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면직-일반행정 지방직 아내의 공무원 그만두기

정년은 18년이나 남았지만 공무원 그만뒀어.

그래도 나는 2023. 8. 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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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직 후 일주일 만에 의원면직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처음에는 남편이 완강히 반대하면서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남들 의견도 좀 들어 보라며 내 친구들하고 얘기를 해보기를 강력히 권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말할 게 뻔한데, 객관적이란 그 말이 무슨 말인가?
 
당시 남편은 내가 너무 비이성적으로 판단을 했다고 믿었으므로 누구라도 내 의원면직을 말릴 만한 구원자가 한 명이라도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서 다수결을 앞세워 나를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남의 부모님이든 친구들이든 나를 아는 사람은 누구라도 좋았다. 그저 나를 말릴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본인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이라 느꼈나 보다.
 
의원면직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에 꼭 미리 부모님하고 상의라도 해봐라, 좋은 말씀해 주실 거다, 그래도 우리보다는 인생을 더 오래 사신 분들이니까 뭔가 도움을 주실 거다, 친구들한테 공무원 그만둔다고 말해봐라, 다들 말릴 거다, 누구한테 물어봐도 이건 아니다 등등, 어떻게든 초반에는 내가 계속 그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유지했으면' 하는 남편의 간절한 마음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공무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만두면 안 된다. 어떻게든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라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겠지.
 
가장 연락을 자주 하는 친구 두 명과 통화를 오랫동안 했다.
앞서 쓴 글에서 이미 다 이야기했다시피 한 명은 내 결정을 지지해 주었고 다른 한 명은 정말 결사반대했었다.
올해 1월 20일 오후 느지막하게 나의 면직에 대한  최종 결재가 났다는 전화를 받은 그날 저녁에 나를 이해한다며 지지해 주었던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나 사직서 다 처리돼서 의원면직했어. 오후에 전화 왔더라. 공문도 벌써 다 올렸나 봐. 여기저기서 전화 오고 난리야."
"그래? 축하해."
내가 13년 전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했을 때도 축하한다 했고, 내가 공무원 퇴직을 했다고 말했을 때도 축하한다고 했다.
"잘 됐다. 이젠 다 지난 일이니까 앞으로 더 잘 살면 되지."
"응, 고마워."
물론 그녀라고 해서 전혀 내가 걱정스럽지 않았겠는가.
염려스러운 부분도 있었을 테고,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그동안의 내 사정을 다 들어서 잘 알고 있으니까 또 지지를 했던 거겠지.
이 기쁜 소식을 당장은 그 친구 한 명에게 밖에 전할 수 없다니......
 


때론 삶이 곤경처럼 느껴진다.
막다른 길에 다다라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려고
애를 써야 하는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은 막다른 길이 아니었고,
우리가 가고자 했던 길과 연결된 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조앤 치티스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이지훈,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중에서-
 
그렇다. 어떻게든 길은 연결된다.


옛날에 공무원 합격했을 때처럼 동네방네 자랑하고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를 받고 떠들썩하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생각해 본다.
시작하는 사람에겐 모두들 웃는 얼굴로 축하를 해주고 응원을 해 준다.
그런데 끝내는 사람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축하의 인사 대신 한숨을 건넨다.
 
시작과 끝은 언제나 따로가 아니라 맞닿아 있는 것인데, 끝을 내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시작을 했으면 당연히 끝도 있는 일인데 말이다.
공무원으로  임용이 됐으면  언젠가는 당연히 퇴직도 하는 것이다.
나는 그 퇴직하는 날짜가 좀 이른 것뿐.
 
나만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뿐,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까지는 내가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은 끝이 정말 끝이라고만 생각하나 보다.
남들 축하 인사받자고 일을 그만둔 것도 아니니까 크게 마음 쓰지는 않는다.
이미 난 홀가분해졌으니까.
젖어 있던 두 날개가 따뜻한 햇볕과 살랑이는 바람에 모두 상쾌하게 마른 느낌이다.
 


내가 어떻게든 버텨서, 그 버틴다는 말이 우습게도 내 상황 하고는 안 맞는 것이었지만, 버틸 만한 상황도 아니었지만, 버티고 싶지도 않았지만, 일단은 한 달만 더 다녀보라고, 그때 다시 얘기하자며 끝끝내 필사적으로 반대를 했던 친구, 이제 보니 그 친구가 내 남편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를 막았던 것도 같다.
'의원면직 사고 발생 예방 임무'를 띠고 비밀리에 남편이 파견한 스파이가 분명하다.
"이혼은 안 말려. 근데 일 그만두는 건 진짜 아니야."
이혼은 안 말리지만 의원면직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친구.
그 친구도 교사니까 공무원이고 그녀의 남편도 공무원이다.
자신의 남편이 일을 그만둔다고 했던들 저렇게 온 힘을 다 쏟았을까?
안다.
친구 말마따나 정말 나를 생각해서, 친구니까 솔직하게 다 얘기해주고 현실적인 의견을 내놓고 말렸다는 것 어찌 모르랴..
 
두 친구 모두가 나를 생각해 준 것은 맞다.
그런데 생각해 주는 그 방식이 다른 것뿐이지.
둘 다 20년 넘게 보아 온 친구이고, 별의별 속내를 다 털어놓고 지내는 사이인데, 아마도 더 냉정하게, 지독하게, 진심으로 나를 위했으리라.
 
 
나를 위해서라도, 나중을 위해서라도,  또 자라나는 두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퇴직만은 하지 말고,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도 말고 한 달만 더 일하고 있으라고, 한 달 후에 다시 얘기해 보자던 그 친구에게는 내가 전화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퇴직을 하고 난 후 시간은 훌쩍 2배속으로 앞구르기 하는 느낌이었고, 다른 여러 가지 일로 신경 쓰고 챙길 것들도 많았다.
지친 심신도 이젠 쉬어야 했고, 무엇보다도.
육아휴직 중인 남편이 집에 있었으므로 당분간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몸만 추스르며 기운을 차리고 싶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냉정했다.
 
한동안은 나는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살림도 해야 했고, 한창 농번기인 친정에 가서 부모님도 도와야 했는데,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발을 동동 거려도 좀  누워볼까 싶으면 언제나 밤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그래도 10시 정도면 잠을 잤던 것 같은데, 육아휴직을 하면서부터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보통 밤 12시가 되기 일쑤였다. 그 버릇이 아직도 남아서 그런가 이것저것 하다 보면 보통은 그 시간이다. 그렇다고 TV를 보면서 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밤늦도록 책을 보느라 그 시간까지 잠 못 드는 때도 많았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 두 달이 좀 안됐을 때였나?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나 먼저 전화하는 쪽은 대부분 그 친구였다.
"직장은  잘 다니고 있어?"
"아니. 그만둔 지 오래야. 1월에 그만뒀어."
"뭐? 결국 그만뒀어?"
"응. 내가 그만 둘 거라고 분명히 말했잖아."
설마 정말로 그만 둘 거라고는 생각 못 했나 보다.
의원면직을 결심했던 당시의 내 마음을 잠깐 한때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겠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루한 장마 동안 계속되는 집중호우였다.
 
"그래. 결국은 그렇게 했구먼. 그래. 잘했어. 이젠 다 끝났는데 더 무슨 말을 하겠어."
"그렇지. 진작 다 끝났지."
"아유, 이제 보니 글임자 '난 년'이야."
이런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하기가 어디 쉽냐? 대단하다고."
 
보통 사람들은 저렇게 결정 안 한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겠지.
"근데 남편이 별말 안 했어? 순순히 받아들였나 보네. 엄청 반대할 줄 알았더니."
"안 하긴. 살벌했지."
"그래도 생각보다는 쉽게 넘어갔네. 난 끝까지 반대할 줄 알았지."
남의 일이니까 쉽게 느껴지지 정말 진심으로 쉽지 않았다.
내가 보냈던 고난의 주말, 어찌 꿈에서라도 잊힐리야.
"절대 쉽게는 안 넘어갔고. 말하자면 길어."
결혼 생활 이후 부부간의 불화가 최대치에 달했던 당시의 상황을 구구절절 전달했다.
"그래도 남편도 그거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남편도 대단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자기도 결혼하고 바로 국가직 의원면직했던 거 너도 알지? 근데 나는 절대 못하게 하니까 이해 안 되더라. 그때 자기는 목표가 있고, 계획이  있었지만 난 계획이 없으니까 안된다는 거야. 당장 내 몸도 안 좋은데 내가 그 상황에 무슨 계획을 세울 정신이나 있었겠냐? 진짜 남편도 결국은 남이구나 생각 들더라. 지금은 계획이 없어도 살다 보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목표도 생길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당장 내 몸 추스르는 게 먼저지 그만두자마자 다른 직업 찾아야 된다는 거야 뭐야? 내가 다른 일 하려고 그만 두거 아니잖아. 내가 왜 그만뒀는데?"
 
"그래도 그거 받아들이는 거 쉽지 않았을 거야."
결정적인 증거 확보다.
넌 남편이 파견한 스파이 맞구나.
남편은 실제로 내가 일을 그만두고 나자 바로 뭐라도 해보라며 이것저것 권했었다.
그만둔 지 일주일이 지나길 했냐, 한 달이 지나길 했냐. 사실은 사직서를 제출한 그날부터 계속 얘기하기 시작했다.
남편 말로는 너무 무기력하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무기력해 보였을까?
삶의 목표까지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을까?
 
힘이 없을 때는 무기력하게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루 이틀쯤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을 다 비워내고 산다고 한들 뭐 그리 대수라고?
아마도 내가 직장까지 그만두고 몸도 안 좋으니까 자꾸 가라앉게 될까 봐 그런 거라 생각한다.
일도 안 하고 아프다는 핑계로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까 봐.
애정의 표시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당시는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더 컸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남편은 종종 그때를 회상한다.
"그때 정말 사람이 아무 기운도 없어 보였어. 혼이 나간 것 같았다니까."
정말 그때 내가 혼이 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남편이라고 내가 정신 못 차릴까 봐 자꾸 자극을 줬던 거로구나.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 중에서 어떤 게 더 극한 고통으로 다가올까. 정신적인 고통이 더 숭고하고 아프다고 함부로 말할 일 아니다. 죽을 만큼 아팠던 경험을 한 사람에게 '그까짓 육체의 고통쯤'이라고 함부로 지껄일 일 아니다.
무조건 정신력으로 버텨 보라고, 나약하다고 함부로 말 내뱉을 일 절대 아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으리니.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가끔은 침묵으로 위로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육체적인 아픔, 육체적인 고통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거라고, 지난날에 한참을 앓은 후에야 절실히 느꼈다.
(2022.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