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 남편 교육행정직 합격 비법

공시생 남편과 안맞는 것들, 그리고 또 안맞는 사람

그래도 나는 2023. 5. 1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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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국가직 의원면직을 하고 난 후 나는 주말이면 곧잘 혼자서 친정집으로 향하곤 했다.

공시생을 남편으로 둔 새댁은 그가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 줘야 했으므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이었다,고 나만 생각했다.

 

이 가슴 답답함, 뭔가 무거운 납덩이가 가슴에 얹힌듯한 거북스러움, 최대한 잔소리를 안 하려고 굵은 소리만 해대다가  결국엔 가정  불화로 끝나고야 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의 번뇌는 비로소 시작되었다.

한때 나의 기쁨이 되어 주었던 남편은 이제 서서히 나의 고통이 되어 내 인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시험해 보곤 했다.

 

본격적으로 공시생 생활을 시작한 어느 날 아침이었다.

한동안 매일 아침 출근길에 운전대 잡고 도서관으로 향하던 남편이 그날은 7시가 넘도록 일어날 기미조차 안 보이는 것이다.

 

"벌써 7시인데 도서관 안 갈 거야?"

"응? 어, 오늘부턴 집에서 공부하려고."

"갑자기 왜?"

"난 집에서 공부하는  체질인가 봐. 도서관보단 집이 더 나은 것 같아."

 

아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공시생이 감히 지금 '체질'씩이나 언급한단 말이야?

공시생은 공무원 합격하기 전까진 사람도 아니라고 백날 천 날 그렇게 말했는데?

쑥도 마늘도 소용없어. 천일이 지나도 사람 아니야.

공무원 합격해야만 비로소 사람이 되는 거야.

 

심각하다.

국어 점수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선명히도 들린다.

저번에 '자판기 코피'사건 때 내 말귀 다 알아들은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봐.

 

"지금 교행 공무원이 되겠다는 사람이 체질 따지는 거야? 잊고 있나 본데 자긴 공시생이야."

"그게 왜?"

"뭐가 왜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공부만 해야 해. 그 정도는 각오했겠지?"

"응. 나 지금 공부하고 있잖아."

"하기야 하겠지. 잘 다니던 도서관을 왜 안 가겠단 거야?"

"며칠 다녀 보니까 나랑 그 도서관이랑 안 맞더라고."

"누가 공부하는 사람이 도서관이랑 잘 맞아서 다니는 거 봤어? 그냥 가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그러긴 하는데, 난 그 도서관에선 집중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남의 집중력이라도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행정공제회에서 최대한 대출을 받아서라도 있는 대로 다 살 의향이 있다.

적금을 깨서라도 감행하리.

 

흥분하면 안 된다.

잔소리는 하지 말자.

굵은 소리만 하자.

 

"사람들이 도서관에 다니는 데는 이유가 다 있겠지. 아무래도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있으면 더 자극도 되고 그러니까."

"그런 면도 있지만 난 오늘부턴 그냥 집에서 공부하려고"

 

내가 13년 전 공시생 시절이었을 무렵, 골방에서 정말 사람답게 살기를 포기하고 공부만 했던 막바지 몇 달을 생각했다.

나는 혼자 공부하는 게 더 맞는 체질이었다.

그러다가 도서관도 다니기도 했고.

 

생각해 보니 나도 이랬다 저랬다 했네.

역시 사람은 자기중심적이야.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하고 그러니까 인간이지.

 

어쨌거나 결혼하고 좀 살아보니 이 남자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다.

일일이 하나씩 지적해 주고, 알려주고 답을 줘야 했다.

무엇보다도 못 미더웠다.

그동안의 행적들로 미루어 보아서.

 

"그래. 집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면 그렇게 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서둘러 출근도 해야 했으니까.

 

뭔지 모를 불안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었지만 나는 출근을 해야 하는 이 집 가장이다.

남편하고 승강이하느라 무단결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날 아침 남편이 사무실까지 나를 태워다 줬던가, 아니면 홧김에 그냥 버스를 타고 출근했던가.

 

아무리 공시생이라지만 고3 자식이 수험생 신분을 빌미로 부모에게 유세 떠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어젯밤에라도 나한테 미리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냐?

갑자기 이렇게 나오면 나보고 어쩌라고.

 

아침부터 가슴이 답답하게 출근을 했던지라 퇴근을 하고 나서도 내 기분은 별로 나아지질 않았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고 사단은 났다 드디어.

 

내가 돌아오면 심심할까 봐 하루 종일 TV를 보고 내게 생생하게 고스란히 전달해 주기 위함이었던가.

 

저렇게도 밝은 표정을 지을 수가 있을까 싶게 남편은 환한 얼굴로 인강 대신 TV 시청을 하고 계셨다.

공시생이 지금 저럴 수가 있나.

교행 시험이 바로 몇 달 앞이다.

1년이 남은 것도 아니고 내일모렌데.

게다가 일반행정 공부할 때랑 과목이 바뀐 것도 있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거실의 천장 등은 환했고, 남편의 얼굴은 그보다 더 환했으며, 거실 바닥은 남편이 먹이를 흡수한 흔적이 고스란히 증거로 남아 어지럽게 나를 반겨 주었다.

 

'증거자료 3'으로 채택한다.

 

얼마나 집중을 하고 있었는지 낡은 아파트 현관문이 쇳소리를 내며 쾅 닫혀도 눈길 한번 보내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신다.

 

순간 나는 환상을 보았다.

 

지금 그가 온 정신을 쏟고 있는 것은 TV가 아니라 최신 자료들로 개정 법까지 다 반영해 단기특강도 필요 없이 일목요연하게 강의가 진행되고 있는 교행 인강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 주여.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충분히 우려했던 결과다.

예상 적중 우려 상황 14번째쯤에 해당된다.

 

"자기야. 지금 거기서 뭐해?"

"어? 자기 벌써 왔어? 빨리 왔네."

 

내가 빨리 온 게 아니라 당신이 늦게까지 열심히 TV 시청 중이신 거다.

벌써 저녁 7시가 다 되어간다.

 

"지금 거기서 뭐해?"

"응. TV 좀 보고 있었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는지 몰랐네."

"설마 계속 그러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보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 이럴 줄 몰랐는데."

 

난 다 진작에  알았다.

남도 아는데 왜 본인이 본인을 모르시는 걸까.

 

그래도 눈치는 있어서 급히 마무리하고 거실을 나간다.

 

그날 저녁잠을 잘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기절할 생각을 안 한다.

공시생은 철저한 시간관리와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생명인데 말이다.

 

"내일 공부하려면 자야지?"

"어? 응, 나는 밤에 공부하는 게 더 맞더라고. 낮엔 집중이 잘 안 돼서. 이제부턴 밤에 공부하고 낮에 자려고."

 

분명히 한국말로 했다.

그는 외국이라곤 신혼여행 때 일본으로 신혼여행 한 번 간 게 다인 순수 한국인 혈통이다,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순수 혈통 한국인이 한국말로 또박또박 말하는데도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또 왜 갑자기 밤낮을 바꾸어서 공부하겠단 거야?"

"나 전에 공부할 때도 그런 적 있거든. 난 밤에 공부하는 게 체질인 것 같더라고."

 

그놈의 체질 타령, 그런 타령 소리는 이제 듣고 싶지 않다.

무슨 타령 무형 문화재 전수자로 활동할 것도 아닌데 웬 타령만 그렇게 해대는 것이오?

교육학 개론 첫 장이라도 넘겨 봤을까나.

만만치 않은 양일 텐데.

나도 해 봐서 알지.

실은 나도 자꾸 일행직 떨어져서 한 때 교행에 한 눈 팔고 시험 봤던 사람이다.

 

처음엔 보건직 한다고 멋모르고 달려들고, 내 주제를 파악하고 교육행정도 기웃거리고 공부해 본 사람이 나였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내가 공부해 보니 절대 만만한 내용이 아닌데 어쩌자고 저리 대책 없이 구는 걸까.

 

"지금 솔직히 밤이고 낮이고 공부만 해야 될 시기인데 느닷없이 밤낮이 바뀌어 버리면 괜히 공부하는 데 지장 있는 거 아니야? 그거 적응하려면 또 며칠은 공부도 제대로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난 낮보단 밤에 공부가 더 잘 되는 것 같아."

"시험 날짜는 알고 있긴 한 거지?"

"당연하지."

 

진작에 전 과목 다 훑고 나서 보고 또 보고 슬슬 시험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나의 생각과는 달리 아직 교육학 개론 시작도 안 한 남편의 앞날이 그땐 진심으로 걱정스러웠다.

아는 사람이 더 한다고, 내가 공부해 보니까 저렇게 해서는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다.

 

하지만 본인 인생이니까 더는 할 말이 없다.

 

한 집에서 한 사람이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면 설마 무슨 일은 안 나겠지.

 

며칠이 지나자 이번엔 남편의 숨겨져 있던 쇼핑 본능이 서서히 드러났다.

 

"낮에 거실에서 잠 좀 자려는데 지금 있는 커튼으로는 너무 밝아서 잠이 안 오네. 암막 커튼을 사야 되겠는데. 저 커튼은 얇아서 나랑 안 맞아."

 

커튼을 쳐도 낮이 밝은 건 해가 떠 있기 때문이랍니다 남편이시여.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대개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일을 하고 공부를 하지.

낮을 밤으로 쓰려니까 그런 거지. 

당연한 거잖아.

 

다음 날 집에 퇴근해서 가니 거실엔 우중충한 암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근데 낮에 잠 좀 자려니까 차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어. 귀마개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나 전에 공부할 때 쓰던  거는 솔직히 나한테 안 맞았거든. 아쉬운 대로 쓰긴 했지만. 내가 알아보니까 진짜 좋은 거 있더라."

 

다음날 역시 퇴근 후 돌아간 집엔 공시생 남편이 심혈을 기울여 주문한 귀마개가 떡하니 도착해 있었다.

 

그 후로도 공시생은 수험 생활에 필요하다며  각종 물품들을 신나게 주문하셨다.

과연 그 시점에 그것들이 모두, 반드시, 꼭 필요한 건지도 의문스러웠다.

수험서는 어디 은행 금고에 맡겨 두었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는 건지, 체험단을 하겠다는 건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래야 경제가 돌아가지.

공부엔 소홀해도 한국 경제엔 어딘가 이바지하고 있는 걸 거야.

우리 집 경제는 파탄이 나도 한국 경제는 그러면 안 되니까.

우린 달랑 두 명이지만 오천만의 국민은 살아야 하니까.

참으로 거시적 안목을 지닌 사람이다.

 

며칠이나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었을까.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냥 도서관 다시 가야겠어."

 

내 그럴 줄 알았다.

 

"집에서 하니까 아무래도 정신이 해이해져서 말이야. 그리고 이 집이 좀 내가 공부하기에 안 맞는 거 같아."

그럴 줄 몰랐을까.

난 진작에 알았는데?

예상하고도 남는데?

 

"그래. 알아서 해."

"그래서 말인데. 자기가 도시락 좀 싸 줄 수 있어? 거기 도서관 밥이 나랑은 안 맞더라.

 

안 맞는 것이 많기도 한 남자다.

안 맞는 것은 그것만이 아닐 거야.

나랑도 안 맞아도 너~~~~ 무 안 맞아.

 

그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덧붙인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그냥 영양만 맞춰주면 돼. 난 공시생이니까 최소한의 영양소만 맞춰 줘. 간단하게 김치 이것저것 하고  마른 김이랑 멸치랑, 참 단백질이 필요하니까 계란말이 정도? 밥 먹고 후식으로 과일 먹을 거 몇 가지랑. 그럼 되겠지? 비타민도 필요하니까. 자기도 직장 생활하는데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최소한으로 해야지 뭐."

 

나를 끔찍이도 생각하시는 남편이어서,

 

"자기도 일하고 바쁜데 부담 가질 거 없어. 그냥 있는 반찬에 간단히 저 정도만 싸주면 돼. 공시생이 어떻게 다 갖춰 먹겠어? 당분간은 간단히 먹어야지"

(2022. 8. 4.)