해서 어떻게든 들어오고 싶다고도 했는데, 공직사회에서 면장님의 지위에 있는 친척 한 명이 얼마나 사람에 따라서는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고, 위안도 될 수 있는지 굳이 겪어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이 개선되고, 옛날보다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글쎄, 공직사회가 투명, 공평하기만 한 걸까.
정말 진심으로 망설임 없이 '그렇다'는 대답이 안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또는 과거에 공직생활을 했던 분들도 느끼듯이 말이다.
설마 또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거야?
물론 사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사람 사는 곳은 별반 다르지 않겠지.
 
요즘엔 계약직으로 시작해서 어느 정도 일정 기간이 지나고 큰 문제가 없으면 무기직으로 전환이 많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 나도 만약 그때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럭저럭 지냈으면 어느새 무기직으로 정년까지는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까지 갔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계약직으로서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차별감, 인맥으로 입성했다는 뒷공론(지금 생각해 보니 나를 반드시 뽑아 주리란 보장도 없었는데 혼자만 김칫국물을 들이켠 게 우습다.), 그 인맥이 오히려 독이 돼 그분이나 나에게 돌아올 예상치 못할 안 좋은 상황 등등 별의별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곳은 좁은 시골이다, 말도 참 많은 동네다.
누구는 어쩌고 저쩌고, 이래서 저래서, 쑥덕쑥덕.
쑥떡을 매우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곳 사람들이다.
아! 생각만 해도 듣기 싫다.
피곤하다.
피곤한 건 딱 질색이므로 피곤할 일은 만들지 말자.
 
그러나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공채로 공무원 합격을 하고 임용됐어도 그때 내가 했던 쓸데없어 보이던 걱정들은 여지없이 현실화되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임시직이든 정규직이든 가리지 않는다. 오지라퍼들의 세계에서는.
 
태초에 하늘과 땅이 생겨났다.
그 사이에 오지라퍼들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