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 같은 거, 그런 건 나한테 소질이 없나 봐

"엄마!!! 여기에 내가 허브 심었는데 왜 쪽파가 있어?"
"나는 모르겄다. 아빠가 저번에 쪽파 심더라."
설마, 이번엔 안그러겠지, 벌써 세 번째인데 떡잎이라도 한 장은 구경할 수 있겠지, 했었다.
그러나 그 사건 현장에서는 벌써 쪽파 이모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두번이나 실패의 아픔을 경험하고 세번째는, 세번째는 반타작이라도 하겠지. 하나라도 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허브 씨앗을 심었다. 전날 비가 왕창 내리고 곧 또 비가 내릴 예정이라는 길일을 택해, 손 없는 날로 잡아서 막중한 임무에 최선을 다했음은 물론이다.
한창 장마 기간이었으므로 어지간해서는 싹이 안나기도 힘든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무엇이라도 씨를 뿌리기 딱 좋은 날이었다.
그냥 던져만 놔도 뿌리가 내릴 것 같다,고 오만방자하게 생각했던 건 어리석은 나의 오산이었다.
"엄마, 저기 내가 허브 심어놨으니까 절대 손대면 안돼. 아빠한테도 꼭 말해줘. 뭐 돋아나도 풀 아니니까 절대 뽑지 마시라고."
이번에도 손바닥만한 내 땅 한 조각이 없어 친정 집 마당 한켠에 더부살이로 허브를 심었다.
마침 아빠가 쪽파를 심으신 뒤라 땅에 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친정에 갈 때마다 이제나저제나 언제쯤 싹이 올라 오려나 애타게 들여다봤지만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고 나를 절망하게 했다.
어느날은 파릇파릇한 게 올라와 있긴 했었다.
과연 그것은 풀인가 허브인가.
이번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을 예의주시했다.
이번에는 허브가 맞겠지.
예전에 풀을 허브인줄 알고 혼자 착각했던 허술한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친정집 더부살이 허브 키우기 3개월이면 적중도는 떨어질지언정 '감'이란 게 내게도 있었다.
나중에 풀하고 헷갈리면 안되니까 나름 머리 쓴다고 쓴 게 한 곳에 무더기로 씨앗을 뿌리는 일이었다.
쪽파가 쑥쑥 올라오기 전에 내가 뿌린 허브들이 더 먼저 번성하기를 바랐다.
떡잎 두 장만으로는 그것이 나중에 커서 풀이 될지 허브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니, 농사 인생 50년인 아빠는 이미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어설픈 농촌 일용직 근로자인 딸만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친정에 갈 따마다 먼저 나온 쪽파 옆으로 파릇한 것들의 개체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뿌린 씨앗은 딱 두 종류인데 생긴 것이 모두 다 다르다.
내가 허브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불길한 징조였다는 것쯤은 단번에 알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내가 심은 페퍼민트와 레몬밤하고는 딴판인 모양의 이파리들이 사방에서 마구 돋아났다.
이상하게 내가 작업을 한 그 지점만 휑하고 그 주변은 뭔가 마구 번창하기 시작했다.
쪽파는 장마철을 맞이해 날로 쑥쑥 커가는데 내 허브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감감무소식이다. 그래도 나는 어지럽게 돋아난 거의 대부분이 풀일거라고 확신할 수 밖에 없는 그 생명체들 속에서 하나 정도는 허브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신생아 수준이니까 잎 모양만 보고는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
너는 이 다음에 자라서 뭐가 될래?
페퍼민트? 레몬밤?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인간적으로?
그러나,
며칠 전 친정에 갔더니 쪽파는 벌써 다 뽑혀서 마침 집에 들른 아들과 며느리의 맛난 반찬이 되어 주었고 아빠는 다시 그 자리에 쪽파를 새로 심으셨다.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검정 비닐까지 꼼꼼히 씌우셨다.
비닐이라도 없었으면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여태 싹 못틔운 내 허브들이 하나라도 뒤늦게 나올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예 원천봉쇄를 해 버리신 거다.
내가 이렇게 허브 키우기에 소질이 없을 줄은 미처 몰랐다.
스파티필름, 고무나무, 산세베리아, 스투키 등등 집에서 화분을 10 개도 넘게 오랫동안 키워 온 나인데, 허브랑 나는 인연이 아닌 건가?
아깝고, 아쉽고, 속이 다 상한다
벌써 세 번째 도전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거기에 미쳤다.
'혹시 여태 다 불량한 씨앗들을 팔았던 거 아닐까?'
애먼 '다있소'만 원망해댔다.
그리고 꿩 대신 닭이라고, 허브 대신 그곳에서 수확한 파 겉절이를 맵게 씹고,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