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 남편 교육행정직 합격 비법

공시생 남편은 주식으로 머리를 식힌다(?)

그래도 나는 2023. 5. 15. 07:09
반응형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했다. 그것도 매우 잘.
평일엔 직장 생활을 하고, 주말엔 집을 나오고,  퇴근 후엔 최대한 남편과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만 했다.
 
공시생 남편은 퇴근도 없고 주말도 없으므로, 오로지 교행 합격만을 위해 달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야 했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밤낮이 바뀐 수험 생활을 하다가 시립 도서관을 다니다가 공공 도서관을 다니고, 이 대학교 도서관을 애용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저 대학교까지 다닌다.
도서관이야 어딜 다닌들 무슨 상관이랴,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으면 되는 거지.
없는 살림에 독서실 끊어 달라고 안 하는 것만도 어디냐.
만약 그런 말이라도 하는 날에는  겸직이 금지되는 공무원 신분인 아내는 친정 엄마 이름을 대며 남몰래 밤에 주유소 알바라도 뛰어야 할 판이다.
하다 못해 퇴근하고 저녁마다 인형 눈을 1,000개씩을  붙여야 하나?
 
그래도 나한테 무리한 요구는 안 하니까.
저 정도면 양호한 거다.
어차피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지.
정신 차리고 잘하겠지.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자.
난 소중한 사람이니까.
 
사람마다 공부하는 스타일이 다 다르니까 내가 뭐라 할 일도 아니긴 하다.
결과만 따지자, 결과만.
아무리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그 당시는 과정이고 뭐고 공무원 합격이라는 결과가 가장 중요했다.
내게는.
그런데 과연 남편은?
 
갓 태어난 신생아도 아니고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며 공부할 때도, 집이 편하다고 집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며 바깥출입을 며칠 동안 안 하고  집에서 뒹굴 때도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물건 사들이는 거야 뭐 아무리 벌이가 없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을 쓰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안 돌아가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므로,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1만 분의 1이라도 이바지해야 하는 그는 예비 공무원이었으므로 눈 감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도 그냥 못 넘어가는 게 있는 사람이다.
두 눈 부릅 떠야 할 때가 있다.
 
주. 식.
나는 주식을 잘 모른다.
그렇게 관심이 있지도 않다.
그러나 한 집에 사는 그 남자는 주식에 관심이 아주 지대하시다.
자그마치 공시생 신분이신 그분께서.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 눈을 그때 뜰 필요가 굳이 없을 것 같았는데.
주식에 관심이 지대하시다는 것을 11년 전 그때 알았다.
 
그럴 줄은 몰랐다.
공시생 신분에 지금 주식이라니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100만 원 남짓한 9급 공무원 월급으로 적금 82만 원 넣고 나머지 가지고 살림 꾸려 나가느라 도서관 자판기 코피 값 200원도 마음대로 못쓰는 상황에 주식이라니.
동네 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소,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네.
 
그가 주식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술과 도박과 여자에 빠지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도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안 물어봤으니까.
그런데 어찌어찌하다가  그가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알기론 돈 한 푼 주머니에 없는 남자다.
털어서 먼지조차 안나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내 주머니나 그 주머니나 나올 건 없는 사람들이다.
 
너나 나나 없이 사는 건 마찬가지.
빈곤의 성평등을 완벽히 이룬 우리 부부.
 
밤에 더 공부가 잘 된다던 남편은 그 특기를 살려 밤새 잠 안 주무시고 주식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내가 목격한 것은 밤이다 주로.
남편의  낮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낮엔 내가 출근하고 없으니까, 하필이면  그 당시 집에 CCTV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확인할 길은 없다.
 
그냥 남편이 아니다.
공시생 남편이다.
이건 정말 아니다.
주식이란 게 아주 세상 몹쓸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공시생 신분에 주식이라니.
시험이 한 두 달 밖에 안 남은 상황이다.
 
너무 열심히 공부만 하다가 머리가 어떻게 된 게 틀림없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너무 공부만 해서 돌아버린 천재. 그런 사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중요한 건 그는 천재도 아니고 공부를 너무 심하게 열심히 하지도 않았단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지경이 됐으니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지금 주식 시장 신경 쓸 시간에 최신 기출문제 경향에 더 신경을 써야 할 판인데.
 
물론 주식을 하는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관심이 있으면 할 수도 있지.
없는 셈 치고 여윳돈이 있다면, 다 잃어도 감당할 정도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적당히만 한다면 나도 크게 뭐라 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지금 그는 공시생 신분이라는 사실이고, 수입도 없는 남자다.
 
이런 건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최소한 한 집에 사는 부부로서 한 마디 할 권리는 나에게도 있다고 본다.
하지 말라고 말려도 한 마디 해야겠다.
 
"돈도 안 버는데 무슨 돈으로 지금 주식을 하는 거야?"
"응, 그거 저번에 아빠가 집 구할 때 주신 거 여기 임대 아파트 구하고 좀 남은 거 있었어."
결혼 며칠을 앞두고 극적으로 구한 임대 아파트였다.
15년도 넘었지만, 누가 봐도 낡았지만, 우리 공간이 생긴 기쁨에,
"자기야, 나 여기서 평생 살아도 좋겠어. 집도 진짜 넓고 너무너무 좋다. 아~행복해. 자기랑만 있다면 난 월세방 한 칸짜리라도 상관없어."
 
20평 정도 크기의  아파트를 보고 내가 저런 정신 나간 소릴 했던  때가 있긴 했다.
아마도 내 숨겨진 쌍둥이 언니가 다녀갔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어휴, 여긴 왜 이렇게 집이 좁은 거야? 너무 답답해."
저렇게 상황이 바뀌긴 했지만.
 
아이들이 둘 태어나고 살림살이가 하나 둘 늘어나자 분명 같은 공간인데도 너무 좁게만 느껴졌던 거다.
처음 이사 올 땐 텅텅 빈 집이라 더욱 그랬을 거다.
사람의 간사함이라니.
 
결혼할 때부터 그냥 분수에 맞게 살겠다, 무리는 않겠다, 형편껏 둘이 벌면서 남한테 피해나 주지 말고 살자 다짐했던 나였다.
부모님은 지금껏 키워 주신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결혼한다고 부담 주기 싫으니까 기대지 말자. 앞으로 둘이 같이 벌면 밥 굶기야 하겠냐 이런 마음이었다.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으므로 결혼식도 요란하게 치르지 않았다.
모든 걸 최소한으로 최소한으로 줄이고 줄였다.
신혼여행도 여행사 없이 자유 여행으로 직접 다 알아보고 갔다 왔다.
 
남들은 혼수 준비에 수 천만 원을 들였네 예물을 시가에서 몇 세트를 받았네 어쨌네 해도,
"언제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거 그냥 반지 하나만 간단히 하자."
라며 자그마치 25만 원짜리 도금 반지 달랑 하나 한 거 빼곤 예물이고 뭐고 관심도 없었다.
워낙 건망증도 심한 데다가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더욱 그랬다.
 
"그래도 예물 많이 받아 놓으면 나중에 급할 때 그거라도 팔아서 쓰면 꽤 큰데."
이러면서 주변 언니들이 나를 바보 취급했다.
괜찮다, 나는 바보가 아니므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와중에 나는 예물을 팔아 아주 요긴하게 살았다는 한 여인의 고백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녀들의 선견지명은 너무도 족집게처럼 정확해서 정말 저 말이 무슨 소린지 알겠다 싶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역시 먼저 경험해 본 사람들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
꽝! 
이번 결혼에선  물 건너갔고, 다음 기회에.
 
결혼할 때 시가에서 집 구할 때 보태라며 주신 돈을 가지고 남편은 또 융통성이란 걸 기가 막히게  발휘해 주셨다.
내 남편이 이렇게도 융통성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그럼 곤란한데, 공무원은 융통성 발휘하면 안 되는데?
나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오래된 임대 아파트를 구하는 데에 삼천만 원이 좀 넘는 돈이 들어갔고 천만 원 정도 남았다.
시부모님이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지어서 번 돈이다.
100만 원 벌기도 얼마나 힘든 게 시골살이인지 뻔히 아는 나다.
 
그런데 부모님이 피와 땀으로 마련해 준 그 돈을 남편은 집 구하고 조금 남았다고 고스란히 주식에 투자한 것이었다.
물론 뭐 한탕주의를 바라고 시작했겠냐마는 그래도 그 막연한 불확실성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이 나로선 이해가지 않았다.
처음에 남편은 그 돈이 남자,
"그럼 나머지는 집에 다시 드릴까?"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돌려줄 거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리 자식에게 준 돈이라고 하지만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는 그 자체부터가 내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기가 번 돈이라면 또 몰라.
"부모님이 집 구할 때 보태라고 주셨지. 주식하라고 주신 거 아니잖아?"
"어차피 집 구하고 남은 건데 어때?"
"차라리 남은 걸 그냥 집에 돌려드리지 그랬어? 이럴 거였으면."
어설프게 주식한다고 건드려서 날리느니 나는 그 편이 차라리 나을 성싶었다.
잘은 모르지만.
"괜찮아. 벌어서 드리면 돼. 자긴 주식 잘 모르잖아. 하는 대로 보고만 있어."
 
주식의 '주'자도 모르는 나지만 주식만큼 앞 일 알 수 없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정말 이건 아니라니까."
"괜찮아,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지금 알아서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사고만 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런 일은 나에게 미리 상의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부부인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걸 하려면 나한테 얘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얘기하면 못하게 할 거잖아."
 잘 아네,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일을 저질렀단 말이야?
 
더 얘기해 봤자 서로 기분만 상할 게 뻔했으므로  긴 말은 안 했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있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근데 지금 공부하는 사람이 주식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괜찮아, 하루 종일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 식힐 때 잠깐 보는 거니까."
"그게 그렇게 돼? 시작하면 계속 신경 쓰이지."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은 안 한다.
하지만 남편이 알아서 할 것 같지는 않다.
내 말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알겠지?
 
주식을 붙잡고 있는 한은 머리가 식혀질 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제발, 한 가지만 합시다.
지금은 미친 듯이 공부만 해도 모자랄 시간이라고.
그 시커먼 속을 난 절대 모르겠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지만 상식적으로, 내 상식으로는 공시생에게 주식은 위함 하단 직감이 딱 드는 거다.
아무리 신경 안 쓴다고 해도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시간을 들일 것이 아닌가.
시험이 내일모레란 말이다.
 
"주식하고 있으면 공부하는데 방해되지 않아? 우리 직원들도 하는 사람들 있는데 주식하면 맨날 그것만 들여다 보고 생활이 잘 안 되던데. 아무리 신경 안 쓴다고 해도 사람이 그렇게 잘 안되잖아."
"걱정하지 말라니까."
 
걱정하는 게 아니라니까? 
내가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져?
혼자 다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면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정신 차리고 지금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좀 제대로 직시하라 그 말이잖아.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마음만 가지고는 안돼.
뭔가 행동을 해야지.
 
주여,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남편을 주식의 구렁텅이에서 구하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분명히 본인이 나한테 큰소리쳤다.
자신 있다고 했다.
그 자신이 이 자신이었나?
나 복장 터지게 할 자신?
 
남편과 살다가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편은 귀가 얇다 못해 없는 사람이다.
남의 말에 솔깃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귀가 없는 사람인데 어쩌랴.
귀는 없지만 그나마 눈, 코, 입은 달렸잖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그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어.
모자란 점도 있는 게 인간이지.
신이 아니잖아.
하지만 그것도 적당해야 말이지.
 
이 답답한 마음을 누구에게 하소연할꼬?
 
더 이상 남편 일에 관여해 봤자 싸움만 난다.
신경 끄자.
 
남편 하는 걸 보고 있으니 교행 합격은 물 건너갔고 합격한 후에 2세를 낳겠다는 내 계획은 급히 수정에 들어갔다.
 
애초에 남편이 주식에 빠지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거라 이런 상황은 내 예상 시나리오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음, 인생이 계획대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었군 역시.
 
남편이 언제 시험에 붙을지도 모르는데 자꾸 임신을 미룰 수가 없었다.
2011년 나는 벌써 서른두 살이었다.
 
엄마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자꾸
"너 밥값 하냐?"
라고  물었다.
밥값?
무슨 밥값?
처음엔 무슨 소린고 했는데 그 소리가 이 소리다.
 
그래, 
너는 주식을 해라.
나는 밥값을 해야겠다.
 
주식을 하든 공부를 하든 어차피 남편의 인생이다.
내가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내가 대신해 주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
 
이렇게 일찌감치 나를 홀로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사람.
이런 사람 세상에 또 없습니다.
 
그래, 
나한테 주식 투자하게 돈 좀 가져와 보라고 하지 않은 것만도 어디냐.
저 정도면 양호하다.
양호한 거야.
양호하다.
양호할걸?
 
내 정신 건강을 소중히 지키자.......
(2022.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