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면직-일반행정 지방직 아내의 공무원 그만두기

떨어지고 떨어지는 게 공무원 시험이다

그래도 나는 2023. 8. 10.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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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 생일인데 저번 시험에 또 떨어져서 너무 우울해. 진짜 힘들어. 나 어떡해야 돼? 자꾸 커트라인 근처에서 떨어져."

 

대학 다닐 때부터 꾸준히 일행을 준비하던 친구는 졸업을 하고 노량진으로 올라갔고, 가끔 안부를 보내왔다.

나보다는 일찍 시작한 일이었지만 당시는 정말 미친 듯이 공무원의 인기가 치솟았던 때였으므로 서 너 번의 시험 응시로 합격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솔직히 경쟁률은 그다지 의미 없어 보이긴 한다.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응시하느냐가 관건인 거지.

허수라는 게 있고, 무조건 점수가 높으면 붙으니까 점수가  나온 사람은 어떻게든 붙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도 '6개월 만에 붙었네', '1년 만에 붙었네.' 하는 듣고도 믿기 힘든 합격 수기가 '구꿈사'카페에 심심찮게 올라오기도 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먼 나라 이웃나라 사람들의 일일 뿐이었고 내 친구의 일은 아니었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공무원 합격'

그때까지만 해도 남의 것이었다.

남의 것이야.

남의 것은 함부로 만지는 거 아니야.

보기만 하는 거야.

언젠가 내 것이 될 날을 기다리면 된다.

내 것이 되는 순간 마르고 닳도록 실컷 만져보자.

 

하루는 생일인데 자꾸 떨어지니까 우울하기만 하고 자꾸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만 든다고 했다. 

다 그만두고 싶다고도 했다.

그 그만둔다는 말이 어째 기분상 섬뜩하게 들렸다. 

목소리에 알코올이 묻어났다.

새까만 절망감이 서울에서 나 있는 시골집까지 전해졌다.

공시생 신생아 신분의 초보자는 급기야 공시생 유아기의 선배에게 감히 조언을 하기에 이른다.

 

"공무원은 포기만 안 하면 언젠가는 붙는대. 너무 실망하지 마. 너 잘하고 있잖아."

물론 공무원의 '공'자도 모르는 내가 했던 말이 아니라 '9꿈사'라는 카페에서 보고 들은 말이다.

장수생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그리고 한참 후 그 친구가 먼저 붙고 내가 자꾸 떨어지고만 있을 때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지만, 그 상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란 걸 알았지만

"너는 커트라인 근처라도 가봤지. 나 봐라. 나는 근처도 못 가봤어 한 번도."

부끄러운 고백을 한다.

 


살다 보면 놓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싶다가도 

'현재로선 이럴 수밖에 없어.'

이렇게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 알면서도 그 현실이 감당하기 벅차 미칠 것만 같고

'차라리 세상이 망해버려라.'

극단적으로는 저런 상태로까지 치닫는 상황 말이다.

 

신이 아니니까, 가끔은 나약해빠진 인간일 뿐이니까 완벽할 수는 없잖아, 모든 일이 내 뜻대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잖아. 남들도 다들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길 바라고 있어.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바라는 세상 같은 거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시생은 다 시험에 합격하고 싶어 해.

붙으려고 공부하지 떨어지려고 공부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지금도 새벽같이 일어나 이미 인강을 몇 개 보고 독서실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있을 것이다.

예전만큼은 못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 때는 공무원 합격보다도 당장 복잡한 내 마음을 가만히 들어주는 상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그 사람 공기가 다시 숨을 불어넣어 준다.

 

자신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